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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말에는 일주일 내내 비가 왔기에 크라이스트처치에서 약 2시간 정도 떨어진 핸머스프링스(Hanmer Springs)이라는 온천 지역을 다녀왔다. 이곳에는 온천물로 만든 수영장이 있는데, 물이 따뜻하면서 재미있는 슬라이드가 여러 개 있어 뉴질랜드 남섬에서는 꽤 유명한 관광지이다.

수영장에서 오후 7시 반까지 신나게 논 후 예약해 둔 숙소로 들어갔다. 가자마자 서둘러 공용 부엌에 들어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부엌에서 달걀을 삶고 계시던 나이 지긋한 아시아 남성분이 나를 보고 인사를 하셨다. 나이 있는 아시아인들은 먼저 인사하는 경우가 좀처럼 드물기에 나 또한 반갑게 인사를 드렸다.

"Hi" / "Hello"
"Are you Korean?" / "어? 한국 분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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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흔이 훌쩍 넘은 어르신이 한국인일 줄이야. 내 평생 여행을 다녔지만 이렇게 혼자 여행하는 나이 지긋한 한국 분은 처음 뵈었기에 그분에 대한 호기심이 솟구쳤다. 게다가 어딘가 비범한 분위기를 풍기셨는데, 뭐랄까 김구 선생님 비슷한 인상에 동그란 안경, 하얀 턱수염과 인자한 미소, 덧붙여 먼저 인사하는 다정함까지 겸비한 아우라랄까. '한국에도 이런 자유로운 어른이 계시는구나.'

"선생님은 뉴질랜드에는 언제 오셨어요?"
"80일 전에요."

"80일 전이요? 핸머스프링에는 어떻게 오셨는데요?"
"걸어서 왔어요."

"네에? 걸...어서요??"

그렇다. 선생님은 3000km에 달하는 세계 최장 도보 트레일 중 하나인 Te Araroa Trail을 따라 걷는 중이라고 하셨다. 이는 뉴질랜드 최북단인 Cape Reinga에서 최남단인 Bluff까지 이어진 트레일이다.

 뉴질랜드 트레킹 중인 70대 한국인을 만났다.
뉴질랜드 트레킹 중인 70대 한국인을 만났다. ⓒ tjump on Unsplash

이분은 뉴질랜드에 오기 전에 미국의 유명한 서부 트레일을 다녀온 경험이 있다고 하셨다. 하여 뉴질랜드도 그와 비슷하겠지 하는 마음으로 오셨다고. 근데 막상 이곳에 와보니 그것은 큰 오산이었다고 하셨다.

일단 미국은 트레일 정비가 너무 잘 되어 있고, 가는 길마다 먹거리가 풍부했다고 한다. 게다가 사람들의 인심이 얼마나 좋은지 작은 마을을 지날 때마다 마을 사람들이 바비큐를 하면서 고기도 나눠주고, 먹을 것들을 채워주었기에 몸과 마음이 항상 따뜻했다고 하셨다.

반면, 뉴질랜드는 정비가 잘 안 되어 있는 트레일이 너무 많아서 트래킹 맵이 없으면 조난당할 위험이 높다고 하셨다. 게다가 일단 산에 들어가면 매점도 없고 사람도 거의 없기에 먹을 것을 모두 짊어지고 가야 한다고 하셨다.

특히 험한 산은 먹거리 10일 치를 지고 올라가야 하기 때문에 무게를 최소한으로 줄여도 배낭 무게가 30~40kg는 된다고 하셨다. 그렇게 최소한의 음식만 먹으면서 열흘 내내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나중에는 허기가 져서 몸과 마음이 극한으로 치닫는다고도 하셨다.

그렇게 산을 넘어서 마을에 도착하면 그때는 버스를 타거나, 히치하이킹을 하면서 다음 트레일로 이동했다고 한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서 핸머스프링까지 80일이 걸려서 오신 거라고 했다. 이곳에서 또 다른 트래킹을 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지난 일주일간 폭우가 쏟아져 강물이 불어나 어쩔 수 없이 크라이스트처치로 가서 2~3일 있다가 아서스패스 쪽으로 이동할 예정이라고 하셨다.

나는 이런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어르신이 70대 한국인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고, 그 험하고 위험한 산을 80일간 '혼자' 넘어오셨다는 것도 믿을 수 없었으며, 일흔 중반인 연세에 말씀보다는 '경청'을 좋아하시는 태도까지도 믿기지 않았다.

그분과 대화를 하면서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 비현실적인 느낌이 들어서, 혹시 나에게 금도끼, 은도끼를 주기 위해 내려오신 신령님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그렇게 턱이 땅에 닿을 정도로 입이 벌어진 상태에서 어버버 대화를 나눈 후 선생님은 홀연히 방으로 돌아가셨다.

그분이 눈앞에서 사라진 후에도 선생님만의 진한 향기에 취해, 이것이 과연 현실인지 꿈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고, 남편과 아이들을 불러 저녁을 먹으면서 방금 만난 분을 이야기하고 있을 때였다. 선생님이 잠깐 물을 마시러 공용 거실로 들어오셨다.

"선생님 제 남편이랑 아이들입니다! 인사드려~ 80일간 트래킹을 하고 계시는 한국 분이셔!"

서둘러 남편과 아이들을 소개한 후, 누룽지 한 컵을 드리며 잠시 앉으시라고 하고,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은 퇴직하신 지 약 10년이 된 의과대학 교수라고 하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에게는 의사, 교수, 엘리트, 70대 어르신이 가지고 있을 법한 분위기가 하나도 없는 것이 참 신기했다.

