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섬의 하울링
- 고영숙
나는 몸이 없어 살아남은 자의 기억입니다
한 자락 울음을 끌고 허공에 휘어진 새의 노래입니다
새 떼들의 엇갈린 동공 속 말라붙은 하얀 눈빛입니다
없음으로 흩날리는 깃털의 무한 숨결입니다
애타게 머리카락을 쓰다듬던
미처 잡지 못한 손끝이 이리 따뜻했을까요
빠져나오지 못한 오늘이 이처럼 붉었을까요
검은 눈물을 찍어 밑줄 그은
여백이 전면을 덮습니다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는 한 조각 인광의 기억
나를 가장 아프게 껴안는 흰빛입니다
출처_시집 <꿈을 나눠 먹어요>, 여우난골, 2025
시인_고영숙 : 2020년 <리토피아>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 <나를 낳아주세요> <꿈을 나눠 먹어요>가 있다.

▲몸 없는 잔상이 흰빛으로 나를 껴안는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추천사
섬은 바람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제주에는 바람코지라는 말이 있다. 바람이 더 잘 부는 곳을 가리키는 말이다. 높은 건물이 서로 맞선 길은 바람코지가 된다. 갈 길을 잃은 바람이 그 사이로 빨려 들어왔다가 다시 빠져나간다. 바람은 몸이 없지만 기억처럼 우리 곁에 머문다. '섬의 하울링'은 바로 그와 같은 바람의 목소리다. 4·3의 바람 또한 그렇다. 1949년 1월 의귀리 전투에서 크게 패한 뒤 무장대는 급속히 와해되기 시작한다. 인민유격대장 이덕구가 1949년 6월에 최후를 맞이했으니, 그는 생의 마지막 겨울과 봄을 건너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시가 불러내는 것은 특정 인물의 죽음만이 아니다. 우리가 미처 잡지 못한 손끝, 붙들지 못한 시간과 이름들 모두가 바람이 되어 오늘도 섬을 지난다. 그러므로 비극을 끌어안고 살아가는 자들의 몸 안에서 울리는 하울링이 모여 하나의 섬을 이룬다. (현택훈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