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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가 21일 오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3부 재판장 이진관 부장판사가 21일 오후 한덕수 전 국무총리 사건 선고공판에서 판결을 선고하고 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주문, 피고인을 징역 23년에 처한다"

이 말을 듣고 가슴이 떨리지 않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21일 오후 이진관 판사가 피고 한덕수에 대한 양형 이유를 설명하고 위 주문을 외칠 때, 난 흥분을 가라앉히려 애썼는데 문득 두 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하나는 '이진관(李珍官)이라는 이름이 혹시 '이 사람이 진짜 법관(法官)'의 줄임말이 아닐까?'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이었고, 다른 하나는 '아직은 AI가 인간 판사를 온전히 대체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확증편향이었다.

이진관, '이분이 진짜 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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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생각은 대학 시절 읽었던 책 사사방(사회구성체론과 사회과학 방법론)의 저자 이진경과 관련이 있다. 사사방은 지금 생각해도, 20대 대학원생이 쓴 책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이진경이라는 필명이 '이것이 진짜 경제학'의 줄임말이라는 소문이 돌았었다.

이 소문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19년 9월 이진경(본명 박태호) 서울과기대 교수는 YTN의 한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책에 허명을 쓴 건 맞지만) 어떻게 해서 이진형으로 지은 게 이진경으로 바뀌었고, 그러다가 진짜 경제학이 돼버렸죠"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때로는 사실이 그럴듯한 허구 앞에서 맥을 못 추는 법이다. 본인은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말했지만, 독자들은 여전히 그가 '이것이 진짜 경제학'의 앞 글자를 따서 이진경이라는 필명을 사용했다고 믿는다.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엔 그런 식의 필명이 많았던 까닭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을 하던 애국지사들만 가명을 쓴 게 아니다. 시 <타는 목마름으로>로 유명했고 몇 년 전에 타계한 시인 김지하(金地下)의 본명은 김영일이다. '얼굴 없는 시인'으로 불린 박노해의 본명은 박기평인데, '노동해방(勞動解放)'의 앞 글자를 따 필명을 박노해라고 지었다는 건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에 한덕수 전 국무총리에게 특검의 구형 15년에 8년을 더해 징역 23년을 선고한 이진관(李珍官) 부장판사의 이름을 사전적 의미로 풀이하자면 '보배같이 귀중한 관직' 정도가 될 것이다. 하지만, 뉴스를 통해 그의 판결을 접한 사람들은 '이분이 진짜 법관이다'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사실을 왜곡한 '아름다운 허구'가 아닐 수 없다.

AI의 인간 판사 대체는 시기상조

두 번째 생각은 인공지능이 인간 판사를 대체하려면 아직은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이라는 믿음이다. 생성형 AI가 보편화하고 급속도로 진화하면서 수많은 인간 직업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이번 12.3 내란 형사재판 판결은 인간 판사나 변호사의 고유 영역이 그리 쉽게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는 예측을 불러온다.

왜 그럴까. 그 이유는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3부 이진관 재판장의 2025고합1219(내란우두머리방조 등) 사건 1심 선고 양형 이유에 잘 나와 있다. 이 재판장은 피고 한덕수에 대하여 이례적으로 검찰 구형보다 8년이나 긴 징역 23년이라는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아래와 같이 밝혔다.

"12.3 내란은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인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추종 세력에 의한 것으로서 성격상 위로부터의 내란에 해당하는데, (...) 그 위험성의 정도가 아래로부터의 내란과 비교할 수 없다. 왜냐하면 무엇보다도 국민이 선출한 권력자가 헌법과 법률을 경시하고 이를 위반하는 내란 행위를 함으로써 국민이 가진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에 대한 신뢰 자체를 뿌리쳐 흔들기 때문이다." - 양형의 이유 중에서

AI는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판결하므로 인간의 기억이나 자료 검색 능력을 넘어서는 정확도를 자랑한다. 하지만, 기존 판례가 없거나 불충분할 때, 또는 새로운 판단을 요구할 때는 오류나 왜곡을 일으킬 수 있다. 아직은 인간 고유의 도덕성과 가치 판단력, 철학적 사유의 깊이를 따라잡지 못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12.3 내란과 같은 '친위쿠데타'는 전례가 없다. 현직 권력자가 스스로 헌정을 전복한 전형적 친위쿠데타가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므로 AI가 잣대로 삼을 구체적인 역사나 기록이 없는 것이다. 이진관 판사가 역사에 남을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이유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 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진관 판사의 판결이 잘못된 역사의 '어게인'을 막은 '바른 역사의식'이라고 썼다.
역사학자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이진관 판사의 판결이 잘못된 역사의 '어게인'을 막은 '바른 역사의식'이라고 썼다. ⓒ 전우용 교수 페이스북

이와 관련하여, 전우용 한양대학교 동아시아문제연구소 연구교수는 21일 페이스북에 "이진관 판사가 '12.3 내란을 과거의 내란에 비추어 판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초범이자 고령인 한덕수에게 특검 구형량보다 많은 징역 2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한 것은 '어게인'을 용납하지 않겠다는 '바른 역사의식'입니다."라고 적었다.

결국 이진관 판사는 판례가 아닌 '정의'를 잣대로 삼아 판결했다고 볼 수 있다. 그가 "12·3 비상계엄에 맨몸으로 맞선 국민의 용기"를 언급하던 중 안경을 고쳐 쓰며 잠시 목이 메는 모습을 보였는데, AI가 어떻게 이런 인간의 뜨거운 감정을 대체할 수 있겠는가.

#내란선고#이진관판사#이분이진짜법관#AI의인간판사대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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