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범의 은퇴이몽’은 퇴직 4년차로서 은퇴 전후의 현실을 기록합니다. 숫자만이 아니라 몸, 관계, 생활기술, 돌봄, 역할의 전환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 봅니다.
오늘은 월요일이다. 공기부터 다르다. 거리도, 뉴스도, 사람들 표정도 '또 한 주가 시작된 탓'인지 출근길 얼굴이 유난히 굳어 보인다. 표정은 딱딱하고, 발걸음은 무겁다. 퇴직한 지금도 오늘 같은 아침이면 몸이 먼저 굳는다. 이유를 딱 집어 말하기 어려운 압박감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 압박감은 아침 6시 30분에 맞춰진 알람 소리에서 시작된다. 이 시간은 내겐 고정값이다. 알람은 단순한 기상 신호가 아니다. 오늘 하루를 시작하라는 첫 '호출'이다. 예전엔 그 호출의 발신자가 분명했다.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내가 나를 부르지 않으면, 오늘은 시작 자체가 늦어진다.

▲침대를 벗어나야 끌수있는 알람 시계하루의 시작이 맞춰진 6시 30분 ⓒ 이종범
회사에 속해 있던 시절, 이 호출은 버거웠다. 알람이 울리면 출근 시스템이 "이제 이불에서 나와" 하고 나를 침대 밖으로 밀어내는 느낌이 강했다. 씻고, 챙기고, 차에 시동을 걸면 목적지까지는 거의 자동이다. 기분이 어떻든 컨디션이 어떻든, 평소처럼 정해진 흐름에 몸을 맡긴다. 월요일이 싫어도 월요일은 왔다. '싫다'는 감정은 출근길 마음 구석 어딘가에 구겨 넣은 채 움직여야 했다.
그중에서도 교육 현장 대신 사무실로 가는 날은 집을 나서는 순간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미처 처리하지 못한 일들이 한꺼번에 떠오르기 때문이다. 9시가 가까워지면 일정이 하나씩 구체화 된다. 메일 확인은 기본이고, 처리해야 할 일을 맞추는 팀 회의로 하루가 열린다. 그러다 보면 바쁘고 피곤해진다. 주말의 쉼이 덜 풀린 탓도 있다. 월요병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마음이 흔들려 일을 그르치거나, 막다른 골목에 몰린 듯한 버거움은 없었다. 나를 부르는 신호가 끊길 틈이 없었기 때문이다. 메일 알림, 메신저 '띵', 회의실로 오라는 말, 전화벨…. 하나를 처리하면 다음이 바로 이어졌다. 힘들었지만 그 연속이 하루를 떠밀었다. 그때는 내가 나를 부르지 않아도, 일이 나를 끌고 갔다.
물론 그 호출이 버거울 때도 있었지만, 동시에 든든한 보호막이기도 했다. 내가 누구인지 매번 설명하지 않아도 됐다. 직함이든 직무든, '우리 조직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밖에서도 통하는 이름표가 하루의 중심을 잡아줬기 때문이다.
한 주의 첫날이라 힘들긴 했지만, 최소한 나는 사회가 인정하는 자리에 서 있다는 감각을 붙잡을 수 있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감각은 하루를 버티게 해 준 에너지이면서, 동시에 내 시간을 조직에 먼저 내어주는 계약이기도 했다.
퇴직한 뒤로 하루와 한 주의 모양은 달라졌다. 그렇다고 오늘의 무게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다. 강의가 있는 날은 하루가 또렷해진다. 이동 동선이 있고, 만나야 할 사람이 있고, 전달해야 할 내용이 있다.
이런 날은 누가 부르지 않아도 내가 자연스럽게 밖으로 나간다. 이미 예정된 일이 나를 밀어주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강의장으로 가는 길은 사무실로 출근할 때보다 마음이 가볍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러 가는 길이기 때문이다.
결이 달라지는 건 강의가 없는 날이다. 흔히 "일이 없어서 허전한 거 아니냐"고 묻지만, 핵심은 거기에만 있지 않다. 프리랜서에게 허전함은 '일이 없어서'라기보다, 나를 밀어주던 조직의 든든한 힘이 사라진 자리에서 생긴다. 누군가의 호출이 끊긴 자리에서 내가 나를 호출하는 일은 생각보다 기술이 필요하다. 달력에 빈칸이 있다고 해서 마음이 쉬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 빈칸의 대부분은 실체가 분명하지 않은 막연함으로 메워진다. '무엇으로 이 하루를 채울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해야 하기 때문이다. 강의가 없는 날은 쉬는 날일 수 있다. 하지만 프리랜서의 쉼은 정돈이 필요한 쉼이다. 강의 준비를 할지, 글을 쓸지, 다음 제안을 어떻게 정리할지, 누굴 먼저 만날지…. 월요일에는 유독 "이번 주에 무엇을 중심에 두고 움직일 것인지"를 묻고 답하는 시간이 길어진다.
강의가 비는 날 아침에는 루틴처럼 지키는 것이 있다. 카페로 출근해 강의 장표를 손보고, 원고 한 꼭지를 마무리하거나,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분에게 먼저 전화하는 일이다. 남들 보기엔 사소해 보여도 내겐 하루를 붙잡는 시작 버튼이다. 이 작은 호출이 없으면 하루는 쉽게 흐트러진다. 그리고 흐트러진 하루는 이상하리만치 한 주 전체를 지배한다.
중요한 건 마음가짐만이 아니다. '자기 호출'은 누구에게나 같은 난이도로 다가오지 않는다. 몸이 아픈 사람, 돌봄이 있는 사람, 사람 만날 발판이 끊긴 사람에게는 '연결' 자체가 더 큰 노동이 된다. 오늘이 유독 무겁게 느껴지는 건 개인이 약해서가 아니라, 주간 단위로 돌아가는 사회의 리듬이 우리 몸에 새겨진 탓이 크다.
월요일은 한 주 동안 이뤄내야 할 성과 모드가 다시 켜지는 날이고, 그 압력은 직장을 떠난 뒤에도 한동안 몸에 남는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한 주간의 시작월요일의 공백 ⓒ 픽사베이
일상의 핵심은 시간표가 아니다. 연결이고 역할이다. 특히 퇴직자에게는 내가 어디에,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느냐가 오늘의 무게를 결정한다.
예전에는 회사가 나를 호출했지만, 지금은 내가 나를 호출해야 한다. 알람은 똑같이 울린다. 다만 예전에는 호출에 반응하면 됐고, 지금은 호출을 만들어야 한다. 퇴직한 분들께 묻고 싶다.
"월요일 아침, 누가 당신을 찾는가."
"아무도 찾지 않을 때, 당신은 무엇으로 하루를 시작하는가."
시간의 주인이 바뀌면, 하루의 책임도 함께 넘어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