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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30 17:19최종 업데이트 26.01.30 17:19

바뀌지 않는 세상, 실망을 걷어내는 '관찰'의 힘

[서평] 윌리엄 에긴턴의<천사들의 엄격함>을 읽고

누가 봐도 명백한 파이프 그림을 앞에 두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우기는 화가가 있다. 르네 마그리트의 작품 <이미지의 배반>이다. 캔버스를 꽉 채운 정교한 파이프 아래에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Ceci n'est pas une pipe)"라는 엉뚱한 문구가 적혀 있다.

처음 그림을 본 관람객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한참을 멈춰 서서 작가의 의도를 고민하게 된다. 마그리트는 왜 이토록 빤한 사실을 부정하며 우리를 시험하는 것일까? 단순히 골탕 먹이려는 장난일까? 어리둥절한 채 그림을 응시하다 보면, 이 도발적인 문구는 곧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에 균열을 낸다.

파이프는 담배를 피우기 위한 도구다. 하지만 그림 속 파이프에는 담배를 채울 수도, 불을 붙일 수도 없다. 마그리트의 말대로 기능할 수 없는 파이프는 더 이상 파이프가 아니다. 그것은 실재가 아니라 파이프의 형상을 빌려온 '이미지'일 뿐이기 때문이다.

마그리트의 이 선언은 윌리엄 에긴턴의 저작 <천사들의 엄격함>(2025년 1월 출간)이 관통하는 질문과 맞닿아 있다. 바로 "우리가 감각하는 현실은 세계 그 자체인가?"라는 물음이다.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믿어온 현실을 다시 돌아보게 한다. 저자는 보르헤스, 칸트, 하이젠베르크를 소환해 마그리트가 붓 끝으로 증명했던 '인식의 균열'을 문학, 철학, 물리학의 도구로 세밀하게 그려 보여준다.

파편을 엮어내는 편집자

윌리엄 에긴턴의 <천사들의 엄격함> 책표지 사진
윌리엄 에긴턴의 <천사들의 엄격함>책표지 사진 ⓒ 조미선

보르헤스의 소설 속 인물 '푸네스'는 매 순간을 사진처럼 기억하지만 불행하다. 그는 기억을 하나로 모아 통합하는 능력이 없다. 그에게 세상은 그저 파편이다. 아침에 본 개의 앞 모습과 오후에 본 개의 옆모습이 같은 개체라는 사실조차 받아들이지 못한다. 모든 장면은 매 순간 새롭고 단독적인 조각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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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무언가를 '파이프'나 '개'라고 인식하려면, 개별적 차이를 지우고 하나로 묶는 추상화 과정이 필요하다. 아마도 푸네스가 마그리트의 그림을 봤다면, 그것을 실재 파이프와 혼동하지 않았을 것이다. 관념의 필터 없이 대상의 모든 세세한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아니다. 수많은 파편 중 마음이 읽고 싶은 부분만 골라내 만든 한 권의 책, 혹은 살아가기 편하도록 정교하게 편집한 하나의 이미지에 가깝다.

푸네스가 세상을 파편으로만 인식한 이유는 칸트의 철학으로 선명해진다. 세계가 낱낱의 조각으로 흩어져 있을지라도, 보통의 인간은 이를 하나로 묶어낼 줄 안다. 우리 내면에 시공간과 인과율이라는 틀을 가진 '통합된 자아'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칸트에 따르면 인간은 자아라는 프리즘을 통해 실재를 '현실'로 굴절 시켜 받아들인다. 푸네스에게 결여된 것은 기억력이 아니라, 파편들을 '나'라는 중심을 통해 꿰어내는 능력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견고한 현실은 실재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내면의 자아가 조립해낸 결과물인 셈이다.

매순간 새롭게 열리는 세계

고전 물리학은 세계를 정해진 기찻길처럼 보았다. 원인이 있으면 정해진 결과가 나오고, 인간은 그저 지나가는 기차를 지켜보는 관찰자였다. 하지만 하이젠베르크는 이를 통째로 흔들었다. 그는 관찰 행위 자체가 대상의 상태에 영향을 미친다는 '불확정성 원리'를 내놓았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관찰 전의 세계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상태다. 세계는 나라는 관찰자와 상관없이 바깥에서 정해진 규칙대로 돌아가는 기계가 아니다. 나의 관찰과 관계 맺음을 통해 매 순간 새롭게 열리고 만들어지는 역동적인 장이다.

"우리가 정작 경계해야 할 것은 실재란 어떠해야 한다는 편견에 사로잡혀 부단히 넓어지는 미래의 발견을 가로막고 그럼으로써 그 벽을 스스로 만들어내는 것이다."

마그리트와 세 인물이 던지는 질문은 나의 견고한 인식을 뒤흔든다. 진리라고 믿었던 사실이 무너질 때 허탈감도 느껴지지만, 그 틈새는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한다. 우주적 관점에서 우리는 양자역학의 입자처럼 작은 존재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무력한 관찰자가 아니다. 세상과 관계 맺는 바로 그 행위 속에서, 우리는 이미 세계를 만드는 일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뉴스를 보며 연일 바뀌지 않는 세상에 실망감이 몰려올 때, 하이젠베르크를 떠올려도 좋겠다. 우리가 세상을 관찰한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세계를 변화 시킨다는 사실을, 그는 과학으로 증명해 냈으니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인스타그램에도 실립니다.


천사들의 엄격함 - 보르헤스, 하이젠베르크, 칸트 그리고 실재의 궁극적 본질

윌리엄 에긴턴 (지은이), 김한영 (옮긴이), 까치(2025)


#윌리엄에긴터#천사들의엄격함#까치#칸트#보르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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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미선 (linatry) 내방

도시의 바쁨에서 벗어나, 별이 총총하고 잣나무 향기가 가득한 시골 마을에서 살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철학책을 펼쳐 한 문장 한 문장 천천히 곱씹는 기쁨을 새롭게 발견하고 있습니다. 느리지만 깊이 사유하는 삶을 배워가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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