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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교육을 거친 청년들은 저마다 다른 길로 삶을 만들어 갑니다. 학교에서의 탐색과 실험, 그리고 그 이후의 선택이 어떻게 이어지는지 들어봅니다. '대안학교를 나와서는 어떻게 살 수 있을까'라는 단순한 질문에 사람들의 실제 삶이 답이 되어 줍니다. 각자가 자신의 속도로 길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앞으로도 차곡차곡 담아내고자 합니다.
"자치 활동이나 대안 교육을 하는 학교, 방과 후 센터나 청소년 지원센터… 그런 곳들을 한 10곳 정도 다녔어요."

'어떤 학교를 다녔냐'는 질문에 윤주(필명 체리리)는 자신이 거쳐온 배움터들을 덤덤하게 읊었다. 기존의 입시 경쟁 교육을 벗어나 자발적 배움을 도모하는 '오디세이 학교'를 시작으로 방과 후 프로젝트 '다가치학교', 비인가 대안 학교 두 곳, '꿈드림센터', 십대 여성 일시 지원센터 '나무', '동작청소년문화의집', 그리고 도서관 상주 작가 활동까지.

단순히 여러 곳을 찍고 다니는 체험이 아니었다.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과 자기만의 길을 치열하게 찾아 나선 모험이었다. 때로는 상처받고 도망치기도 했지만, 결국엔 자신과 같은 청소년들이 맘껏 떠들고 소리 낼 수 있는 '앵두책방'을 차린 2006년생 이윤주 대표를 지난 1월 26일,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앵두책방 대표 이윤주
앵두책방 대표 이윤주 ⓒ 이윤주

졸업식 날, 죽음을 계획했던 중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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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서울 못 하면 죽는 줄 알았어요."

그의 학창 시절은 불안과의 싸움이었다. 중학교 3학년, 졸업식 날에 맞춰 생을 마감하려 했을 만큼 고통이 깊었다. 여러 이유가 뒤엉켜 있었지만, 무엇보다 큰 압박감을 받았던 건 '미대 입시'였다.

"좀 많이 암울했어요. 미대 입시를 준비하는데 아직 중학생이라 힘들게 시키지도 않았는데 그냥 저 혼자 늘 불안감을 갖고 있는 거예요. '나 이렇게 그리면 인서울 못 하는데, 인서울 못 하면 굶어 죽는데, 그럼 나는 살아가면 안 되는 걸까' 이런 생각들을 계속했던 것 같아요."

선망받는 직업을 가진 어른들 틈에서 그는 '이 정도는 돼야 사람 구실을 한다'는 높은 기준을 내면화했다. 하지만 그 목표를 향한 경쟁을 감당하기에 윤주의 마음은 너무나 다쳐 있었다. 벼랑 끝에 선 그를 붙잡은 건 과거에 우연히 본 유튜브 영상 하나였다. 사회 문제를 다루는 채널 '씨리얼(C-Real)'에서 소개된 한 학교의 모습이었다.

"중학교 1학년 때 되게 재미있게 수업하는 학교를 발견했었어요. 선생님을 별명으로 부르거나 서로 반말을 하는 문화도 좋아보였고 무엇보다 학생들이 다 친해 보이는 거예요. 사실 제가 중학교 1학년 때 따돌림을 당했었거든요. 영상을 보는데 '저곳에 간다면 나도 잘 지낼 수 있지 않을까, 저기라면 안전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날 필요하다는 확신. 그 간절함으로 부모님을 설득해 고교 자유학년제 과정인 '오디세이 학교'의 문을 두드렸다.

앞으로를 생각하게 한, 배움의 시간

"그곳에서는 어떤 걸 배웠어요?"
"진로와 태도요."

질문이 끝나기 무섭게 답하던 그였다. 오디세이 학교에서의 배움이 이미 체화된 티가 났다.

