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한 여자가 달려오고 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 얼굴, 손에는 바통이 쥐어져 있다. 드디어 여자의 눈에 결승선이 보이고, 그 앞에는 등을 보인 채 바통을 기다리는 또 다른 여자가 서 있다. 발을 동동 구르며, 언제든 튕겨져 나갈 준비를 하고 있다. 이 여자들의 이름은 '고사미 엄마'다.
지난해 나는 고3 엄마, 요즘 말로 하면 '고사미 엄마'였다. 고사미 엄마로 바통을 쥐고 달린 1년은 누워 있어도 심장이 벌렁거렸고, 머릿속은 혼돈으로 뒤엉켜 있었으며, 들숨과 날숨은 과호흡 직전까지 헉헉 댄 시간이었다.

▲고사미 엄마의 도시락예체능 수험생이라 한번에 3시간이 기본인 실기시험이 필수다. 지난 토요일은 오전, 오후 두개의 대학에 시험을 봤다. 생수,이온음료,탄산, 따뜻한 티까지 준비해갔지만 거의 그대로 안고 왔다. 불쌍한 고사미. ⓒ 정현주
설마설마 여섯 번을 외치며 수시 여섯 번의 불합격을 받아들였고, 수능을 치렀고, 정시 지원을 했고, 예체능 실기시험을 따라다녔다. 그리고 지난 24일, 마지막 시험을 끝냈다. 이제 남은 것은 2월 초 합격자 발표뿐이다. 고사미 엄마로서의 실제 업무는 이렇게 종료되었다.
1년 동안 달려온 이 이어달리기는 이제 결승선을 코앞에 두고 있다. 그리고 그 사이 '예비 고3'으로 불리던 아이들은 '진짜 고3'이 되어 본격적인 고사미 활동을 시작했다. 바통을 넘길 시간이 왔다. 이제 막 트랙에 들어선 후배 고사미 엄마들에게, 내가 달리며 배운 몇 가지 이야기를 남기고 싶다.
가정교육은 1년 휴업 추천
"안 일어나. 지각하겠어."
"알겠다고!!"
아침마다 소리를 지르며 하루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도레미파솔 정도였지만, 결국 도레미파솔라시도까지 올라가야 아이는 쿵쿵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만난 입주민들은 우리 모녀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분명 모녀인데, 어딘가 앙숙 같은 이 다크한 기류를 눈치챈 듯했다.
나의 애마는 어느새 아이 전용 1인용 스쿨버스가 되었고, 조수석은 늘 반쯤 눕혀진 채 고정이었다. 그 아침마다 우리는 말이 없었다. 차가 멈추면 아이는 땅에 싱크홀을 팔 듯한 한숨을 내쉬고 교문 안으로 사라졌다. 고사미 엄마의 아침 두 시간은 다크써클과 잔주름, 굵은 주름이 동시에 생성되는 '급속 노화'의 시간이었다.
수시 발표 날에도 비슷했다, 딸은 방에 있었고, 나는 거실에서 오후 두 시를 맞이했다. 미리 찍어둔 수험표 번호를 입력하고 결과를 확인했다. 혹시나 했지만 역시나 불합격이었다. 한 시간쯤 뒤, 늦은 점심을 먹겠다며 딸이 나왔고 나는 김치찌개와 달걀찜으로 위로 만찬을 차렸다. 그리고 조금 더 멋있는 엄마가 되어보겠다고 쿨내 나는 한 마디를 꺼냈다가 사고가 났다.
"괜찮아. 불합격이 뭐 별거야."
"엄마, 왜 내 거를 엄마가 먼저 봐. 내 개인정보잖아."
내 몸속 중앙에 자리 잡고, 나와 함께 영양분을 나누어 먹던 올챙이가, 손을 놓으면 잡아달라며 울던 꼬맹이가, 어느덧 개구리처럼 팔딱팔딱 뛰어대며 개인정보를 운운한다. '남'이라는 거리감을 넘어 졸지에 개인정보 도용업자가 되었다.
그동안 참았던 인내심이 폭발했다. 나는 '엄마한테 이런 말버릇이 어디 있냐'며 가정교육을 소환했고, '대학이 중요한 게 아니라 인간이 되어야 한다'며 아이를 단군신화 속 동굴로 밀어 넣으며 마늘과 쑥을 던졌다. 아이는 동굴 셔터를 단단히 내렸다.
누가 맞고 틀린 문제는 아니었다. 아이는 그냥 모든 게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어른이었고, 부모였고, 김치찌개를 끓일 여유가 있었다. 아이는 목구멍에 가시가 걸린 상태였다,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나오는 말마다 날이 설 수밖에 없었다.
고사미 엄마로 지낸 1년 내내 나는 갈등했다. 이 꼬라지를 참고 봐줘야 하나, 아니면 가정교육으로 바로잡아야 하나. 생각해보니 나는 핑계를 찾고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부모가 을이 되는 이 상황에 대한 핑계를.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고사미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가정교육 중요하지만 이 1년만큼은 휴업해도 괜찮다고. 1년 쉰다고 어떻게 안 된다고. 그냥 두고 보시라고.
