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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시니어 공간 나날 책방’ 대표입니다. 한 달에 한번 책방에서 연 북토크 이야기를 씁니다.
지난 17일 토요일 세 시, 북쪽 끝자락 파주 '시니어 공간 나날 책방'에 시인이 왔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응축된 그녀의 삶을 통째로 가지고 예쁜 튤립 꽃송이를 안고 왔다. 그녀의 이름은 김선향, 늦깎이로 서른 아홉에 등단한 시인이다. 마치 봄이 시인을 마중 나왔다고 해도 좋을 만큼 볕이 간 만에 좋은 날이었다.

 김선향시인의 강의 모습
김선향시인의 강의 모습 ⓒ 권혁주

작년 11월 책방을 시작할 때 다짐한 게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상황이 아무리 어려워도 매달 좋은 분들을 모시고 북 토크와 인문학 강좌를 열리라는 것, 마을 책방이 그 지역의 문화적 보루가 되도록 하겠다는 의지였다. 그래서 나는 늘 모시고 싶은 분을 찾아 페북 광장에 가득한 무성한 글들의 숲을 산책했다. 나와 내 이웃의 영혼의 허기를 채울 서늘한 진실의 문체를 찾아서.

책방이 지향하는 정체성이라면, 문학은 적어도 아름다운 수사를 나열하는 유희가 아니라 외면받는 존재들의 아프고 무거운 진실을 세상 밖으로 끌어올리는 데 중점을 두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문학의 존재 이유 중 가장 숭고한 지점이 바로 그 불편한 진실을 직면하게 하는 힘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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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이 좋게 페북에서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라는 김선향 시인의 시(동명의 시집 2025년 5월 출간)를 발견했다. 변방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이주 노동자의 힘겨운 삶이 시 속에 담겨 있었다. 시집 겉표지에 진하게 찍혀있는 "죽지도 마!", "어서 도망쳐!"라는 글귀를 보는 순간 그녀를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용기를 내어 페북 메신저를 통해 "가슴이 먹먹해지는 좋은 시를 만났고 그래서 책방에 모시고 싶다"는 마음을 곡진하게 담아 보냈다. 그렇게 우리는 '시니어 공간 나날 책방'에서 40여 명의 여러 세대가 함께 모여 김선향 시인의 시의 세계와 마주하게 되었다.

김선향시인북토크에 참여하는 책방모습 강의에 몰입하는 사람들사진
김선향시인북토크에 참여하는 책방모습강의에 몰입하는 사람들사진 ⓒ 권혁주

함께 한 두 시간이 바람처럼 흘렀다. 삶 속에서 녹여 낸 시를 듣는 내내 가슴은 울컥울컥, 눈시울은 시큰시큰 오랜만에 느껴보는 사람 냄새 가득한 시간이었다. 북토크 마무리 무렵 시인은 결국 나와 나의 제자를 울먹이게 만들었다. 그녀도 시 속의 주인공인 '응웬 두안 썬'을 떠올리며 '나는 얼마입니까'를 낭독하다 안타까움과 미안함, 그리고 그리움이 복받쳐 아마도 가슴으로 울었으리라.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는 그녀의 세 번째 시집의 시 '80cm'의 마지막 행이다. 비록 시인의 목소리로 낭송하는 것은 아니지만 함께 나누고 싶어 시를 글로 옮겨 본다.

80cm
- 김선향

너의 반쯤 감은 눈동자/아니 반쯤 뜬 눈동자
너를 잊을 수 없게 하네/ 나를 견딜 수 없게 하네

어린이집에 간 지 겨우 닷새째/이불을 씌우고 베개를 올린 거대한 그림자 아래
너의 발버둥과 파닥거림이 이어지던 14분

네 어미 보티늉은 네가 누운 작은 관에/털실과 장갑을 함께 넣었단다
영상통화로 입관식을 지켜보던 네 외할머니는/베트남 하띤에서 오열하는구나

나는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얼음장 같아 얼른 손을 뗐지만
손바닥엔 화인이 찍히고 말았구나

"작고 어린아이가 차가운 주검이 되어 눈앞에 있을 때 차갑게 식은 어린 타자의 뺨에 닿은 손길의 느낌은 어떠했을까?" 어제까지만 해도 보드랍던 살결은 이제 한겨울 서리 앉은 창유리처럼 차갑기만 한데, 시인의 손바닥의 온기로는 아이의 멈춘 심장을 다시 돌릴 수가 없으니, 아이를 지켜주지 못한 세상이 더 시리고 차갑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그래서 아이의 뺨을 만진 시인의 손바닥에는 평생 지워지지 않을 화인이 찍히고 말았으리라.

시 속의 '어미 보티늉'의 슬픔처럼 우리 사회엔 이런 참혹하고도 가슴 아픈 비극이 얼마나 많은가. 차가워진 아이의 뺨에 닿았던 그 손길을 잊지 않기 위해 사회와 부모와 어른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뼈아프게 자성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보게 되는 시였다.

