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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12 09:12최종 업데이트 26.02.12 09:12

누구나 머릿속에 근사한 집 한 채

[시로 읽는 오늘] 김건영 '나 홀로그램 집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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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나 홀로그램 집에
- 김건영

집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다 아래에도 집이 있고 사람이 있다 공중에 있는 집은 비싸, 누군가 말했다 머릿속에서 산다는 게 뭐지 물으면 산다는 건 집을 사는 거지 집을 대신 살아 주는 거야 집은 발이 없으니까 발 없는 집이 천 리를 간다던대요 그래서 저는 머릿속에 집을 넣고 삽니다 모두가 집을 사랑하니까 다들 집도착증에 걸렸잖아 누구나 집으로 돌아가 집 없는 사람들도 집으로 돌아가 집에서 울지 그러나 집에는 항상 누군가 있고 그건 주인이다 집요하다는 말은 떠오르고 가라앉는다 집은 사람보다 비싸니까 싼 건 입밖에 없는 사람입니다 집은 사람보다 단단하니까 새는 집을 어디에나 지어요 본인을 새에 비유하시는 건가요 그런 말에 부끄러워진다 제가 날기에는 좀 무겁죠 하고 웃으며 어떻게 사람이 사람 위에서 먹고 마십니까 공기를 마십니까 아무거나 새로 만드는 이야기가 낫지

출처_ 시집 <널>, 파란, 2024
시인_ 김건영 : 2016년 <현대시>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파이> <널>이 있다.

 모두 집을 말했고, 사랑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모두 집을 말했고, 사랑은 끝내 불리지 않았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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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머릿속에 근사한 집 한 채를 짓고 삽니다. 그러나 그 집은 손에 잡히지 않는 "홀로그램"이어서, 아무리 다가가려 해도 만져지지 않는 허상일 때가 많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은 "사람 위에 사람"이 층층이 쌓인 무거운 중력의 세계이니까요. 이곳에서 '집값'이라는 숫자는 날개 없이 천 리를 가지만, 정작 그 공간을 욕망하는 우리는 날기에는 너무 무거운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게 됩니다. 이처럼 공중에 뜬 홀로그램과 지상에 묶인 육체 사이의 아득한 거리, 그 화려한 허상과 비루한 현실이 충돌하는 자리에서 시인은 "입밖에 없는" 우리의 초라함을 숨기지 않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그 '비루함'이야말로 우리의 삶이 전원이 꺼지면 사라지는 허상이 아니라, 고통과 굴욕을 감수하며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실재임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은기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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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영시인#나홀로그램집에#널#한국작가회의#시분과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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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시로 읽는 오늘

(사)한국작가회의는 이 땅의 대표적인 문인단체로서 표현의 자유와 사회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자유실천문인협의회>와 <민족문학작가회의>의 정신을 계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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