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을 위한 행진곡' 악보. 좌측은 1982년 소설가 황석영의 집이 있던 곳(현재는 광주문예회관)에 설치된 기념물이며, 우측은 윤상원 생가 마을 벽에 그려진 행진곡 가사. ⓒ 임무택
무릇 모든 혁명에는 피 냄새가 묻어난다. "가죽을 벗기고 새 생명을 불러내는(革命)" 혁명에서 피 냄새가 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와는 달리 세계의 역사적인 혁명사를 보면 모든 혁명에는 음악이 따랐다. 음악이 혁명과 함께하는 경우도 많았다.
혁명과 음악은 본질적으로 '동거'하기 어려울 것 같지만, 혁명사의 뒷켠에는 음악, 이른바 혁명음악이 흐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혁명이 음악을 불러오고, 음악이 혁명을 촉발해 왔다고 하겠다. "심령의 덕육으로 심핵(心核)에 철(徹)하는 것과 같은 음향의 운동 이것을 음악이라 한다."(플라톤) "음악은 천사의 스피치다." (T·칼라일) 라는 말에서 음악의 의미가 함축된다. 이같은 음악이 혁명에 '참여'하게 되면 '천사의 스피치'가 아니라 '혁명가와 민중의 스피치'가 된다.
음악이 혁명의 깃발로 나타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고려 우왕 14년(1388) 이성계 일파는 위화도 회군에 앞서 '이원수(李元帥)'라는 동요를 유포시켰다.
이성계의 '이원수'
서경성 밖에는 불빛이요
안주성 밖에는 연기로세
그 사이를 왕래하는 이원수여
우리 백성 살려주소서.
최제우의 '궁을가'
한말 수운 최제우는 중국에서 태평천국 난이 일어나고 열강의 침략이 시작되는 것을 지켜보면서 이에 대항하는 민족고유의 새 종교가 필요함을 절실히 느꼈다. 그래서 시천주(侍天主)의 사상을 핵심으로 하는 동학을 창도하고 '궁을가'를 지어 널리 부르게 하였다. 민심을 동요하는 일종의 혁명가였다.
궁궁을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시호시호 이내시호 부재래지 시호로다
만세일지 장부로서 오만년 지시호로다
궁을궁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용천검 드는칼을 아니쓰고 무엇하리
궁궁을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무수장삼 떨쳐업고 이칼저칼 넌줏들어
궁궁을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호호망망 넓은천지 일신으로 비껴서서
칼노래의 한곡조를 시한시호 불러내니
용천검 날랜칼은 일월을 희롱하고
궁궁을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게으른 무수장삼 우주에 덮혀있네
궁궁을을 궁궁을을 영세불망 만사지
만고영장 어디있나 장부당전 무장사라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좋을시고 좋을시고 이내신명 좋을시고.
동학농민의 '파랑새 노래'
최제우의 동학사상은 전봉준에 의해 농민혁명으로 이어졌다. 전봉준과 김개남 등 동학접주들은 1894년 전라도 고부에서 <폐정개혁안 12개조>를 제시하며 봉기했다. 이때 농민들 사이에서는 '파랑새 노래' 등 혁명가요가 널리 유포되었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장포장수 울고간다.
정률성의 '연안송'과 '팔로군'
중국의 도시 예안(延安)은 우리에게 낯익은 지명이다. 조선의용대가 치열하게 일제와 싸운 곳이고, 중국공산당의 혁명성지이기 때문이다. 옌안은 모택동의 중국 공산당중앙과 중앙군사위원회가 1937년 1월부터 10여 년 동안 혁명을 마무리한 곳이다.
모택동 부대가 옌안에서 힘겨운 투쟁을 하고 있을 때 광주 출신의 한국인 정률성이 '연안송'을 작곡하여 병사들의 용기를 불러일으키고 혁명을 성공적으로 성취하는 동력이 되었다. 모택동이 격찬을 아끼지 않았다. '연안송'은 한국의 '아리랑'처럼 불리는 애창곡이다.
보탑산 봉우리에 노을 불타고
연하강 물결위에 달빛 흐르네
봄바람 들판으로 솔솔 불어치고
산과 산 철벽 이뤘네
아 연안 장엄하고 웅위한 도시
항전의 노래 곳곳에 울린다.
'연안송'을 작사하여 중국혁명에 크게 기여한 정률성은 이어서 '인민해방군가', '팔로군' 등의 가사를 작사하여 다시 한번 음악의 천재성을 발휘하였다. '팔로군'은 국공합작 이후 창설된 중국혁명군 가운데 한 부대였으나, 사실상 중국공산군을 통칭하는 보통명사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중국에서는 공산당 창설기념행사나 국군(인민군) 행사에서는 어김없이 이 노래를 부른다. 사실상 중국의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태양을 향한 우리의 대오
조국의 대지위에 섰다
민족의 희망을 안은
우리 힘 막을 자 그 누구냐 우리는 싸움의 전위
우리는 인민의 무장
두려움 없이 굴함없이 영용하게 싸워
왜놈들을 국경 밖으로 몰아내자 자유의 깃발을 높이 날리자
아, 나팔소리 들린다
아, 항전의 노래 우렁차다
앞으로! 앞으로! 앞으로!
김순남의 '해방의 노래'
1945년 8·15는 민족해방의 날이다. 일제 35년간의 압제로부터 풀려났다. 김순남의 '해방의 노래'가 해방공간에서 널리 불렸다.
조선의 대중들아 들어보아라
우렁차게 들려오는 해방의 날을
시위자가 울리는 말굽 소리와
미래를 구하는 아우성소리
노동자와 농민들은 온 힘을 다하여
놈들에게 빼앗겼던 토지와 공장
정의의 손으로 탈환하여라
저놈들의 힘이야 그 무엇이랴.
반야월 작사, 박시춘 작곡 '4월의 깃발'
1960년 한국의 학생들은 12년 이승만 독재를 타도하는 4월혁명을 이루었다. 학생들은 데모 중에 "전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앞으로 앞으로..." 라는 '전우여 잘 자거라'와 혁명 뒤에는 '4월의 깃발' 등을 힘차게 불렀다.
4월의 깃발이여, 잊지못할 그날이여
하늘이 무너져라 외치던 민주제전
그 주권 찾는 날에 그대들은 가셨나니
임자 없는 책가방을 가슴에 고이 안고
흐르는 눈물 속에 어린 넋을 잠재우리
4월의 불길이여, 피에 젖은 꽃송이여
빈 주먹 빈 손으로 쏟아져 나온 교문
어른이 못한 일을 그대들은 하셨나니.
민주대한 새 터전에 초석된 어린 영웅
고국의 품 안에서 고이고이 잠드소서.
백기완의 '님을 위한 행진곡'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은 전두환 일당의 민주주의 압살에 분연히 일어났다. 총칼에 찔리고 곤봉으로 머리가 깨치면서도 항쟁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이 때 그리고 1987년 6월항쟁 당시, 지금도 민주화의 광장에서는 백기완 작사, 김종률 작곡의 <임을 위한 행진곡>이 장엄하게 때로는 처연하게 불린다. 이명박 정권은 광주민주화운동 기념행사장에서 이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한 바 있다.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 없이
한 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동지는 간 데 없고 깃발만 나부껴
새날이 올 때까지 흔들리지 말자
세월은 흘러가도 산천은 안다
깨어나서 외치는 뜨거운 함성
앞서서 나가니 산자여 따르라
앞서서 나가니 산 자여 따르라.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