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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북인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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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년 12월 7일 제국주의 일본 해군은 하와이 진주만에 위치한 미국 해군 태평양함대 기지를 기습 공격했다.

제국주의 일본이 1937년 루거우차오 사건을 일으켜 중국을 침략한 지 4년만에 벌어진 일이다.

진주만 기습으로 미국 태평양 함대라는 위협을 일시적으로 제거한 일본군은 일시적으로 파죽지세의 기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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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방작전을 개시해 동남아시아와 남태평양 일대를 석권했다.

아무런 의미없는 미친 침략전쟁의 광기가 일본열도를 뒤흔들 었다. 같은 시기 일제는 한반도에서도 제국주의 침략전쟁에 조선인을 총동원하기 위한 극단적인 전시체제를 구축했다.

숟가락까지 전쟁물자로 공출해가는 극단적인 전쟁의 광기가 조선인을 숨막히게 했다.

질식할 정도로 일제의 광기가 최고조에 달했던 1942년 5월 5일 당시 청주제일공립중학교(현재 청주중학교와 청주고등학교)는 개교기념일을 맞아 전교생이 와우산(우암산)으로 행군했다.

청주제일공립중학교 학생 박선영(朴先榮, 1925.9.~2009.1, 건국훈장 애족장)은 행군을 하면서 일본군의 승전을 노래하는 가사를 '일제의 패망'을 뜻하는 가사로 바꿔 불렀다.

당시 박선영 선생의 나이는 불과 16세였다.

그날 이후 박선영 선생은 조선총독부 청주경찰서로 불려가 취조를 받았다. 일제 경찰은 노래를 부르게 된 경위에 대해 캐물었다.

박선영 선생은 이 과정에서 당시 일본인 학생 택전조(澤田操)가 경찰에 밀고한 사실을 알게 됐다.

1942년 7월 17알 분개한 박선영 선생은 일본인 학생을 응징하기에 이른다. 박선영 선생으로부터 구타를 당한 일본인 학생은 전치 4주의 상해를 입었다.

일제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낙인찍은 박선영 선생을 '상해죄' 혐의로 체포해 재판에 회부했다.

1942년 12월 11일 조선총독부 대전지방법원 청주지청은 박선영 선생에 대해 징역 단기 1년, 장기 3년형을 선고했다.

조선총독부 경성복심법원은 1943년 1월 29일 박선영 선생이 제기한 항소를 기각했다.

다시 1943년 5월 17일 고등법원에 상고하였으나 마찬가지로 기각됐다.

박선영 선생은 이후 인천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가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풀려날 수 있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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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충북인뉴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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