"목공이나 체육 같이 예체능에 특화된 수업을 많이 했었는데 그중에서도 사려 깊은 글쓰기라고 '가장 좋아하는 음식', '가장 좋아하는 계절' 이런 식으로 판돌(오디세이 학교에서 선생님을 부르는 명칭)이 소재를 던져주시면, 저는 그냥 솔직하게 저의 글을 써서 오는 수업이 기억나요. 그게 생각보다 너무 재밌었거든요. 그림 말고도 재밌는 걸 찾은 거죠. 에세이스트나 작가의 꿈도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었어요."

그의 태도가 변화한 가장 큰 이유는 '자치회의' 덕이었다. 중요한 안건을 결정할 때 모두가 동의할 때까지 대화하는 '만장일치' 원칙은 소극적이던 그에게 충격이자 기회였다.

"어떤 결정을 했는지는 흐릿한데, 만장일치가 돼야 하니까 모두가 자기 얘기를 해야 했던 상황은 선명해요. 저는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사람은 아니었거든요. 처음엔 회의 내내 한 마디도 못 하다가, 하루에 한 마디, 그다음엔 두 마디… 수료할 때쯤엔 열 마디를 하고 있더라고요. 적극적으로 기여하고 의견 내는 책임감 이런 게 생긴 것 같아요."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것에서 시작된 배움은 어느 순간 '좋은 대학에 못 가면 인생이 끝난다'는 공포를 넘어서게 했다. 2022년 5월, 학교에서 떠난 하동 '전환 여행'이 그 결정적 계기였다.

"대안학교여도 시간표가 있고 고등 교육과정에 준하는 공부도 하거든요. 그 생활을 전환할 겸 하동으로 떠나는 거예요. 그냥 놀러 가는 건 아니고 그곳에서 일하는 청년들을 만나기 위해서요. 회사를 차린 청년, 농사짓는 청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데 다들 눈이 반짝거리는 거예요. 저는 보편적으로 말하는 좋다는 대학을 나오고 좋다는 직장에 취직해야지만 살 수 있는 줄 알았어요. 그게 절대 아니었던 거죠. '나도 그런 편견들에서 벗어나 볼 수 있겠다'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어요."

그렇게 그는 대안학교에서 쌓은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만드는 일에 도전했다. 2023년 12월, 열여덟 살의 고민과 삶을 담은 <10대의 끝자락, 체리의 열여덟>을 출판 플랫폼을 통해 출간했다. 비록 30부만 인쇄한 책이었지만, 이는 1인 출판사 '앵두책방'을 창립하는 단단한 디딤돌이 되어주었다.

"책을 냈는데 뭔가 아쉬운 거예요. 출판사 마크가 플랫폼 회사 로고로 찍히잖아요. 저만의 로고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필명이 '체리리'거든요. 작가명 체리리, 출판사 이름은 '앵두책방'. 너무 매력적이잖아요. 그래서 내 브랜드를 가진 출판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 (체리리, 앵두책방) 사진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 (체리리, 앵두책방) 사진 ⓒ 앵두책방

생각이 들면 곧장 실행에 옮기는 추진력은 그의 가장 큰 무기였다. 덕분에 두 번째 책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은 '앵두책방'의 이름으로 출판됐다. 이 책에는 앵두책방의 시작점이 분명히 담겨있었다. 아팠던 어린 시절과 치열했던 도전, 지역아동센터 봉사와 청소년 지도사 인턴십을 거치며 쌓은 시간들. 앵두책방이 나아가야 할 곳이 결국 '청소년'임을 확신하게 한 이유에 대해 담겨있었다.

'어느 날은 다 같이 놀이터로 나가 외부 활동을 보조했다. (...) 어떤 아이가 나에게 달리기 시합을 하자고 했다. 놀이터 한 바퀴를 먼저 다 돌면 이기는 것이었는데 안쪽에서 뛰는 게 유리하니까 아이가 나에게 안쪽 자리를 양보해 주었다. 나는 어렸을 때 지는 것을 무척 싫어해서 게임에서 질 때마다 울고불고 난리를 쳤다. 그런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해 아이가 좌절하지 않도록 일부러 느리게 뛰었다. 그런데 아이는 더 느리게 걷고 있었다. "선생님 빨리요! 그러다가 선생님이 지겠어요!" 마지못해 내가 더 빨리 결승선에 도착했다. "예~ 선생님이 이겼다!" 아이는 나와의 시합에서 졌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다 이긴 것처럼 행복해했다. 가슴이 뭉클해졌다. 타인에게 승부를 양보하면서도 행복해하는 그 아이는 커서도 뭐든지 행복하게 해낼 것 같아서.' -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중에서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 꽃, 청소년을 위하여