뒤통수 맞는 것에 충격 받지 마시길
지난해 가을, 입시 상담 시즌이 시작되었다. 선착순에 버금가는 속도로 대표 원장 상담을 예약하고 토요일 오후 강남 신사동 건물에 들어섰다. 대기실에는 이미 많은 부녀와 모자들이 앉아 있었다. 상담은 길어졌고, 기약 없는 대기가 이어졌다.
반투명 유리 너머로 다른 가족들의 상담 장면이 보였다. 엄마는 웃고 있었다. 아이 성적이 좋은가 보다. 세 팀쯤 구경한 뒤 우리 차례가 왔다. 우리는 웃지 못했다. 아이도 내 눈치를 힐끔거리기 시작했다. 집에 오는 길, 차 안은 침묵 모드였다.
"뒤통수 맞았어. 생각했던 대학은 어렵겠어."
남편과 방문을 닫고 소곤소곤 한숨을 나누었다. 원장은 내가 원하는 대학에 원서를 넣어 볼 수는 있지만 돈이 아깝고 괜히 고생만 한다고 했고, 나는 생각하지 않았던 대학들을 일렬로 늘어놓는 원장이 탐탁지 못해 애꿎은 학원을 원망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본격적인 입시를 치르며 생각이 달라졌다. 그때 한숨 쉬었던 대학들이 얼마나 높은 문턱이었는지, 시험을 보러 가며 얼마나 부러웠는지, 지금도 얼마나 간절히 원하는지, 고사미 엄마 마음은 참 간사했다.
생각해보면 나의 고3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독서실에서 공부 대신 우정을 쌓기도 했고, 입시 상담을 다녀온 엄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있던 날도 있었다. 그때 엄마는 "네가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 있냐"고 내 등짝에 스매싱을 날리다 방바닥을 치며 우셨다.
고3은 부모가 믿고 있던 아이의 밑바닥을 처음 마주하는 시기다(그렇지 않는 부모들도 있겠습니다만). 뒤통수 한 대로 끝나지 않는다. 연타를 맞을 수도 있고, 쓰리 콤보로 쓰러질 수도 있다. 부모는 대체로 자식을 현실보다 크게 포장해 안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제 막 달리기 시작한 고사미 엄마들에게 말하고 싶다. 뒤통수에 쓰러지지 않으려면, 내 아이를 너무 믿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제일 힘든 건 고3이라는 사실

▲고사미 가방에서 나온 청심원가슴 두근거림, 마음이 불안할 때-- 약 상자에 쓰여진 문구에 의지했을 딸아이. 엄마한테 말도 안하고 혼자 약국에서 사왔을 모습을 상상하니 마음이 짠하다. ⓒ 정현주
지난 주말 마지막 실기시험을 보러 간 대학교 주차장. 딸아이는 준비해 간 샌드위치 도시락을 반의 반도 먹지 못하고 내려놓았다. 그리고 부시럭거리며 가방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청심원이었다.
"어제 저녁 집에 오는 길에 그냥 사봤어."
"엄마한테 얘기하지 그랬어."
애가 말했다면 내가 사줬을까. 부작용을 걱정하며 다른 처방을 알아보느라 돌아다녔겠지. 아이는 그걸 알고 혼자 약국에 들렀을 것이다. 나는 빈속에는 위험하다며 샌드위치 한 입을 간신히 먹였다. 시험장에 들어간 아이의 자리에 청심원 빈 병이 뒹굴고 있었다.
2007년생, 만 열아홉, 아이의 인생을 돌아본다. 사립 초등학교 추첨에서 떨어졌고, 대치동 수학학원 입학 테스트에서 불합격을 받았지만 예고 입시 합격의 짜릿함을 맛보기도 했다. 하지만 대학입시는 그 맛의 차원이 다르다. 아마 열아홉 인생에서 가장 뜨겁고, 가장 무겁고, 가장 자극적인 맛일 것이다.
입시, 입사, 합격과 불합격, 실패를 두루 겪은 오십 넘은 인생도 이렇게 긴장되고 쫄리는데, 이제 막 열아홉이 된 심장은 오죽했을까. 아파도 아이가 더 아플 것이고, 충격도 아이가 더 크게 맞을 것이다. 입시는 누가 대신해 줄 수 없는, 아이가 메인 주인공으로 맞이하는 인생의 대형 사건이다. 어쩌면 열아홉 심장으로는 감당하기 버거운 일인지도 모른다.
지금 가장 힘든 주인공은 바로 '우리 아이'라는 것. 그것 하나만 명심해도 위의 1번과 2번 지침은 저절로 따라온다. 지난해 고사미 엄마로 살면서 그걸 깊이 생각 못했다. 잘 보내지 못해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효과가 어느 정도일지 모르겠지만 이렇게라도 '고사미 엄마' 바통을 넘기고, 결승선 바닥에 뒹굴며 기쁨의 눈물을 흘리고 싶다.
1년을 고사미 엄마로 달리고 나서야 알았다. 이 역할은 마라톤이 아니라 이어달리기라는 것을. 그리고 저 앞에 보이는 곳은 결승선이 아니라, 또 다른 출발선이라는 것을. 그러니 너무 걱정할 것도, 너무 실망할 것도 아닐 것이다.
입시는 마지막 학교 문 닫을 때까지 모른다고 했는데 너무 일찍 바통을 넘겼나. 아직 2월이 한 달이나 남았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