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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30 16:25최종 업데이트 26.01.30 16:25

결혼 33년차 남편이 말하는 '설거지의 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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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33년차 생활동안 수없이 아내와 가사분담을 했으나, 요즘처럼 가사 노하우가 정리되는 느낌은 첨이다. 뭔가 규모가 딱 잡힌다고나 할까. 그래서 '빨래의 일곱 가지 도(관련기사 : 결혼 33년 차, '빨래'하다 드디어 '원리' 깨달았습니다)'에 이어 '설거지의 일곱 지 도'를 읊어 볼까 한다.

1. 유비무환

막노동을 다녀 봐도 그렇고, 가사를 해봐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할 때, 본게임을 잘하려면 사전준비가 중요하다. 어떤 때는 본게임보다 사전준비 하는 시간이 더 걸리기도 한다. 아무리 귀찮고 시간이 걸려도 이런 시간을 생략하면, 대부분 본래 일이 더디거나 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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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도 마찬가지다. 설거지를 하려고 싱크대 앞에 딱 서면, 사전준비부터 해야 한다. 선반에 말리던 그릇은 제 자리로 갖다 넣는 건 기본이다. 그래야 지금 설거지 그릇이 들어갈 자리가 확보된다. 이 과정을 생략하면, 설거지 스텝이 꼬인다. 스텝이 꼬이면 일도 더디고, 효율도 떨어진다. 이 간단한 원리를 그 전엔 난 왜 몰랐을까. 루틴처럼 하지 못하고, 이랬다저랬다 했던 나를 반성한다.

2. 녹색실천

내가 어렸을 적, 울 엄마는 설거지를 하면서 주방세제를 자주 쓰지 않으셨다. 주방세제를 쓰기 귀찮으셔서 그러신 건지, 아니면 50년 전 그때 벌써 엄마는 녹색실천을 염두에 두신 건지 알 길이 없다. 암튼 나는 신기한 눈으로 보았고, 엄마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스타일의 설거지를 하시곤 했다. 지금 내가 엄마의 방식을 따르고 있는 걸 보면 신기하다.

이건 '사전준비'와도 상통하는 일이다. 개수대에 담긴 그릇을 일단 '초벌 씻기'를 한다. 수돗물의 수압을 최대한 이용해서 골고루 씻어 내린다. 일일이 그릇 하나하나를 들어서 물로 씻어 내린다. 음식이 많이 묻은 것은 좀 더 시간과 정성을 들인다.

만일 '초벌 씻기'에도 씻기지 않은 그릇이 있다면, 준비된 고무 주걱으로 한 번 더 '쓰윽' 닦아낸다. 그렇게 '초벌 씻기'와 '고무 주걱질'을 하고 나면, 웬만해선 주방세제를 쓸 일이 없다. 그래도 안 되는 별도리가 없다. 주방세제를 조금 써서 세척한다.

이때도 주방세제 사용할 그릇은 맨 마지막 순번으로 돌리고 극소량으로 사용한다. 굳이 다른 그릇에 세제를 묻히지 않으려고 한다. 사실 아무리 깨끗이 씻어낸다 해도, 미세하게 주방세제가 그릇에 묻어 있을지 누가 아는가. 음식물과 주방세제 중 어느 것이 더 몸에 해로울까.

주부를 영어로 '하우스키퍼'라고 하는 것은 참 적절한 말인 듯하다. 설거지를 함으로써 가정을 지키는, 더 정확하게 표현하면 식구의 건강을 지키는 사람이 아닌가. 이런 사람이 가정도 지키면서 지구도 지켜야 하지 않을까. 그래야 결국 내 가정도 지킬 테니까.

3. 절차탁마

'절차탁마'란 뼈나 상아나 옥돌로 물건을 만들 때 순서를 밟아 다듬고 또 다듬어 완전무결한 물건으로 만드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사자성어 속에 '절차'란 말이 있듯이, 모든 일에는 순서와 절차가 있다는 말로도 사용된다.

