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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겨울, 신촌역 앞에 모여 처음으로 한강조사에 참여했다. 이화여대 야조회가 주관하고 대학연합야조회가 함께하던 조사였다. 당시 연합야조회 일원이었던 나는 그날 처음으로 한강을 걸었다. 정확한 위치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마 팔당댐 하류였을 것이다. 한강을 떠올리면 가장 먼저 기억나는 장면은 털발말똥가리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다. 이후 대학 시절 동안 두 차례 정도 한강조사에 더 참여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지난해 연말 YB(young bird, 재학생) 야조회 후배들에게서 연락이 왔다. 한강조사에 참석할 수 있는지 묻는 전화였다. 본조사가 진행되는 2월 6일과 7일은 일정상 참여가 어려워, 1월 30일에 진행된 예비조사에 하루 참여하기로 했다. 올해가 벌써 40회 조사라고 했다. 매년 빠짐없이 겨울철새 조사를 이어오고 있다는 사실이 선배로서 기특했고, 동시에 한강의 현재 모습이 궁금해졌다.

현재는 대전에 살고 있어 서울을 오가며 KTX나 차량 창밖으로 잠깐씩 한강을 스쳐보기만 했지, 현장을 직접 보고 걸어본 적은 오래전 일이었다. 그런 이유로 1월 30일 새벽, 서울로 향했다. 현장에서 만난 조사 인원은 나를 포함해 네 명이었고, 모두 도보로 이동하며 조사를 진행했다.

차량 이동에 익숙해진 지 오래된 터라 가장 먼저 물어본 것은 조사 거리였다. 안양천 합류점에서 시작해 여의도 샛강을 지나 63빌딩 앞까지, 도보 이동 거리만 약 9km였다. 예상보다 훨씬 긴 거리였지만, 놀란 기색은 감추고 조사를 시작했다.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조사를 진행하는 조사원들
조사를 진행하는 조사원들 ⓒ 이경호

조사는 역할 분담으로 진행됐다. 조사자는 새를 동정하고 개체 수를 불러주며, 섹션장은 이를 복창하며 기록을 담당했다. 고가의 망원경을 챙기는 것도 섹션장의 중요한 역할이었다. 나머지는 주변을 살피며 이동하는 새들을 찾는 새덕(쩌리)역할을 맡았다. 나는 그 역할로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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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시작 지점인 안양천 합류부의 한강은 강폭이 넓고 수량이 많았다. 강추위와 바람 때문에 수면에는 파도가 일었고, 이런 조건에서는 새를 관찰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조사자들은 차분하게 새를 찾고 개체 수를 세며 이동했다.

매년 대전의 갑천과 세종시 금강을 조사해 온 나는, 북쪽에 위치한 한강에서는 조금 다른 조류상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기대와 달랐다. 한강에는 새가 거의 없었다. 갑천은 물론, 대전에서 가장 작은 하천인 대전천보다도 적어 보일 정도였다. 관찰된 종은 흰죽지, 가마우지, 물닭, 논병아리, 재갈매기 정도였고, 개체 수 역시 매우 적었다. 실망감이 컸다.

새가 적다 보니 조사는 점차 산책에 가까운 탐조로 변해갔다. 그나마 멸종위기 야생생물 1급인 흰꼬리수리 한 마리가 작은 섬의 나무에 앉아 있는 모습을 확인한 것이, 그날 한강의 체면을 살렸다고 할 수 있었다.

 버드나무에 앉은 흰꼬리수리의 모습
버드나무에 앉은 흰꼬리수리의 모습 ⓒ 이경호

더 안타까웠던 장면은 교각 아래 형성된 작은 모래톱이었다. 그곳에는 소수의 오리들이 옹기종기 모여 월동하고 있었다. 지형적 다양성이 거의 없는 한강에서, 겨우 생겨난 모래톱에 의지해 쉬고 있는 새들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졌다.

