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21일 경기 평택시의회 간담회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21일 경기 평택시의회 간담회장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학교에서도, 복지 제도에서도 경계에 놓여 충분한 지원을 받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느린학습자들이 지역사회 안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지, 지원 인프라를 만들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는 정책 토론회가 경기 평택시에서 열렸다.

이번 토론회는 평택시의회 이종원 의원이 주최하고, 사단법인 느린학습자시민회와 평택 솔빛느린학습자공동체가 공동 주관했다. 경계선지능인은 법적으로 지적장애 기준에는 해당하지 않지만 평균보다 낮은 인지 기능으로 학습과 정서, 사회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로, 느린학습자라고도 불린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당사자와 보호자들이 주로 사용하는 용어에 맞춰 '느린학습자'로 통일해 논의를 진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강정구 평택시의회 의장과 김명숙 부의장, 최재영 의원을 비롯해 신승영 평택복지재단 대표이사가 참석했다. 보호자나 유관기관 종사자, 평택대학교·나사렛대학교 학생 등 느린학습자에 관심 있는 이들도 함께 자리했다.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이중 배제' 겪는 느린학습자

 오경숙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이 21일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오경숙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이 21일 열린 토론회에서 발제하고 있다. ⓒ 느린인뉴스

첫 번째 발제로 나선 오경숙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 원장은 '평택시 느린학습자 지원 정책의 방향과 과제'를 주제로, 보호자 설문조사에 기반한 실증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오 원장은 지난달 31일부터 7일까지 평택시에 거주하고 있는 느린학습자 보호자 10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하고, 그 결과를 토대로 정책 제안을 도출했다고 설명했다.

AD
이번 조사는 스트레스 척도와 삶의 만족도 등 정량적 설문과 함께 보호자의 서술 응답을 분석한 정성 자료를 살펴, 느린학습자 가정이 겪는 '이중 부담'의 실체를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췄다. 오 원장은 "느린학습자는 학교 교육 체계에서는 학습 부진으로 배제되고, 복지 체계에서는 장애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배제된다"며 "이 이중 배제가 결국 돌봄·치료·교육의 부담을 온전히 가정에 전가하는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설문 결과, 보호자의 삶의 만족도는 5점 만점에 평균 2.52로 낮은 수준이었고, 스트레스 지수는 평균 3.75로 비교적 높게 나타났다. 특히 ▲ 40~50대 중장년 보호자 ▲중·고등학생 자녀를 둔 가정 ▲ 월 치료비 100만 원 이상을 지출하는 가구에서 스트레스 수준이 가장 높았다. 오 원장은 이를 "장기간 누적된 돌봄 부담, 학령기 이후 진로와 자립에 대한 불안, 과도한 사교육·치료비 부담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고 해석했다.

생애주기별 어려움도 뚜렷했다. 영유아기에는 조기 진단 실패로 인한 '골든타임 상실', 아동기에는 기초학습 부진과 학교 적응 문제, 청소년기에는 또래 관계 단절과 학교 부적응, 성인기에는 진로·직업·거주 문제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 이어지는 구조가 확인됐다. 오 원장은 "느린학습자의 생애주기별 어려움은 사라지지 않고 누적된다"며 조기 발견과 개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설문조사 결과, 느린학습자를 양육하고 있는 보호자의 과반수 이상이 사설 치료 센터를 주된 지원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설문조사 결과, 느린학습자를 양육하고 있는 보호자의 과반수 이상이 사설 치료 센터를 주된 지원 자원으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느린인뉴스

공적 지원의 부재도 두드러졌다. 전체 응답자의 59.2%가 사설 치료 센터를 주된 지원으로 활용하고 있었고, 24.8%는 어떠한 지원도 이용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약 75%의 가정이 사비를 부담해 지원을 이어가거나, 필요한 지원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오 원장은 지역 내 공공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개별 가정에 과도한 부담이 지워지고 있다며, 여기에는 경제적 부담과 정보 접근의 어려움, 지원 기관의 지리적 한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응답자의 86.8%가 '지원 정보 습득이 어렵다'고 답했고, 98%는 학교 밖 지원 체계가 부족하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도보나 대중교통으로 접근 가능한 지원 기관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5.7%에 그쳤다.

