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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29 16:59최종 업데이트 26.01.29 16:59

[주장] '신용사면' 논쟁 그만하자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신용사면' 논란을 지켜보며 필자는 깊은 우려를 금할 수 없다. 정부가 발표한 이른바 서민 금융 지원의 핵심 중 하나인 신용사면은, 그 용어부터 본질을 왜곡하고 있으며 언론의 자극적인 보도는 사태의 본질을 엉뚱한 곳으로 끌고 가고 있다. 빚을 전액 상환한 서민들의 낙인을 지워주는 당연한 조치가 마치 도덕적 해이를 부추기는 특혜인 양 둔갑하는 현실 속에서, 정작 죽어가는 민생의 고통은 철저히 외면받고 있다.

먼저 사실관계를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시행 중인 신용사면의 실체는 '연체 정보를 삭제해주는 것'이다. 그것도 빚을 탕감해주는 것이 아니라, 소액 연체자가 원금과 이자를 전액 상환했을 때 과거의 연체 기록이 금융권에 공유돼 불이익을 주는 기간을 단축해주는 조치다.

금융권 역시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현재의 신용평점 체계는 채무자의 현재 상환 능력이나 회복 의지보다 과거의 오점을 기록하고 낙인찍는 데 지나치게 편중돼 있다. 한 번의 실수로 연체자가 된 이들이 빚을 갚은 뒤에도 수년간 고금리의 늪을 벗어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은, 금융의 본질인 '신용(Credit)'이 아니라 '징벌'에 가깝다.

정부의 정책 또한 미온적이다. 단순히 점수 몇 점을 올려주는 것만으로는 벼랑 끝에 선 서민들을 구할 수 없다. 연체 기록을 가려주는 소극적 구제는 연명치료에 불과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죽어가는 가계 경제를 살려낼 특단의 조치, 즉 한국형 채무감축의 단행이다.

총대출 이자 상한제를 제안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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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그 대안으로 '총대출 이자 상한제'를 제안한다. 빌린 원금보다 이자가 더 많아지는 기형적인 구조 속에서 채무자는 아무리 노력해도 빚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이자의 총액이 원금을 넘지 못하도록 법적 상한을 설정하는 것은, 약탈적 금융으로부터 서민을 보호하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더불어 과감한 원금 감면이 병행돼야 한다. 상환 불능 상태에 빠진 채무자에게 평생 빚을 갚으라고 강요하는 것은 사회 전체적으로도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들이 조기에 사회로 복귀해 소비와 생산의 주체가 되도록 돕는 것이 금융사와 국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는 길이다. 이것이 바로 필자가 주장하는 명실상부한 '진짜 신용사면'이다.

또한 '회복탄력성(Resilience)' 프로그램이 결합돼야 한다. 실패를 자책하는 대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심어주는 심리 상담과 경제적 문해력을 높여주는 교육이 입체적으로 설계돼야 한다. 채무자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다는 효능감을 회복할 때, 비로소 상환의 지속가능성도 보장된다. 이는 단순히 시혜적인 복지가 아니라, 건강한 경제 주체를 다시 길러내기 위한 가장 전략적인 투자다.

우리는 이제 '신용사면'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을 멈춰야 한다. 빚을 갚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의 짐을 함께 덜어주고,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날 수 있도록 손을 내밀자는 것이다.

진짜 신용사면은 숫자의 복구가 아니라 사람의 회복에서 시작된다. 무너진 가계 경제의 토양 위에 회복탄력성이라는 씨앗을 심고, 과감한 채무 구조조정이라는 물을 줄 때, 우리 사회는 다시 활력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바로 금융이 존재해야 할 이유이며, 국가가 감당해야 할 진정한 책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금융과 미래'에도 실립니다.


#신용사면#채무조정#한국형채무감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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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정의롭고 공정한 금융시스템을 누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금융과 미래를 경영하고 있습니다. 부모 경제교육과 청년 금융을 아우르며, 다원적 경제관과 사람 중심의 경제 교육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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