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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2.03 11:13최종 업데이트 26.02.03 11:13

AI가 추천한 나들이 장소, 남편과 다녀왔습니다

한훤당 김굉필 선생의 숨결을 찾아... 도동서원으로 떠난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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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28일은 남편이 하루를 통으로 쉬는 날이었다. 한 달에 한두 번 있을까 말까 한 소중한 날이다. 집에만 있기에는 시간이 너무 아까워 잠시라도 바깥 나들이를 하기로 했다. 계획은 없었지만 일단 외출 준비부터 했다. 추운 날엔 찜질방이 최고이긴 하나 지난달에도 다녀온 터라, 이번엔 조금 특별한 곳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60대 부부가 드라이브 가기 좋은 곳 좀 알려 줘."

모르는 곳에 갈 때면 으레 물어보는 데가 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인공지능이 선택되었다. 국립대구박물관, 팔공산, 수성못, 그리고 도동서원을 찾아주었다. 다른 곳은 여러 번 가보았지만 유독 한 곳만 낯설었다. 도동서원. 그렇게 그날의 나들이 장소가 정해졌다.

도동서원 전경
도동서원전경 ⓒ 황윤옥

내비게이션을 켜니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나는 대구 달서구에 살고 있다. 예전에는 수성구나 동구에 살아 주로 경주 쪽으로 향했는데, 이사 온 뒤로는 자연스레 달성군이 있는 서쪽으로 발길이 향했다. 인공지능이 집 주소를 알고 있기라도 한 듯 추천지가 모두 서쪽이라 신기해 하며 차를 몰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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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는 길에 도동서원에 대해 미리 검색해 볼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부부끼리 나눌 이야기도 밀려 있었으니 조곤조곤 주고받으며 가는 길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머, 이런 곳도 있었네. 봄이나 가을에 오면 참 좋겠어."
"그러게. 나도 이 길은 처음이야."

지리에 밝은 남편 역시 생소한 기색이 역력했다. 차창 너머 오른 편으로 낙동강이 유유히 흐르고 있었다. 겨울을 닮은 검푸른 강물 위로 햇빛이 내려앉아 잔잔한 윤슬이 반짝였다.

도동서원 주차장에 도착하니 '산불 조심'이라는 작은 현수막이 걸린 봉고차 한 대만 덩그러니 서 있었다. 평일인데다 겨울이라 그런지 관광객은 우리 부부 뿐이었다.

400년 된 은행나무 한강 정구 선생이 심은 나무
400년 된 은행나무한강 정구 선생이 심은 나무 ⓒ 황윤옥

옷매무새를 단단히 하고 둘러보니 가장 먼저 은행나무가 눈에 들어왔다. 잎은 모두 떨어지고 앙상한 가지들만 남아 있었지만, '김굉필 나무'라는 이름표가 붙어 있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 한강 정구 선생이 도동서원이 사액(선조 임금이 서원에 현판을 내려준 것)된 것을 기념해 심은 나무라고 전해진다. 400년을 버텨온 은행나무는 여러 개의 지지대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안내소에서 가져온 책자에는 '도가 동쪽에서 왔다 하여 도동서원'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은행나무 옆에는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유네스코 기념비가 위풍당당하게 서 있었다.

문화재청은 2018년 1월 도동서원을 비롯한 한국의 대표 서원 9곳을 <한국의 서원>으로 지정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신청하였고, 2019년 7월 10일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 관광 책자에 적힌 글 중

도동서원은 흥선대원군이 전국에 서원철폐령을 내렸을 때에도 훼철되지 않고 존속한 전국 47개 주요 서원 가운데 하나라고 한다. 유교적 질서에 따라 구성된 유식 공간과 강학 공간, 제향 공간으로 나뉘어 있다. 마치 조선 시대 유생이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아 경건한 마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쪽문을 나와 왼편을 보니 현대식으로 지은 기와 건물이 눈에 들어왔다. 너무 번듯해 개인 주택인 줄 알고 지나칠 뻔했지만, 가까이 가보니 관광객을 위한 전시실과 편의 시설이 마련된 공간이었다. 전시실 안에는 서원의 역사와 유교 문화를 설명하는 자료들이 전시돼 있었다.

김굉필 선생(1454~1504)의 관향은 황해도 서흥이며, 한양 정릉동에서 태어났다. 자는 대유, 호는 한훤당이다. 성종 3년 결혼한 뒤 처가 근처 개울가에 작은 서재를 짓고 '한훤당'이라 이름 붙였는데, '차갑고 따뜻한 공부방'이라는 뜻이 곧 그의 호가 되었다.

선생은 1498년 무오사화가 일어나자 김종직의 문도라는 이유로 곤장을 맞고 평안도 희천으로 유배되었다. 그곳에서 17세의 조광조를 만나 학문을 전했는데, 이 만남은 훗날 조선 사림 정신의 맥을 잇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이후 순천으로 이배된 김굉필은 1504년 갑자사화 때 '무오당인'으로 죄가 더해져 처형되었다. "신체와 머리털은 부모에게서 받은 것이니 이것조차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며 수염을 입에 문 채 담담히 죽음을 맞았다는 기록을 읽는 순간, '자연의 이치를 깨닫고 천명을 받아들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유교의 윤리를 일상에서도 엄격히 실천한 그의 삶 앞에서 코끝이 찡해졌다. 그때 그의 나이는 쉰한 살이었다.

유네스코 기념비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기념비한국의 서원 ⓒ 황윤옥

전시실에서 우리는 한참을 머물렀다. 선인들의 지혜와 고서를 눈과 마음에 차곡차곡 담았다. 퇴계 이황의 '당연함과 마땅함을 이야기하다'라는 문구 앞에서야, 그날 내가 도동서원에 오게 된 까닭을 비로소 알 것 같았다.

밖으로 나오니 관광객을 위한 매점과 전통 숙소도 눈에 띄었다. 잠시 산책 삼아 나선 길이었는데, 마음의 양식까지 든든히 채우고 돌아왔다. 손자들이 더 자라 초등학생이 되면 꼭 다시 데려오고 싶은 곳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도동서원#달성군구지면#대구관광지#김굉필#한훤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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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사이버대 문예 창작학과 재학 중, 브런치 스토리 작가,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 마음을 다해 정성껏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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