 오경숙 원장은 정책 사각지대로 인한 돌봄의 개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이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경숙 원장은 정책 사각지대로 인한 돌봄의 개인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공이 응답해야 한다고 말했다. ⓒ 느린인뉴스

오 원장은 민간이나 개별 기관의 단발성 프로그램을 넘어, 영유아 조기 발견부터 성인기 자립 지원까지 전생애주기를 포괄할 수 있는 평택형 통합지원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체적으로 ▲ 맞춤형 교육·치료·돌봄 바우처 도입 ▲ 성인기 자립을 위한 직업 역량 강화와 지역사회 참여 확대 ▲ 보호자 정서 지원과 정보 격차 해소를 위한 지원 인프라 확충 등을 정책 과제로 제시했다.

마지막으로 오 원장은 "느린학습자와 보호자들이 요구하는 지원은 특별한 혜택이 아니라, 평범한 시민으로서 마땅히 보장돼야 할 권리"라고 말했다. 이어 "장애와 비장애의 경계에서 정책의 '이중 배제'를 겪는 느린학습자를 지원하는 것은 단순 복지가 아니라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라며 "이는 평택시의 지역사회 회복탄력성과 미래 인적자원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과제"라고 덧붙였다.

 김길운 평택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제시한 평택시 느린학습자 지원 모델.
김길운 평택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이 제시한 평택시 느린학습자 지원 모델. ⓒ 느린인뉴스

김길운 평택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은 '느린학습자 지원을 위한 지역사회의 역할'을 주제로 느린학습자에 대한 현황과 평택 지역의 과제를 짚었다. 재단은 2021년 '느린학습자 청소년 실태조사를 통한 지원방안'을, 2022년 '느린학습 청소년의 사회적응을 위한 실천 모델 개발'을 주제로 연구를 진행한 바 있다.

김 연구위원은 앞서 진행한 연구를 바탕으로, 느린학습자가 조기에 발견되지 못하는 구조적 요인을 설명했다. 보호자의 정보 부족이나 인식 차이로 인해 발견 시점이 가정마다 다르고, 느린학습자에 대한 낙인 우려로 진단이나 개입을 미루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설령 학습의 어려움을 인지하더라도, 고비용의 전문 심리검사와 낮은 접근성으로 인해 공적 지원 체계로 연결되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봤다. 다만 조기 진단과 개입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확대되면서 최근 조례 확대와 법안 발의 등 관심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느린학습자를 지원하기 위한 평택시의 핵심 과제로는 ▲ 조기 발견과 연계 ▲ 지역 기반 학습지원 ▲ 정서·사회성 중심 지원 ▲ 가족 지원 ▲ 지역 협력 네트워크 구축 등 5개 영역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정서·사회성 중심 지원이 교육과 자립의 출발점"이라며, 느린학습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기반을 마련하고 전문인력을 양성해 전문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이를 위해서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할 수 있는 통합 담당 기관(센터)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통합 센터를 중심으로 학교와 행정, 복지관, 지역아동센터 등 다양한 기관이 유기적으로 협력해야 느린학습자의 특성에 맞는 지원이 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조례는 시작, 예산과 연속적인 지원 구조 만들어야"

 왼쪽에서부터 한아름 부락종합사회복지관 마을복지팀장, 이정은 평택시 평생학습과 평생학습기획팀장, 류정화 평택시의회 의원, 오경숙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이종원 평택시의회 의원, 김길운 평택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최혜경 전국느린학습자부모연대 대표, 김선덕 평택솔빛느린학습자공동체 대표.
왼쪽에서부터 한아름 부락종합사회복지관 마을복지팀장, 이정은 평택시 평생학습과 평생학습기획팀장, 류정화 평택시의회 의원, 오경숙 국제대학교 평생교육원장, 이종원 평택시의회 의원, 김길운 평택복지재단 정책연구실 연구위원, 최혜경 전국느린학습자부모연대 대표, 김선덕 평택솔빛느린학습자공동체 대표. ⓒ 느린인뉴스

