2024년 5월, 40대 부부가 동반 퇴사했습니다. 안정된 삶 대신 꿈을 선택한 은퇴 부부의 좌충우돌(左衝右突) 여정을 기록합니다.
두브로브니크에서의 마지막 밤은 낭만적이어야 했다. 아드리아해의 진주라 불리는 이곳 성벽 위로 지는 노을을 보며 우아하게 작별을 고하고 싶었다. 하지만 내 손에 들린 것은 와인잔이 아니라 스마트폰이었다. 날씨 앱 화면 속에는 잔인한 숫자가 찍혀 있었다.
'돌풍 15m/s, 그리고 비.'

▲윈디앱의 내일 날씨 캡처본.예고된 강풍. 15m/s라는 숫자가 여행자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른다. ⓒ 김봉석
6일은 자다르로 떠나는 날이다. 직행도 아니고 스플리트에서 버스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 파란만장한 여정이 예고되어 있었다. 숫자가 주는 위압감에 귀 밑 어디선가 '빠지직'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초속 15m의 돌풍이면 몸이 자연스레 움츠러드는 위력이다. 거기에 비까지 내린다면? 무릎 높이까지 오는 캐리어 두 개와 어깨를 짓누르는 배낭은 더 이상 여행의 설렘이 아니라 극복해야 할 '생존의 무게'가 되었다.
침묵 속에 흐르는 재즈와 분업의 기술
우리는 말없이 짐을 싸기 시작했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잔잔한 재즈 음악이 숙소 안을 채웠다. 이동 전날은 누구나 예민해지기 마련이다. 사소한 말 한 마디가 짜증과 화로 번질 수 있다는 걸 알기에, 우리는 대화 대신 음악을 선택했다. 9개월이라는 긴 시간 동안 길 위에서 함께 짐을 싸온 덕분일까. 이제는 특별한 말 없이도 몸이 먼저 움직이는 '분업'이 몸에 배었다.

▲숙소 바닥에 펼쳐진 캐리어 2개.숙소 바닥을 가득 채운 짐들. 이 짐들은 내일의 풍랑을 함께 견딜 돛단배가 된다. ⓒ 김봉석
두브로브니크의 돌길 위를 덜덜거리며 따라왔던 캐리어를 열었다. 추위를 견디려 구매한 털모자부터 각종 옷가지와 생필품이 뒤엉켜 있었다. 짐을 하나하나 추스르는 우리의 손길에는 비장함마저 감돌았다.
"이건 버릴까?"
"아니, 이건 스플리트에서 환승할 때 꺼내기 쉽게 맨 위에 넣자."
"프라이팬을 가방이 아니라 캐리어에 넣을 수 있을까?"
프라이팬과 허리 통증, 여행의 '등가교환'
캐리어 한구석에서 묵직한 존재감을 드러내는 녀석이 있었다. 바로 알바니아에서부터 동고동락한 '프라이팬'이다. 알바니아에서 두 달을 지내는 동안 숙소 프라이팬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아 새로 구입한 녀석이었다.
첫 번째 '뽑기'에 실패해 하이라이트 화력에 최적화된 두 번째 프라이팬을 사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는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화력의 단점을 보완해준 고마운 장비였지만, 동시에 배낭의 무게도 높여놓았다. 배낭 속 프라이팬이 걸을 때마다 허리를 짓누르는 통증을 느낄 때면 생각한다. 이것이야말로 여행의 '등가교환'이 아닐까. 맛있는 식사를 얻은 대신, 물리적인 무게를 감내해야 하는 것.
좁은 숙소 바닥에 펼쳐진 두 개의 캐리어는 내일 마주할 거친 풍랑에 대비하는 작은 돛단배 같았다. 짐을 싸는 행위는 단순히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넘어, 내일 닥쳐올 고생을 미리 나누어 짊어지는 의식과도 같았다.
안아줘야지, 힘들었을 테니까
혼자라면 막막했을 돌풍 예보 앞에서도 우리가 묵묵히 짐을 쌀 수 있는 건, 서로가 서로의 '뒷배'가 되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한 명이 버스 짐칸에 캐리어를 실을 때 다른 한 명은 비로부터 배낭을 사수할 것이고, 환승 정류장에서 길을 헤맬 때 누군가는 지도를 보고 누군가는 주변을 살필 것이다.
문득 드라마 <연인>의 명장면이 떠올랐다. 오랑캐에게 욕을 당했냐 묻는 길채에게 "안아줘야지, 힘들었을 테니까"라며 품을 내어주던 장현의 마음. 내일 저녁, 자다르의 숙소에 무사히 도착해 젖은 신발을 벗으며 우리는 서로에게 무슨 말을 할까.
"고생했어. 한 잔 하면서 이 또한 추억으로 남기자."
그 말 속에는 결국 "안아줘야지, 힘들었을 테니까"라는 깊은 위로가 담겨 있을 것이다. 두브로브니크의 마지막 밤은 그렇게 짐 싸는 소음과 내일의 걱정, 그리고 보이지 않는 신뢰로 채워지고 있었다. 풍랑 뒤에는 반드시 고요가 온다는 믿음을 캐리어 깊숙이 집어넣으며, 나는 조용히 가방 지퍼를 닫으면서 다음 여행지인 자다르의 기대감을 가져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