 작개 생겨난 모래톱에 휴식 중인 물오리들
작개 생겨난 모래톱에 휴식 중인 물오리들 ⓒ 이경호

 쉴 공간이 부족해 교각에 휴식하는 민물가마우지와 한국재갈매기
쉴 공간이 부족해 교각에 휴식하는 민물가마우지와 한국재갈매기 ⓒ 이경호

쉴 공간이 부족한 탓에 가마우지와 재갈매기들은 교각 보호공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사람조차 공간이 부족한 서울에서, 새들이 쉴 자리가 넉넉할 리 없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났다. 직접 확인하지는 않았지만, 밤섬 정도가 한강에서 새들이 온전히 쉴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간일 가능성이 커 보였다.

잠수해 먹이를 찾는 오리류와 가마우지, 논병아리 역시 육지가 필요하다. 모래톱, 자갈밭, 하중도 등 다양한 지형이 있어야 안정적인 서식이 가능하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는다면, 한강에서 살아가는 새들의 삶은 앞으로 더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댐으로 물을 가둔 한강이 새들에게 결코 좋은 환경이 아니라는 사실은, 30년 가까운 탐조 경험을 통해 직감적으로 느껴졌다. 여의도 샛강에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었다. 수심이 얕아 다양한 종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샛강은 꽁꽁 얼어 있었고, 얼어붙은 수면 위에서 새를 기대하기는 어려웠다.

일부 얼음이 녹은 구간에서만 청둥오리, 흰뺨검둥오리, 쇠오리 등이 관찰됐고, 양지에서 햇볕을 쬐는 해오라기, 왜가리, 중대백로가 그나마 조류상의 빈약함을 조금 덜어주었다. 한강의 규모를 생각하면 지나치게 초라한 결과였다. 함께 조사하던 후배들 역시, 걷는 거리 대비 조사 결과가 다른 지역보다 현저히 적다며 안타까움을 토로했다.

 낮에 휴식 중인 해오라기
낮에 휴식 중인 해오라기 ⓒ 이경호
 청두오리 한 쌍
청두오리 한 쌍 ⓒ 이경호

그럼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샛강의 한 모래톱에서 작은 샘처럼 물이 솟아나는 지점이었다. 그곳은 밀화부리, 직박구리, 노랑지빠귀가 목욕을 하거나 물을 마시기 위해 찾는 장소였다. 아주 작은 공간이지만, 여전히 새들이 이용하는 '살아 있는 자리'가 남아 있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들었다. 다만 바로 옆을 지나는 차량 소음이 끊임없이 귀를 때리는 점은 씁쓸함을 남겼다.

 솟아나는 샘물
솟아나는 샘물 ⓒ 이경호
 물을 마시는 직박구리들
물을 마시는 직박구리들 ⓒ 이경호

사람의 눈에는 한강의 찰랑이는 물이 보기 좋을지 모르지만, 그 물에 기대 살아야 하는 새들에게는 치명적인 환경일 수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유람선이나 최근 문제가 되었던 한강버스 같은 이용을 위해 물만 가두는 방식이 답이 아니라는 점을 시민들이 알았으면 한다. 새들의 눈에 비친 한강은, 그저 물만 채워진 거대한 수조에 가깝다. 자연보다는 오히려 이런 모습을 서울사람들은 더 선호할지도 모르겠다.

 샛강애 죽어있는 해오라기
샛강애 죽어있는 해오라기 ⓒ 이경호

이런 여건 속에서도 40년 동안 한강 조사를 이어온 야생조류연구회의 꾸준함에는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새가 줄어드는 현장을 묵묵히 걸으며 기록해 온 이 조사들은, 단순한 연례행사가 아니라 한강 생태 변화의 궤적을 남기는 중요한 자료다. 이 축적된 조사 결과들이 언젠가 한강을 다시 생명 있는 강으로 되돌리는 논의의 초석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한강의 기적이 만들어낸 결과가, 조금 더 생태적인 공간이었다면 어땠을까. 척박한 생태 공간으로 남아 있는 지금의 한강이 언젠가는 달라질 수 있을까. 새들과 시민이 함께 살아가는 한강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갑천에서 편안하게 휴식 중인 가마우지
갑천에서 편안하게 휴식 중인 가마우지 ⓒ 이경호



#한강조사#겨울철새#멸종위기종#야생조류연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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