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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여행가방 ⓒ 이혁진
오늘 오전 아내는 여행을 떠났다. 매년 이맘때 7~8명의 초등학교 동창들이 1박 2일 함께 지내는 것이다. 여행은 모처럼 일상에서 탈피하는 시간이다. 원래 지난해 연말에 잡은 일정인데 신년 모임을 겸해 변경했다고 한다.
아내는 달력에 큰 동그라미를 그려놓고 여행 일정을 한 달 전부터 예고했다. 이날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방해하지 말라는 무언의 신호다. 부재중에 탈없이 잘 지내라는 의미도 담고 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내의 여행이 시작된 것이다.
여행을 앞두고 아내는 부산했다. 장을 보고 내가 좋아하는 콩나물국과 동태찌개를 각각 한솥 준비했다. 비빔밥을 먹을 수 있도록 콩나물과 시금치도 무쳐 놓았다. 먹방을 해도 좋은 음식들이다. 여행 가는데 수고하지 말라고 말려도 소용없다. 결국 내가 못 미더운 것이다.
아내의 우정 여행

▲윷놀이 기구, 아내동창들은 여행에서 편을 갈라 윷놀이를 즐긴다. 지는 팀은 밥을 사야한다. ⓒ 이혁진
아내 동창들은 모이면 무엇을 하며 지낼까. 해마다 윷놀이를 한다. 어릴 적 설날에 즐겼던 윷놀이 대회 추억에 빠지는 것이다. 편을 갈라 시합을 하는데 지는 팀은 현지의 맛있는 음식을 대접해야 한단다.
윷놀이에 이어 밤새 이야기꽃을 피운다고 한다. 여행을 다녀와서도 피곤함을 모르니 철인들이다. 가만 보니 그 비결은 여행을 통해 서로 힘든 생활과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며 공감하는 데 있는 것 같다. 여기서 강한 유대와 의리도 생겼다. 아내 동창들은 진한 우정을 평생 나누고 있다. 이들은 계를 만들어 해외 여행도 다니고 있다. 내년에는 칠순 기념 해외여행도 구상 중이라고 한다.
아내가 여행을 떠나면 내심 걱정이다. 체력이 약해 혹시 잠은 제대로 잘지, 감기가 걸리지 않을까 말이다. 그러나 내 마음과 달리 아내는 집을 벗어나면 신나는 표정이다. 노는 데 여념없는지 깜깜무소식이다.
노후 생활에서 여행은 각별하다. 부부가 함께 가면 좋겠지만 여의치 않으면 아내의 여행을 권장하는 게 현명하다. 여행에서 얻은 아내의 즐거움은 가족의 행복으로 이어진다. 은퇴 후 깨달았지만 집안 살림은 끝이 없다. 해방구가 필요하다. 여유가 없는 나는 마음만으로 응원하지만 아내 동창 남편들은 대부분 모임을 성원하고 여행 여비까지 챙겨준다고 한다.
노후의 행복은 편안함에 있다. 가까운 친구들에게서 위로받고 공감할 수 있는 시간만큼 소중한 것이 있을까. 끊임없는 소통과 대화가 샘물같이 필요하다. 아내 동창들이 집을 떠나 함께 여행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스트레스 해소하는 건강한 여행 되길

▲아내가 만든 콩나물국 ⓒ 이혁진
아내가 집을 비우면 몇 가지 원칙이 있다. 특별한 일 없이 여행 중인 아내에게 전화하지 않는다. 한창 흥겨운 분위기를 깰 수 있기 때문이다. 불편한 게 있어도 아내에게 배운 살림을 발휘하고 모르면 자구책을 강구해야 한다.
아내가 없는 집이 썰렁하다. 하지만 자립심을 키우는 시간이다. 삼시 세끼를 혼자 해내는 요령을 터득하고 자신의 위치도 찾아가야 한다. 서로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가까워진다는 말이 있다. 아내가 집을 비우면 그 소중한 존재감을 비로소 알 수 있다.
아내가 여행 중에 모처럼 화장실을 대청소하기로 했다. 귀가 후 아내가 깨끗한 화장실을 보면 깜짝 놀랄 것이다. 여행에서 돌아온 아내는 일상에서 다시 힘을 낼 것이다. 나 또한 아내가 없는 동안 했던 일을 소상히 보고해야 한다. 그게 우리 부부가 소통하며 사는 법이다. 아내가 스트레스를 실컷 해소하고 건강한 여행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