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값 사상 최고치 뉴스에 '집에 있는 금 생각'이 간절합니다. 없으면 아쉽고 있으면 뿌듯하고. 저마다 갖고 있는 금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포모(fomo, fear of missing out). 나만 소외될까 두려운 마음. 집값이 급등했을 때 처음 들었던 이 용어는 주식시장이 호황일 때도 적절하게 사람들의 마음을 대변했다. 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어느 상황에서 쓰여도 대체로 잘 들어맞는, 사람의 두려움과 소외감을 아주 잘 포착한 단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포모와는 무관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금값 폭등, 한 돈에 100만원까지 올랐다는 뉴스를 보면서 그 비슷한 느낌을 받는다. 금을 사두지 못해서가 아니다. '금'에 얽힌 아릿한 추억 때문이다.
집에 온 전집 판매원 "금 있죠?"
때는 초등학교 졸업식, 아니 국민학교 졸업식이었다. 선견지명이 있었던 건지 나의 엄마는 꼭 졸업식마다 금 함량이 높은 반지를 하나씩 선물해 주셨다. 초등학생이 반지를 낄 것도 아닌데 그때부터 졸업 선물로 꼭 순도 높은 금반지를 선물 받았다.
국민학교 졸업반지, 중학교 졸업 반지, 수능 100일 반지, 고등학교 졸업 목걸이, 성인식 기념 반지. 대학교 졸업 반지. 대학원 졸업 팔찌. 음... 졸업이 아니라 생일마다 받았으면 더 좋았으련만. 매년 돌아오는 생일이 아니라, 몇 년에 한 번 있는 졸업식을 택한 건 엄마의 큰 그림이었을지도 모른다.

▲(서울=연합뉴스) 임화영 기자 = 국제 금값이 사상 처음 온스당 5천500달러를 넘어선 29일 서울 종로구 한국금거래소 종로본점에 금 상품이 전시돼있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금 현물은 한국 시간 29일 오전 11시 온스당 5천542.53달러로 전날 종가(5천417.21달러)보다 약 2.3% 오른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2026.1.29 ⓒ 연합뉴스
그런데 아무리 반지여도 금반지를 끼고 다닐 수는 없었다. 액세서리가 하고 싶던 순간이 있기도 했지만 어린 내가 생각하기에도 너무 노골적인 노란 금이어서 고이고이 간직만 했다. 개수가 많지는 않았지만 실(?)했던 반지와 목걸이와 귀걸이들은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도 엄마가 적금 붓듯 나에게 준 약간의 비상금 같은 게 아니었을까 싶다. 나중에 언젠가 꼭 필요한 곳에 쓰라는.
그런데 정말 그 순간이 오기는 왔다. 때는 2010년. 남편은 결혼 후 다시 학생이 되어 한참 학업을 이어가고 있을 때였고, 나는 둘째 아이를 출산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혼자서 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고, 우리 부부에게는 정기적인 수입이 없을 때였다.
그러나 첫 아이 엄마의 교육열이라는 게 어디 집안 사정 봐가면서 있던가? 교육 특구라는 곳에 살다 보니 이 집 저 집 더욱 비교가 될 수밖에. 옆집 아이들은 영어유치원에 사고력 수학 학원에 뭐에 뭐에 그야말로 영재교육의 산실 같은 곳에 살면서 돈은 없고 마음은 조바심에 몸부림을 치던 시절이었다.
그래도 뭐 진짜 마음 뿐이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큰 아이에게 마음껏 책을 읽히는 일뿐이었다. 그런데 나의 조급함에 불을 질러주려는 건지 아이가 책을 너무 빨리빨리 읽어 내는 거다. 집에 있는 전집은 이미 너무 많이 봐서 더 이상 볼 책이 없는 그 안타까움! 지금이야 웃어 넘기지만 그맘때의 아이를 키워본 엄마들은 모두 알 거다. 지금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될 것 같은, 그 포모의 순간을.
그런데 왜 그렇게 아이들 전집은 비싼지. 아무리 봐도 몇 글자 들어가 있지 않은 것 같은데, 납득할 수 없는 책값이 야속했다. 물론 도서관에서 빌려도 봤는데 둘째인 갓난아이까지 데리고 매일매일 동화책을 빌리러 도서관에 간다는 게 마음처럼 쉽지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무작위로 전화를 돌리던 전집 방문 판매원의 전화를 받게 되었다. 고맙게도 직접 집으로 오시겠다는 (내게는 호의로 들렸던) 그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웰컴입니다. 어서 오세요. 그 길로 달려온 방문 판매원 아주머니. 우리 집을 쓱쓱 둘러보시고서는 단번에 전집 네 종류를 추천해 주셨다.