세 번째 시집에는 '도망친 여자, 나는 얼마입니까?, 띤띤의 편지, 하노이에서 온 사람들, 라일락 아래 홈리스' 등 아주 많은 시들이 실려 있다. 북토크 중 시인이 읽어준 '나는 얼마입니까?'를 들으며 나는 가슴으로 울었다. 시의 일부를 옮겨 본다.

저는 베트남에서 온 응웬 두안 썬입니다.
한국 이름은 원도산입니다.
나이는 서른 여덟살입니다.
2021년 11월 29일 한국에 왔습니다.

50m 높이에서 추락하는 찰나의 시간을 저는 헤아릴 수 없었어요.
대형 거푸집과 같이 떨어졌죠. 그래서인지 덜 쓸쓸했어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아요. 헛웃음이 나오려 해요.

내가 일하는 아파트 공사장에서는 인명 사고가 끊이지 않았더라고요.
2020년 10월에도 2021년 4월에도 근로자가 죽었다는 기사를 봐요.
누군가는 또 죽어 나가야 했는데 마침 우리였던 거네요.

오늘 죽은 우리 두 사람이 한국 사람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일까요.
보상금이 몇 배나 적게 들겠죠.
제 목숨값이 얼마나 될지 저도 너무너무 궁금해요.
과연 건장한 30대 베트남 사내의 몸값은 얼마일까요.

- '나는 얼마일까요'의 부분

'나는 얼마입니까?'에 담긴 뼈아픈 역설과 슬픔이 마음을 무겁게 눌렀다. 한국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노동의 차별적 가치, 그리고 그 이면의 비극을 날카롭게 꿰뚫고 있는 시다. 50m에서 추락하며 "나는 얼마일까요?"라는 질문을 통해 인간 존엄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던지고 있는 글이다.

이 사회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잔인한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산문 같은 시였다. 시인은 베트남 청년의 일생을 담은 글을 읽으며 그와 만났던 시간 들이 떠 올라 마음이 많이 아팠을 것이다.

'실천문학' 신인상을 수상하며 2005년에 작품활동을 시작한 시인의 세계는 남다르다. 시인의 시의 중심언어는 소외된 노인과 어린이, 무명의 죽음, 이주 노동자 여성에 이르기까지 시대의 가장 낮은 곳, 변방으로 밀려난 외롭고 쓸쓸한 이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것이다.

그녀의 시는 단순히 불쌍한 이웃을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시스템의 모순에 분노하기도 하고 시인의 마음 안에는 약자에 대한 처절한 연민과 인간애가 숨겨져 있다. 그녀의 시의 세계는 인간에 대한 연민과 사랑으로 고군분투한 뜨거운 삶의 여정을 기교 없이 담백하게 녹여냈기에 좋았다.

그날 사회는 <일렁이는 음의 밤>이라는 첫 산문을 낸 최지인 시인이 봤다. 사회자와의 대화가 오고 가는 동안 시인의 눈은 반짝였으며 시를 낭송하다 잠시 숨을 고르듯 침묵하며 힘겹게 말을 이어가기도 했다.

김선향시인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북토크에 참여한
김선향시인 시집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북토크에 참여한 ⓒ 권혁주 선생님

시니어공간 나날 책방에는 늘 오래된 제자들과 작년 퇴임하기 전까지 함께했던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이 자주 찾아온다. 김선향 시인의 북토크에도 어김없이 제자들이 초대되어왔다. 학원 가랴, 친구 만나랴 바쁠텐데도 불구하고 우리 아이들은 선생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줄 아는 멋진 아이들이다.

올해 국제고에 입학하게 된 배슬아(장성중 제자)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시라는 언어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에게 따뜻함을 내어주는 시인의 삶을 들으면서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다짐했다"며 "이런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한 명 한 명 모이다 보면 더 따뜻한 세상이 될 것 같다"는 긴 장문의 문자를 보내왔다.

매달 하는 북토크와 인문학 강의 시간들에 시대의 희망인 나의 사랑하는제자들과 함께 할 생각을 하니 저절로 가슴이 뛰고 따뜻해진다. 파주 북쪽 끝자락에 위치한 '시니어공간 나날 책방'은 매달 좋은 분들을 모시고 점점 삭막해지고 강팍해지는 우리의 삶에 따뜻한 불씨를 지피는 작은 불꽃이 되기 위해 더욱 노력하리라 다짐해 본다.

덧붙이는 글 | 북토크 후 시간이 흘렀지만 그때의 상황을 자세하게 녹여내느라 글이 늦어졌습니다.


어쩌자고 너의 뺨에 손을 댔을까

김선향 (지은이), 청색종이(2025)


#김선향시인북토크#어쩌자고너의뺨에손을댔을까#파주시니어공간나날책방#전세대가함께모여배우고성장하는공간#이주노동자에대한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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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승훈 (kind7504) 내방

34년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다 2025년 2월 퇴임 후 오랜 꿈이었던 책방지기를 하며 유쾌하고 즐겁게 살고 있음. 책방이 사람과 사람을 따뜻하게 이어주는 사랑방 같은 다정한 공간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려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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