 3년간의 대안교육의 이야기가 담긴 책 (향후 출간예정)
3년간의 대안교육의 이야기가 담긴 책 (향후 출간예정) ⓒ 앵두책방

필명을 조금 더 빛내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한 앵두책방, 그러나 자신의 삶을 돌아본 두 번째 책 출판이 끝나고 세 번째 책, 3년간의 대안 교육 경험을 원고로 정리하던 중, 큰 변화가 생겼다. '내 이야기'를 넘어 '우리의 이야기'로 시선을 확장한 것이다.

"대안교육에 관련된 책을 기획하기 시작할 때는 '내 경험을 바탕으로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자'는 포부를 가지고 있어요. 저와 비슷하게 입시 스트레스로 고통받는 청소년들에게 도움이 되는 책을 만들고자 한 거죠. 그러다가 문득 내 얘기만 하는 것보다 직접 청소년의 이야기를 듣고 담아내고 그걸 통해서 다른 어른과 청소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도달한 것 같아요."

'청소년 자서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인스타그램 릴스로 직접 마케팅을 하며 발로 뛴 지 2년. 그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어느 날 SNS로 연락이 왔어요. 다른 작가의 이름을 대면서 '그 사람은 학교 다니면서도 다 하던데 넌 자퇴는 왜 했니?'라고 묻더라고요. 차단했더니 또 다른 계정으로 와서 '출판사 대표라는 게 글 너무 못 쓰네'라고 악플을 남기고요. 그게 반복인 거예요. 그럴 때면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했어요."

무기력에 빠져 그만두고 싶을 때마다 그를 일으켜 세운 것 역시 '사람'이었다. 앵두책방을 통해 만난 청소년 작가들이 서로를 "작가님, 대표님"이라 부르며 존중하는 모습, 청소년이 쓴 책이 또래에게, 어른들에게 팔렸을 때 함께 기뻐하던 순간들이 그를 다시 책상 앞에 앉게 했다.

그 결과 2024년 말 모집한 자서전 1기 작가들은 현재 원고를 집필 마감 중이며, 지난 한 해 동안 초등학생 이서진 작가의 시집 <우리의 영원에게>, 중학생 김시윤 작가의 <너는 한여름에 찰랑이는 파도였다>도 출판됐다. 최근 마감한 자서전 2기 모집에는 무려 50명이 넘는 청소년이 지원하기도 했다.

"앵두책방은 '열매를 맺기 위해 준비하는 아리따운 꽃들'을 응원하는 독립 출판사예요. 아리따운 꽃들은 청소년을, 열매는 어른을 의미해요. 꽃은 바람을 견뎌내야 하고 비를 맞아내야 하잖아요. 그러다가 떨어지기도 하고. 시행착오를 겪는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분들을 응원하고 담아내는 출판사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성장하고 싶어요."

앵두책방은 앞으로 출판 외에도 도서전 운영과 연극 제작 등 다양한 방식으로 독자와 소통하며 활동 영역을 꾸준히 넓혀가고자 한다.

자신이 설 수 있는 안전한 공간을 찾아 10곳이 넘는 기관을 헤매던 소녀는, 이제 다른 청소년들을 위한 단단한 땅을 다지고 있다. 이윤주 대표는 앞으로도 오직 자신만이 걸을 수 있는 고유한 길을, 그리고 누군가가 걸어올 길을 씩씩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 https://brunch.co.kr/@e336e5c3ec7a449에도 실립니다.


#청소년#대안교육#앵두책방#출판사#체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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