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강붉은뎅이금강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굽이치는 물돌이에 황토흙을 흘려보낸 마달피(사진 왼쪽)가 있다. 선경을 방불하는 지역인 금강붉은뎅이에 이 땅을 지킨 숭고한 혼이 숨쉬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1월 5일, 충남 금산 부리면 수통리에서 출발해 경관 명소 귀래정을 지나 인삼골 잠수교로 내려서서 금강을 건넌다. 어디서 날아온 철새 떼가 머리 위 상공을 군무하듯 돌다 솟구친다. 이 땅의 숨결을 느끼기 위해 국토 순례를 하는 우리 일행을 격려해주는 것만 같다. 강을 건넌 곳은 국토 순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금강붉은뎅이 권역이다. 제원면의 최남단인 금성리, 용화리 지역이다.
금강붉은뎅이란 임진왜란 발발해인 1592년, 이곳을 지키던 금산 군수 권종(權悰,1554~1592)이 왜군의 진로를 차단하기 위해 금강의 깊이를 알 수 없게 붉은 황토흙을 강물에 풀었던 데서 유래했다.
그때로 돌아가보자. 조선을 침략한 지 20일도 안 돼 파죽지세로 서울에 당도한 왜군은 보급로 확보의 필요를 절감하고 곡창지인 전라도 점령에 나선다. 서울에 있던 고바야카와의 대군이 전주성을 점령하기 위해 영동을 거쳐 금산으로 들어가는 길목에 이곳 용화리가 있었다.
풍요로운 강변, 평화만 가득했던 용화리
용화리는 저곡리(닥실나루)와 함께 조선시대 삼남대로의 길목인 충북 영동군과 찰방역인 금산 제원역을 잇는 금강변 요지였다. 용화마을 앞엔 용화나루가 있어 영동 양산 방면에서 기웃재를 넘어 금산장을 보기 위해 찾아드는 장꾼들로 붐볐다. 금강이 동쪽으로 굽이쳤다가 다시 서쪽으로 방향을 바꾸는 반도 지형이 아담한 야산지대(마달피산)로 마감돼 있는데, 그 아래 용화마을이 아늑히 자리하고 있다.

▲용화마을영동과 금산을 이어주던 요지인 용화리를 대표하는, 금강변에 자리한 용화1리 마을 ⓒ (사)사람길걷기협회
용화마을로 가는 달고개를 넘기 전 금강변에서 양 옆의 산 사이로 돌아흐르는 물굽이와, 뒤를 받히고 선 성주산, 갈기산들이 어우러진 정경을 보노라면 마치 아득한 선경에 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임진왜란이 일어난 그때도, 강변엔 모래사장이 펼쳐지고, 뒤엔 야산이 있고, 철따라 물고기가 풍부한 강을 낀 우아한 풍경 속에 아이들이 뛰놀고 나룻가엔 장꾼들이 복작거렸겠지.
하지만 일상의 평화는 침략으로 깨졌다. 6월 20일(양력 7월 28일) 왜군이 옥천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은 당시 금산 군수 권종은 목숨을 건 일전을 준비했다. 용화리 동쪽 강변의 둔덕 마달피에서 붉은 황토흙을 파내 강물에 떠내려 보냈다.
왜군이 강의 깊이를 알 수 없게 도강을 지연시킨 다음 조금 더 내려간 저곡리 저곡산성 아래 갯터(닥실나루) 강기슭에서 왜적을 기다렸다. 당시 왜군은 1만5700명, 권종이 모은 병력은 200명이 채 안 됐다. 내 땅과 가족을 목숨 바쳐 지키겠다는 당위만 있었던 그들에게 숫자는 문제가 아니었다.
피로 지켜낸 전라도, 임진왜란사 가장 큰 성과
잠시 머뭇거렸던 왜군은 하루 만에 강의 깊이를 파악하고 물길을 낸 22일 이른 새벽부터 들이닥쳤다. 권종은 강을 건너오는 왜군을 맞아 하루종일 싸웠고, 다음날까지 싸우다 전장에서 아들 권준과 함께 순국했다. 우리 군은 전멸했다. 권종 부대를 격파하고 1592년 6월 23일 금산성을 점령한 왜군은 전주로 진격하기 위한 사령부를 설치했다. 본대는 금산성을 지키고, 제1대는 웅치를 넘어가고, 제2대는 이치를 넘어가는 양동작전으로 전주성으로 향했다.
이후 전라도를 방어하기 위한 우리 의병, 승병, 관군의 필사의 전투가 벌어진다. 고경명 의병장이 이끈 금산 1차 전투에서 고경명 장군, 둘째 아들 고인후가 전사했고 의병 7000명이 전멸했다. 조헌 의병장과 영규대사가 이끈 금산 2차 전투에서 조헌과 그의 아들 조극관, 영규대사 등이 전사했고 의병과 승병 1500명이 모두 전사했다. 이 때 모은 시체 700명으로 '칠백의총'이란 무덤이 만들어졌다.
황박 의병장, 나주판관 이복남, 김제 군수 정담 등 전라도의 모든 관군과 의병 도합 1000명이 모여 1만의 왜군을 맞아 벌인 웅치 전투에서 화살이 떨어질 때까지 싸웠고 결국 전멸했다. 같은 날 도절제사 권율 장군이 이끈 이치전투에서 우리 군은 크게 승리한다. 전라도 최후 방어선을 지켜낸 것이다.
말도 안되는 중과부적의 숫자로 싸운 붉은뎅이 전투가 모두의 의기를 일으켰고, 금산 1차·2차·웅치·이치 전투에서 죽기까지 싸웠던 우리 의병들로 인해 왜군의 전력은 크게 약화됐다. 결국 전주 최후 방어선인 웅치와 이치에서 일본을 퇴각하게 만들었다. 이로써 곡창지 전라도를 지켜낼 수 있었다.
누가 이 땅을 지키는가

▲달고개용화마을로 가기 위해 달고개를 넘는 순간 갑자기 눈보라가 몰아친다. ⓒ (사)사람길걷기협회
그곳, 자랑스러운 금강붉은뎅이 마을 용화리를 지나 왜군이 물밀듯 밀려들던 닥실나루 금강변을 걷는다. 때마침 눈보라가 몰아친다. 날씨도 우리 국토의 일부이다. 궂은 날씨는 우리 국토와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 다가가는 기회가 된다. 이 땅을 지키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섰던 의병들의 마음엔 죽음과 같은 혹독한 눈비가 내렸을 것이다.
절로 감사한 마음이 흘러나온다. 우리가 이렇게 국토순례를 할 수 있는 이유는 순전히 그분들 덕택이기 때문이다. 당시 조정은 무능하고 당쟁으로 나라를 말아먹는 상황이었지만, 전문 훈련도 받지 않고 변변한 무기조차 없던 민초들이 의병을 조직했다. 일반 백성들의 의지가 이 땅을 지킨 것이다.
강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권충민공(권종)순절비가 서 있다. 다시금 평화로 가득 찬 금강을 바라보고 계실 것이다. 가슴이 먹먹해 진다.

▲닥실나루(갯터) 앞 금강왜적 1만5000의 대군이 전라도를 점령하기 위해 건넜던 닥실나루 앞 금강의 평온한 모습. 이곳에서 권종이 사투를 별였고 결국 피로써 전라도를 지켜낸 의병의 의기로 이어졌다. 머지 않은 곳에 칠백의총이 자리하고 있다. ⓒ (사)사람길걷기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