"아, 이 아이는 어떤 어떤 어떤 전집을 넣어주면 좋겠네요."
아주머니는 오래 머물지도 않았는데, 고작 30분도 안 되는 시간에 나는 아주머니에게 홀딱 넘어가고 말았다. 사실, 책을 보는 내 눈은 반짝거렸을 테고 그걸 알아차리지 못하기가 더 힘들었겠지만. 가격이 책정되고, 현란하게 할인율이 계산되었는데, 할인된 그 가격이 몇 백 만 원이었다. 기가 찼다. 안 되겠다 싶었다.
"저... 그런데 돈이 이만큼 없는데요."
"음... 그러면 이렇게 해요. 금 가지고 있죠? 애들 돌반지, 엄마 목걸이 반지 귀걸이 있을 거 아니에요. 그거 받아줄게요. 엄마들 금 많이 있잖아. 다들 그걸로 해요."
"금...이요?"
왜 하필 그때 그게 생각이 난 건지. 엄마가 주었던 그 금반지들 말이다. 나는 얼른 방으로 들어가 금반지, 금목걸이, 금팔찌 그리고 금이 들어간 액세서리까지 몽땅 들고 나왔다. 아주머니는 나의 금을 이리저리 제대로 보지도 않고 냉큼 챙겨 나서며 책은 곧 배달이 될 거라고 말했다. 어! 어? 이게 아닌데! 금값이랑 책값이랑 따져보지도 않고요?
내가 어리둥절해 있는 사이, 아주머니는 집을 나섰고 뒤늦게 무엇인가 잘못 되었다는 걸 깨달은 나는 곧바로 아주머니께 전화했지만 아주머니는 전집 계약 취소는 물론, 내 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완강히 말했다. 수능 잘 보라고 받은 반지 하나만이라도 돌려받을 수 없냐고 부탁했지만 안 된다고 했다.
눈 뜨고 코 베인다는 말이 무엇인지 알 거 같았다. 정말이지 눈물이 났다. 엄마한테 미안해서. 엄마가 이러라고 무슨 때마다 내 몫으로 금붙이를 마련해서 준 건 아니었을 텐데 하는 생각과 미련한 나에 대한 후회감 때문에.
엄마는 모르는 금반지의 행방

▲우리 엄마는 아직 모른다. 그 금반지들의 행방을. ⓒ 오마이뉴스
책과 맞바꾼 금. 그 뒤로 금값은 계속 올랐다. 한 돈에 10만 원이 간다더라, 25만 원이라더라, 50만 원까지 올랐다더라. 급기야 2026년에는 금 한 돈 값이 100만 원이 되었다는 기사를 접하기에 이르렀다.
그때마다 과거의 씁쓸한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 팔았으면 수십 배는 더 벌었겠지. 무엇보다 그 네 질의 전집으로 퉁칠 금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사실, 돈보다 엄마가 나의 기념일을 기다리며 마련해 주었던 선물이었기 때문에 더 속이 상했다. 어리디 어린 내 손에 맞췄던 졸업 반지며 수능 대박을 기원하며 끼워주었던 반지. 그 보고 싶은 내 추억들 말이다.
돈으로만 따지면 그렇지만 결국 내 마음을 다시 잔잔하게 만드는 생각은 바로 이거다. '아, 그래... 내 딸이 그래도 그때 그렇게 책을 읽어서 국어를 잘하는 거겠지. 뭐... 맞아... 내가 그때 그 전집을 안 사줬더라면 책에 흥미를 잃었을지도 모를 일이잖아?' 하는 긍정회로를 돌려보는 것.
지난해 수능이 그 증거렸다(아무 근거 없지만 이렇게 된 이상 우겨보고 싶다). 그 어려웠다는 1교시 국어 영역에서, '국어는 집을 팔아도 안 된다(그만큼 점수를 올리기 어렵다는 뜻)'는데, 여유롭게 1등급을 받았으니. 몇 십 년 전 수능 대박을 바라던 엄마의 금반지가 이제와 효과를 발휘라도 한 걸까(이것 역시 무한 긍정 회로를 돌린 결과).
그런데 참. 이건 비밀인데, 우리 엄마는 아직 모른다. 그 금반지들의 행방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