자신의 말을 하기보다는 듣기를 더 많이 하셨고, 질문에 길게 연설을 하기보다는 깊은 향기를 담아 짧게 답하셨으며,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진심으로 경청을 해주셨다. 얘기를 하는 중간에는 나를 기억하고 싶다고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셨다.

남편도 선생님과의 대화에서 큰 울림이 있었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내일 크라이스트처치에 모셔다 드리겠다고 말씀을 드렸고, 선생님도 흔쾌히 응해주셔서 이 아름다운 만남을 다음날까지 연장할 수 있었다.

선생님이랑 공용 거실이랑 차 안에서 나눴던 대화 중 인상적이었던 몇 가지를 공유하고 싶다.

우선 선생님께서는 오랜 기간 동안 트레킹을 하는 것은 돈을 주고도 못 살 귀한 경험이라고 하시며, 사실 자기는 나이가 많기에 이 경험으로 쌓인 지혜를 쓸 일이 거의 없다고 하셨다. 반면 아이들에게는 이때 배운 경험이 인생에 큰 거름이 될 거라고 하시며 기회가 되면 꼭 한 번쯤은 장기 트래킹이나 등산을 해보라고 추천하셨다.

트래킹의 어느 구간을 같이 걷던 미국 청년이 있었다고 한다. 그 친구랑 마을로 내려와 같은 방에 머물렀는데, 그가 글쎄 피자 한 판을 옆에 두고 걸신이 들린 듯이 허겁지겁 먹는 것을 보면서 '아니 인간이 어떻게 저렇게 먹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근데 선생님이 10박 11일간 산에 있다가 마을에 내려와서 스테이크를 구워서 먹는데, 문득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기가 그 청년처럼 허겁지겁 먹고 있음을 발견했다고 하시며 막 웃으셨다. 그러면서 사람은 역시 경험을 해봐야 아는 법이라고 말씀하셨다.

무수히 많은 대화 중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한 마디는 이것이다.

"나는 현재에 몰입하고 싶어서 걸어요. 내가 어떤 일을 했느냐와 같이 과거에 사로잡혀서 살고 싶지 않거든요. 과거의 영광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현재에 사는 게 가장 중요해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핸머스프링에서 크라이스트처치까지의 2시간이 금방 지나가버렸다. 선생님을 숙소에 모셔드린 후 차에서 내려 서로 덕담을 주고받을 때였다. 저기 멀리서 "형니임!" 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이다. 선생님은 그분을 보며 눈이 커지더니 "자네가 여기 웬일인가!!" 소리쳤다. 캡모자와 점퍼를 연두 형광색으로 깔맞춤 하고 달려오셨던 아우님은 과연 누구였을까?

너무나 궁금했으나 궁금증을 해결하지 못한 채 일단 헤어졌다. 다음날 저녁에 선생님이랑 우리 집에서 같이 밥을 먹기로 했는데, 그냥 아우분과 같이 오시라고 말씀을 드린 후 두 분의 감동적인 만남에서 깔끔하게 퇴장해 드렸다.

여행 중 만난 인연은 늘 이렇게 아름답다. 세속적인 지위나 돈의 유무와 상관없이 나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 하고, 또 내 고유함 그대로 서로를 대하니 아름다울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여행의 묘미라 할 수 있다.

선생님께 저녁을 대접해 드리고 싶었던 이유는, 산에 오르면 제대로 먹질 못하기 때문에 도시에 있을 때 단백질을 최대한 많이 먹어둬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이다. 그 말을 듣자마자 "내일 저희 집에 오셔서 저녁 드시고 가세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처음에는 사양을 하셨다가 "삼겹살이랑 수육, 부추양파무침 해드릴게요"라고 말씀을 드리니, 눈빛이 흔들리셨다. 수육이랑 삼겹살을 마다할 한국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게다가 부추양파무침까지!

다음날 오후 5시, 두 분이 시간을 딱 맞춰 오셨다. 두 분이 도대체 어떤 사이냐고 여쭤보았다. 알고보니 함께 뉴질랜드에 들어왔다가 아우 분은 힘든 트래킹을 포기하고 쉬던 중이었다고. 그러다가 어제 만난 선생님이 어려운 코스는 스킵하고 쉬엄쉬엄 갈 테니 끝까지 가자고 하셔서 다시 동행하기로 했단다.

즐겁게 저녁을 먹은 후, 두 분은 내일 아침 8시에 출발을 하셔야 한다면서 7시 반 정도에 일어나셨다. 그리고 앞으로 30일을 더 걸어서 트레일을 완주한 후, 2월 말에 귀국할 거라고 하셨다. 우리 가족도 뉴질랜드 일년살이를 마치고 곧 귀국을 하기에 선생님께서 봄에 한국에서 보자고 하시며 집주소를 보내주셨다. 자신이 손수 만든 집 마당에서 맛있는 바비큐를 구워주시겠다며. 집을 나서면서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다시 한번 강조하셨다.

"얘들아, 아저씨 얼굴 잘 기억해 둬. 아마 한국에서 못 알아볼 걸? 지금 10킬로그램 넘게 빠졌거든! 이 얼굴 잘 봐둬!"

강렬한 향기를 남긴 채 두 분은 그렇게 사라지셨다. 멀어지는 선생님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무사히 별 탈 없이, 즐겁게, 그리고 가는 곳곳마다 좋은 인연을 만나며, 남은 30일간 행복한 여정을 지속하시길 진심으로 기도드렸다.

다시 한번 느끼지만 여행은 정말 좋은 것이다. 모든 허물을 벗어던진 채 나를 정말 나답게 만들어 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뉴질랜드#트레킹#만나#인연#하이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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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여행하며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때의 경험과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삶을 나누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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