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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9 16:12최종 업데이트 26.01.29 16:12

[사진] 고성 송지호에서 통일을 꿈꾸다

 송지호 둘레길에 설치된 동배북부선 송지호 철교 표지판
송지호 둘레길에 설치된 동배북부선 송지호 철교 표지판 ⓒ 김민수

강원도 고성 송지호. 1984년 여름, 송지호 해수욕장에서 등록금 마련을 위해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다. 그래서 '송지호'라는 이름만 들어도 40년이 넘었던 그 청춘의 시절이 그립고, 송지호에서 재첩을 잡아 재첩국을 끓여먹던 추억도 새롭다. 그렇게 낭만으로만 남아있던 송지호는 사실 분단의 아픔이 절절이 새겨진 곳이다.

송지호 둘레길은 새롭게 조성돼 이전의 모습을 가늠하기가 쉽지 않았다. 가장 최근이라야 10년 전인듯하고, 강산이 변할 세월이니 변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그 변화가 마냥 슬프지만은 않은 것은 송지호의 역사를 가늠할 수 있는 조형물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 중 하나가 '송지호 철교' 상징물이었다. 복원한 것이긴 하지만, 1950년까지 동배북부선 철도는 강원도의 남북(양양-원산)을 오갈 때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이 자원 수탈을 목적으로 1937년 개통한 동해복부선은 한국전쟁 이후 분단이 굳어지면서 운행이 중단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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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차가 이어져있다면, 이 곳에서 블라디보스톡을 거쳐 유라시아, 더 먼 아프리카까지도 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단은 남한을 섬나라로 만들어버렸다. 육로로는 다른 나라를 갈 수 없는 섬나라로 갇혀버린 것이다.

아팠다.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인데, 우리네 분단의 역사에 대해 너무 무지했고, 군사분계선 근처에 사는 이들의 역사나 실향민들의 역사, 엄혹한 시절에 간첩으로 내몰리던 이들의 삶들에 대해서 남의 일처럼 생각했다.

그리고 한 때는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라는 노래를 부르고, '조국은 하나다'라는 구호를 외치고, 금강산 관광길이 열리고, 개성공단이 열리면서 금방이라도 통일이 될 것만 같았는데, 이제 그 꿈도 멀어진 것처럼 느껴진다.

이렇게 분단이 고착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고, 며칠 아니면 몇 달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분단의 세월은 이리도 모진 세월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일은 평화가 깨어질 때, 누구라도 당할 수 있는 일이다. 가족과 헤어지고, 사랑하는 이들을 볼 수 없게 되는 그 잔혹한 일은 평화가 깨어지면 언제라도 일상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해금강
해금강 ⓒ 김민수

통일전망대에 오르니 해금강이 펼져진다. 북녘땅이다. 통일이 감상적인 생각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는 것이겠지만, 쉽지 않은 과제이기에 남북한 지도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평화통일을 모색해야 했는데, 서로를 분단상황을 이용해 먹기에만 급급했던 것 아닐까.

동해를 따라 동해북부선 철로의 흔적이 남았다. 송지호에서 보았던 그 철로가 끊어지지 않고 이어져 있다면, 저 철로와 연결되어 있었을 것이고, 저 철로를 달리는 기차를 타면 원산을 거쳐 브라디보스톡, 런던까지 온 세계를 품는 민족이 됐을 터이다.

여전히 꾸어도 좋을 꿈, 평화통일의 꿈이었으면 좋겠다. 그 꿈이 이루어져 살아 생전 기차표를 들고 세계여행을 떠나고 싶다.

 남북간 철도가 이어져 있다면 부산에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남북간 철도가 이어져 있다면 부산에서 런던까지 기차를 타고 갈 수 있다. ⓒ 김민수

 동해 바다를 끼고 원산으로 오가던 철로
동해 바다를 끼고 원산으로 오가던 철로 ⓒ 김민수


덧붙이는 글 | 지난 27일(화) 다녀왔습니다.


#평화통일#동해북부선#실향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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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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