토론에서는 정치와 행정·복지 현장 종사자와 느린학습자를 양육하고 있는 보호자들이 참여해 논의를 이어갔다. 류정화 평택시의회 의원은 "느린학습자는 지원 체계의 경계에서 이탈하기 쉽다"며 "이는 개인 문제가 아니라 지방정부가 책임져야 할 명확한 행정 영역"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택시는 조례 제정 이후 보다 구체적인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느린학습자 문제를 정책 의제로 공식화하고 생애주기 관점의 정책 설계와 예산 반영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아름 부락종합사회복지관 마을복지팀장은 복지관이 느린학습자를 조기에 발견하고 지역 자원과 연결하는 거점이 될 수 있다고 봤다. 한 팀장은 "2023년 이종원 시의원과 보호자들의 노력으로 조례가 제정됐지만, 당시 실제 현장에서 서비스를 제공할 주체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복지관은 2024년부터 느린학습자 아동을 대상으로 '또바기'라는 지원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그는 "프로그램을 통해 학교와 지역기관, 보호자를 연결하면서, 사각지대에 있던 아이들이 지원체계 안으로 들어오게 됐다"며 "복지관은 아동과 가족을 지지하고, 지역사회에서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기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정은 평택시 평생학습과 평생학습기획팀장은 조례 제정 이후, 평택시가 느린학습자 지원사업을 복지 중심에서 평생교육 체계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확인한 성과와 한계를 설명했다. 그는 보호자 자조모임이 정책 논의 과정에 참여하면서 행정이 일방적으로 설계하던 방식에서 벗어났다는 점을 의미 있는 변화로 꼽았다. 다만 개별 사업 단위에서 나아가 개인의 성장 경로를 끝까지 함께하고, 행정과 교육·복지 간 역할 구분을 허물어야 한다는 점은 과제로 언급했다. 이 팀장은 "평생교육은 결과가 아니라 연결을 만드는 과정"이라며, 이와 함께 당사자와 보호자가 정책 과정의 중심에 서야 한다고 말했다.

"마을 속에 어울릴 수 있는 구조가 필요하다"

토론회 말미에는 지역사회 내 커뮤니티 사례와 함께 보호자들의 생생한 경험을 나눴다. 최혜경 전국느린학습자부모연대 대표는 경기 시흥시에서 '달빛포구 마을학교'를 운영한 경험을 소개했다. 최 대표는 지역 안에서 느린학습자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커뮤니티가 활성화돼야 한다며, 이것이 느린학습자와 가족을 지지하는 기반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선덕 평택솔빛느린학습자공동체 대표는 "평택시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공동체 활동을 통해 비슷한 속도로 성장하는 또래들과 관계를 맺으며 아이가 조금씩 성장했다"면서도 "단발적인 프로그램과 공동체만의 노력으로는 한계가 분명하다"고 말했다. 그는 느린학습자의 존재를 인식하고, 평택이 가진 특장점을 활용해 느린학습자들이 자신의 속도로 성장할 수 있는 '플레이 그라운드'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들을 위한 구조가 만들어진다면 더 많은 느린학습자들이 세상으로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를 공동 주관한 느린학습자시민회 송연숙 이사장은 "이번 토론회는 지역에서 느린학습자 지원을 위해 꾸준히 문제를 제기해온 노력들이 모인 자리"라며 "앞으로도 당사자와 보호자의 목소리가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함께하겠다"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의 좌장은 이종원 시의원이 맡았다. 이 의원은 2023년 '평택시 경계선지능인 지원에 관한 조례'를 대표 발의한 이후 간담회와 현장 논의를 이어오며, 느린학습자 지원을 지방정부의 책무로 다뤄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꾸준히 제기해 왔다. 이 의원은 "정책은 곧 예산"이라며 "예산 심의과정에서부터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연속적인 지원 구조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겠다"고 말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느린인뉴스에도 실립니다.(https://www.slowlearnernews.org/)


#느린학습자#경계선지능#느린인뉴스#느린IN뉴스#평택시
댓글

안녕하세요. 국내 최초, 유일한 느린학습자 전문 매체 느린인뉴스입니다.



독자의견0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