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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라브서사시 원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림에서 뿜어져나오는 박력(?)에 압도당했었다.
슬라브서사시원작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림에서 뿜어져나오는 박력(?)에 압도당했었다. ⓒ 본인

지난해 가을 프라하에서 무하 뮤지엄으로 향하던 날을 떠올리면, 먼저 떠오르는 건 풍경보다 마음의 속도다. 여행 중이었지만 이상하게 서두르지 않게 되던 날이었다. 돌바닥 위를 걷는 발걸음이 느려졌고, 건물 사이로 스며드는 빛을 괜히 한 번 더 보게 됐다. 알폰스 무하를 보러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그날은 이미 조금 다른 하루였던 것 같다.

뮤지엄에 들어서기 전까지 나는 무하를 '아르누보의 아이콘'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아름답고, 장식적이고, 포스터로 유명한 화가. 하지만 전시를 따라 걸으며 점점 그 정의가 무너졌다. 이곳에서의 무하는 유행을 만든 디자이너라기보다 끝내 자기 자리로 돌아온 사람이었다.

집중할 수밖에 없었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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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를 보며 가장 먼저 확인했던 건 <슬라브 서사시>였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이곳에 걸린 것은 원판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방문했을 당시, 슬라브 서사시의 원본은 프라하에서 차로 다섯 시간쯤 떨어진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에 전시되어 있었다. 지도 위의 거리를 머릿속으로 가늠해 보며, '이번 여행에서는 볼 수 없겠구나' 하고 생각했던 순간이 아직도 선명하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집중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복사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그림은 충분히, 아니 과할 정도로 압도적이었다. 크기만으로도 시선을 빼앗겼고, 그 안에 담긴 장면들은 한 장면, 한 장면이 하나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신화와 역사, 기도와 전쟁, 패배와 희망이 뒤섞인 얼굴들. 이 그림은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린 것이 아니라, 사라지지 않게 붙잡아 두기 위해 그린 것처럼 보였다.

슬라브서사시 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생생하게 다가온다.
슬라브서사시사람들의 표정 하나하나를 보다보면 생생하게 다가온다. ⓒ 장세희

슬라브서사시 언젠가는 반드시 원작을 보러 가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슬라브서사시언젠가는 반드시 원작을 보러 가겠다고 다짐을 하게 되었다. ⓒ 장세희

이 연작 앞에서 유독 오래 머물렀던 이유는 그림만 때문은 아니었다. 함께 전시되어 있던 과정 설명과 사진들이 내 발걸음을 붙잡았다. 무하가 이 그림들을 어떻게 그렸는지, 어떤 방식으로 인물의 동작과 감정을 포착했는지 설명하는 기록들.

그는 상상만으로 인물을 그리지 않았다. 그리고자 하는 장면이 있으면, 실제 모델을 불러 원하는 자세를 취하게 하고, 그 상태를 오래 바라보며 스케치했다고 한다. 몸의 긴장, 손끝의 각도, 고개를 약간 기울였을 때 생기는 미묘한 그림자까지. 그 모든 것을 눈으로 확인하며 캔버스로 옮겼다. 그 설명을 읽는 순간, 그림 속 인물들이 왜 그렇게 '살아 있는 것처럼' 느껴졌는지 이해가 갔다. 그들은 상징이기 이전에, 한때 숨 쉬고 버티고 서 있었던 몸들이었다.

알폰소무하가 슬라브서사시를 그리는 과정 모델에게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냄
알폰소무하가 슬라브서사시를 그리는 과정모델에게 원하는 포즈를 취하게 하고 생동감 있게 그려냄 ⓒ 장세희

이상한 일이었다. 원본을 보지 못했는데도, 마치 이미 본 것처럼 그 그림이 기억 속에 남았다. 아마도 그 과정들을 알고 난 뒤였기 때문일 것이다. 한 장면을 완성하기까지의 시간, 반복된 스케치, 모델과 화가 사이의 침묵 같은 것들이 그림 바깥에서 먼저 다가왔다.

그날 나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언젠가 꼭, 원본 앞에 서 보고 싶다고.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의 벽 안에서, 혹은 체코가 아닌 다른 나라에서, 실제 캔버스가 가진 무게와 색을 직접 보고 싶다고. 그때는 지금보다 조금 더 나이가 들어 있을지도 모르고, 지금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분명 같은 방식으로 압도 당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길쭉한 포스터 앞에서

전시의 다른 한쪽에는 무하를 세상에 알린, 유난히 세로로 길쭉한 포스터들이 걸려 있었다. 이 그림들 앞에서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슬라브 서사시가 '역사 앞에 서는 느낌'이었다면, 이 포스터들은 '신전에 들어서는 경험'에 가까웠다.

왜 이렇게 길까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된다. 인물은 아래에서 위로 천천히 펼쳐지고, 보는 사람의 시선 역시 그 흐름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는 사이, 포스터 속 여성은 현실의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이미지, 하나의 상징으로 변한다. 광고라는 형식을 빌렸지만, 그 안에는 신화에 가까운 분위기가 있었다.

알폰소무하 지스몽다 무하의 첫 세로 포스터, 지스몽다. 이걸 실제로 보다니...!
알폰소무하 지스몽다무하의 첫 세로 포스터, 지스몽다. 이걸 실제로 보다니...! ⓒ 장세희

알폰소무하 사마리아여인 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여인을 주제로 만든 연극의 포스터
알폰소무하 사마리아여인성경에 나오는 사마리아여인을 주제로 만든 연극의 포스터 ⓒ 장세희

이 그림들이 한때 거리의 벽에 붙어 있었다는 사실이 새삼 놀라웠다. 무하는 가장 대중적인 매체로, 가장 비일상적인 순간을 만들어냈다.

뮤지엄을 나와 다시 프라하의 거리를 걸었을 때, 나는 무하를 조금 다르게 기억하게 되었다. 그는 '아름다운 그림을 그린 화가'가 아니라, 아름다움이 무엇을 책임져야 하는지 알고 있던 사람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의 그림은 예쁘지만 가볍지 않고, 장식적이지만 공허하지 않다.

아직 보지 못한 그림이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이 여행을 완성되지 않은 상태로 남겨 두었다. 언젠가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다는 뜻이니까. 모라브스키 크룸로프 성에서, 슬라브 서사시의 원본 앞에 서게 되는 날이 온다면, 나는 아마도 그날의 프라하를 함께 떠올리게 될 것이다. 충분히 압도되었던, 그 조용한 하루를.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프라하무하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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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킹홀리데이와 유학을 거처 일본에 정착한지 24년째인 재외국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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