이런 뜻이라면, 설거지에도 적절한 표현이다. 앞의 사전준비 절차도 그렇거니와, 본게임도 마찬가지다. 설거지를 할 때는 비교적 깨끗한 그릇부터 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래야 깨끗한 그릇에 묻을 염려가 없다. 숟가락이나 가벼운 것부터 먼저 설거지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겁고 부피가 있는 것은 나중에 해야 한다. 사실 전에는 뒤죽박죽 하다 보니 사후정리도 쉽지 않았었고, 심지어 하다가 접시를 깨기도 했었다. 요즘은 파손사고가 거의 없다.

뿐만 아니라 말리는 그릇은 단계적으로 해야 한다. 먼저 개수대에 마련 된 1차 선반에 씻은 그릇을 둔다. 이때는 보기 좋게 놓지 말고, 잘 포개어서 빨리 놓는 게 생명이다. 그래야 나머지 설거지를 신속하게 할 수 있다. 이건 '초벌 씻기'가 아니라 '초벌 정리'라고 해두자. 그 자리에 두고 어느 정도 물이 빠지기를 기다린다.

설거지를 끝내고 사후처리가 끝나면, 그때 가서 초벌 정리한 그릇을 싱크대 상단 선반에 보기 좋게 그릇을 정리한다. 이것이 2단계 정리다. 실제로 아래선반에서 위 선반으로 옮기는 단계별 절차가 실행된다. 아래선반에 그대로 두면 물이 튀어서 그릇이 잘 마르지 않는다.

4. 금상첨화

 숟가락이나 가벼운 것부터 먼저 설거지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겁고 부피가 있는 것은 나중에 해야 한다.
숟가락이나 가벼운 것부터 먼저 설거지 하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무겁고 부피가 있는 것은 나중에 해야 한다. ⓒ jccards on Unsplash

'금상첨화'는 빨래 기사에서도 언급했던 원칙 중 하나다. 이것은 설거지 할 때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이전에는 설거지 그릇을 특별한 루틴 없이 아무렇게나 전시했었다. 그래도 마르긴 했었다.

하지만 문제는 잘 마르지 않는다는 것. 아래선반에서 말릴 때는 수돗물이 튀어서 늦게 말랐다. 위 선반에 있을 때는 그릇이 엉켜서 빨리 마르는 그릇과 늦게 마르는 그릇에 구분이 없었다. '빠른 그릇'과 '늦은 그릇'이 너무 딱 붙어 있으면, 그곳은 잘 마르지도 않았다.

지금은 다르다. '빠른 그릇'과 '늦은 그릇'을 구분해서 말린다. 그릇을 전시할 때도 너무 딱 붙지 않게 일정한 간격을 둔다. 그래야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준다. 사람과 사람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물론 이렇게 굳이 하는 것은, 내가 나에게 주는 보상이다. 설거지한 그릇을 예쁘게 전시한 걸 보고 뿌듯해 하는 보상을 포기할 수 없다. 아내에게도 은근히 자랑하는 맘이라는 걸 아내는 알란가 모르겠다.

5. 유종의 미

우리는 일을 잘하고도 마무리가 시원찮아 낭패를 보곤 한다. 설거지도 마찬가지다. 열심히 설거지를 해놓고 마무리가 시원찮으면, 누가 봐도 설거지를 제대로 한 것 같지 않다.

일단 개수대 속 거름망에 음식 찌꺼기를 잘 처리해야 한다. 여름 동안에는 분리배출을 했지만, 요즘은 찌꺼기를 뒷문을 통해 나가서 뒷마당에 처리한다. 무슨 말이냐고? 그렇다. 바로 거름으로 모은다. 옛날 시골의 일상을 실천한다. 그것을 모아다가 봄이면 썩혀서 밭의 거름으로 사용한다. "이게 바로 시골 사는 맛 아닙니까".

그러고 싱크대로 돌아와서 행주로 조리대와 선반 그리고 서랍 등을 닦는다. 이때는 조리대 등에 낀 고춧가루 한 알도 놓쳐선 안 된다. 개수대와 주변 물기도 제거하는 것은 필수다. 최후로 행주를 잘 씻은 후 꾹 짜서 싱크대에 넌다. 지금은 겨울이라 습기 제공 차원에서라도 덜 짜서 말리지만, 여름엔 특히 힘을 줘서 행주를 꽉 짜야 한다. 이래야 설거지가 비로소 끝난다.

