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언론을 통해 알고서는 기자에게 카카오톡을 보낸 이동섭 씨 ⓒ 변상철
"오늘 혐의없음으로 판결 났다고 하던데요. <한겨레> 기자가..."
2026년 1월 23일 오후 3시. 국가폭력 피해자가 43년을 기다려 왔던 진실규명의 소식은 검찰의 '공식 통지서'가 아닌, 의뢰인의 맥 빠진 카카오톡 메시지로 먼저 접하게 되었다. 카카오톡 문자 너머에 있던 것은 검사의 사과도, 우편함에 꽂힌 결정문도 아니었다. 기자를 통해 자신의 무죄를 알게 된 피해자. 이것이 대한민국 검찰이 말하는 '과거사 반성'의 현주소다.
서울남부지검은 이날 1980년대 <자본론> 등을 읽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이동섭 씨(71)와 고 박광순씨에 대해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했다. 보도자료에는 "과거사 사건에서 억울한 피해를 받은 국민들의 명예 회복을 위해 적극 노력하겠다"는 화려한 미사여구도 잊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는 그 '적극적 노력'의 과정,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피해자가 문 두드려야 움직이는 '수동적 정의'
이 사건에 앞서 먼저 2025년 10월 있었던 재심 무죄선고를 살펴보아야 한다. 이 사건의 또 다른 피해자 정진태씨가 서울 남부지원 재심에서 무죄를 확정 받았다. 상식적인 국가기관이라면, 같은 사건으로 엮여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던 친구들(이동섭, 고 박광순)의 기록을 즉시 찾아 직권으로 처분을 취소했어야 했다. 검찰은 수사기록과 공판기록을 모두 독점하고 있는 기관이다. 이것은 검찰자체의 기록만으로 누가 같은 피해를 입었는지 가장 잘 아는 곳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검찰은 정진태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음에도 전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피해자 유족과 대리인(법무법인 원곡 최정규 변호사)이 지난달 13일 대검찰청에 진정서를 넣고 나서야 비로소 서류를 들춰보기 시작했다. 검찰이 자화자찬하는 '직권 재기'는 사실상 피해자들의 '호소'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수동적 행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선제적으로 피해자를 찾아 구제하라"는 시민사회의 요구를 검찰은 여전히 외면하고 있다.
확인할 땐 '직통 전화', 알려줄 땐 '보도자료'
검찰은 기소유예 처분을 변경하기 위해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하자, 대리인 측에 연락해 피해자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며칠 전 "서울남부지검 303호 검사실입니다"라며 걸려 온 전화는 친절했을 것이다. 피해자는 검찰이 자신의 억울함을 풀어주려 한다고 믿고 성실히 답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보이스피싱인줄 알고 무시했는데 문자로 검찰이라고 하니 갑자기 무섭기 시작하더라고요. 그래도 변호인이 연락을 받아도 된다는 말을 해줘서 연락에 응했어요."(이동섭)
하지만 정작 '혐의없음'이라는 결론이 났을 때, 연락은 따로 오지 않았다. 대신 그들은 기자들에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검찰이 "우리가 이렇게 과거사를 바로잡았다"며 언론에 치적을 알리는 동안, 정작 40년 넘게 '빨갱이' 낙인을 안고 살았던 70대 노인은 영문도 모른 채 뉴스를 검색해야 했다.
피해자 확인을 위해 전화를 걸 시간은 있어도, "당신은 죄가 없습니다"라고 말해줄 1분의 시간은 없었던 것인가. 아니면 피해자의 해방감보다 검찰 조직의 홍보가 더 시급했던 것인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제발, 시스템을 바꿔라
검찰의 과거사 청산이 진정성을 가지려면, 피해자가 변호사를 선임해 진정서를 내고, 기사를 통해 결과를 확인하는 이 부당한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
첫째, 재심에서 무죄가 확정된 과거사 사건이 있다면, 관련 기소유예 처분자들을 검찰이 의무적으로 전수조사하여 직권으로 구제하는 절차를 명문화해야 한다. 피해자가 늙고 병들거나 이미 사망해서 이 사실을 알지 못해 신청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국가는 영영 그 오명을 방치할 셈인가.
둘째, 처분 결과 통보 방식의 혁신이다. 과거 국가폭력 피해자들에게는 기계적인 통지서 발송이나 보도자료 배포에 앞서, 담당 검사가 직접 유선이나 서신으로 사과와 함께 결과를 알리는 '예우'가 필요하다. 그것이 국가가 저지른 폭력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다.
40년 전, 영장 없이 청년들을 가두고 때렸던 것은 국가였다. 2026년 오늘, 그 피해자들에게 결과를 먼저 알려주지 않고 보도자료부터 뿌린 것 역시 국가다. 폭력의 형태만 달라졌을 뿐, 국민을 대상화하고 행정의 객체로만 취급하는 오만함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이동섭씨가 변호사에게 보낸 톡, "오늘 혐의없음으로 판결 났다고 하던데요..."라는 그 덤덤한 문장 속에 담긴 국가에 대한 체념을 검찰은 뼈아프게 새겨야 한다. 당신들의 '직권 재기'가 단순한 서류 정리가 아니라, 한 사람의 인생을 복원하는 일임을 깨닫기 전까지, 검찰의 반성은 그저 '쇼'에 불과하다는 생각도 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변상철씨는 공익법률센터 '파이팅챈스' 국장입니다. 파이팅챈스는 국가폭력, 노동, 장애, 이주노동자, 환경, 군사망사건 등의 인권침해 사건을 주로 다루는 법률 그룹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