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옛날 병인 줄 알았는데 제가 왜 결핵인가요?"
병원을 찾는 환자들에게 결핵 판정은 청천벽력과 같다. 1970년대 크리스마스 씰을 붙이며 '사라져야 할 병'으로 치부됐고, 한동안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잊혔던 결핵이 2026년 현재, 병원 현장에서는 여전히 가장 위협적이고 끈질긴 질병으로 군림하고 있다.
특히 일반 약제가 듣지 않는 '다제내성 결핵' 환자들을 마주할 때마다, 보건 의료 현장의 간호사들은 이 침묵의 재앙이 우리 사회를 얼마나 위태롭게 파고들고 있는지 실감하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다제내성'이라는 괴물, 치료 중단이 만든 부메랑
결핵이 사라지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아이러니하게도 '긴 치료 기간'에 있다. 최소 6개월에서 길게는 1년 넘게 매일 한 움큼의 약을 먹어야 한다. 증상이 조금만 호전되면 환자들은 임의로 투약을 중단하거나 불규칙하게 복용한다. 이 '잠깐의 방심'은 결핵균을 죽이는 대신, 약에 내성을 가진 '슈퍼 결핵균'을 키워낸다.
다제내성 결핵은 치료 성공률이 낮고, 사용할 수 있는 약도 제한적이며 부작용 또한 심각하다. 외래에서 마주하는 환자들 중에는 적절한 치료 시기를 놓쳐 폐가 이미 망가질 대로 망가진 이들이 수두룩하다. 이들은 단순히 '아픈 사람'을 넘어, 언제든 지역사회에 강력한 내성균을 퍼뜨릴 수 있는 '움직이는 시한폭탄'이 되기도 한다.
병원 밖의 현실은 더 냉혹하다. 결핵은 대표적인 '후진국형 질병'이자 '사회적 질병'이다. 고시원에 홀로 거주하는 청년, 일용직 노동자, 제대로 된 식사를 못 하는 독거노인들에게 결핵은 파고든다. 이들은 당장의 생계 때문에 격리 치료를 거부하거나, 주거가 불분명해 추적 관리가 끊기기도 한다. 보건소와 병원이 협력해도 이 '고립의 벽'을 넘지 못하면 결핵 퇴치는 요원하다.
결핵 관리, '시스템'을 넘어 '관심'의 영역으로
현재 호흡기 내과 외래에는 결핵 관리 전담 간호사가 배치되어 있고, 보건소와 연계한 국가 결핵 관리 사업(PPM)이 활발히 진행 중이다. 하지만 서류상의 수치보다 중요한 것은 현장의 '밀착 관리'다.
간호사는 단순히 약을 줬는지 확인하는 감시자가 아니다. 약 부작용으로 구토와 어지러움에 시달리는 환자의 손을 잡고 "오늘만 더 버텨보자"고 다독이는 페이스메이커다. 다제내성 환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고가의 신약만이 아니다. 긴 치료의 터널을 끝까지 완주하게 만드는 간호 측면의 '복약 순응도 관리'가 치료의 성패를 가르는 핵심 열쇠다.
결핵은 더 이상 추억 속의 병이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의 폐 속에서 균은 증식하고 있고, 누군가는 약봉지를 든 채 사투를 벌이고 있다. 결핵 전담 간호사들의 인력을 확충하고 전문성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다제내성 환자들이 사회적 낙인 없이 끝까지 치료 받을 수 있는 촘촘한 경제적·심리적 안전망이 강화되어야 한다.
"선생님 덕분에 마지막 약까지 다 먹었네요."
완치 판정을 받고 환하게 웃으며 외래 문을 나서는 환자의 뒷모습을 보며 다짐한다. 사라지지 않는 병이라면, 우리가 끝까지 쫓아가서라도 사멸시켜야 한다고. 결핵 없는 대한민국은 화려한 통계가 아니라, 소외된 환자의 약봉지를 끝까지 챙기는 간호사의 집요한 손길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