6. 즉시해소

설거지는 사람의 마음을 훈련시키는 좋은 재료다. 설거지를 바로 바로 하면 좋지만,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 '좀 있다 하지'란 맘을 설거지 거리 앞에서 안 먹어본 사람도 있을까. 나도 습관적으로 그랬었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 문제와 직면하기 싫어서 피하곤 한다. 아니면 미루곤 한다. 그러면 문제 자체와 함께 미루는 습관이 첨가가 되어, 그 문제는 더 처리하기 싫어진다. '회피술'과 '지연술'을 쓰다가 결국 하고 만다. 문제는 그럴 줄 알면서도 다음에 또 그런다는 것.

내가 해보니 습관을 들이면 된다. 습관은 내가 하고 싶든 하기 싫든 조금은 노력을 해야 한다. 이렇게 말하는 나도 노력했다. 사실은 그것보다 사실은 7번째 말하는 '인식전환'이 먼저이긴 하다. 이건 쉽지 않지만, 하고 나면 쉽다.

7. 인식전환

나는 개인적으로 설거지를 가사노동 중 제일 좋아한다. 두 가지 이유다. 다른 가사에 비해 처리속도가 빠르고, 효과와 보람이 바로 나타난다. 딱 내 스타일이다. 거기다가 굳이 첨언한다면, 손에 물이 묻는 느낌과 달그락달그락 하는 소리가 좋다. 마치 그 옛날 울 엄마가 설거지하는 그 느낌을 그대로 따라하는 듯하다.

사실 설거지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주부들이 많다고 들었다. 음식물 등 더러운 오물을 손으로 만져야 한다. 물과 자주 접촉하면 주부습진도 발생할 우려가 있다. 주부는 무엇보다 요리하는데 지치고, 식사 후엔 배불러서 지친다. '밥을 먹고 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싫다'는 게 인지상정이다.

이래서 가사분담이 중요하다. 울 집은 아내가 요리담당, 나는 설거지 담당이다. 아내는 요리만 하면 된다. 나는 설거지와 뒷정리 및 평소 청결유지까지 한다. 그러는 이유는 아내는 요리하는 걸 좋아한다. 더 직접적으로 표현하면, 자신이 요리한 음식을 식구들이 잘 먹으면 그렇게 좋아한다.

여기서 인식전환을 말하면 이렇다. 설거지를 누가 하느냐(싱글은 예외다)는 특정할 일이 아니다. 누구든 해야 한다. 음식을 먹는 사람이라면 말이다. 특히나 그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하면 된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냐고. 있다. 누구나 그 일보다는 이 일이 좀 더 좋다는 호불호가 있기 마련이다. 나 같은 경우엔 요리보다 설거지다.

또한 6번 '즉시해소'에서도 말했듯이 '인식전환'은 필요하다. 전에는 주방에 그릇이 좀 흐트러져 있어도, 더러운 게 묻어 있어도 무심코 지나쳤다. 지금은 다르다. 그런 꼴을 못 보겠다. 내가 달라졌다. 인식이 전환되었다. 왠지 주방이 정리되지 않은 것을 보면 내 삶이 정리되지 않은 듯 느껴진다. 이것은 다른 가사도 마찬가지다. 심리적으로는 약간의 '강박관념'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선 적당한 '강박관념'은 삶의 유익이 된다.

하여튼 오늘도 나는 주방에서 통쾌한 설거지를 하는 58세 중년 아재다.

덧붙이는 글 | 사진은 앞에 송고했던 기사의 사진과 사진설명글을 사용해주세요


#아재주부#가사#가사노동#주부#설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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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호 (shmh0619) 내방

안성지역에서 '더아모의집'을 열어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며, 가난한 가정, 장애인 가정, 청소년, 외국인 근로자 등을 섬기면서, 2008년 책 <문명 패러독스>를 시작으로 12권의 책을 저술했고, 현재 <나는 중년좌파다>를 집필 중에 있으며, 2026년 초에 출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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