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김동연 경기도지사가 임기 4년 차를 맞아 지난 1일 경기도민에게 손편지를 쓰고 있다. ⓒ 경기도
1970년 12월, 독일의 빌리 브란트 총리가 폴란드 바르샤바의 게토 유대인 추모비 앞에서 비를 맞으며 아무 말 없이 무릎을 꿇었다. 그 한 장면이면 충분했다. 그는 나치의 만행에 직접적인 책임이 없었지만, 국가의 수장으로서 독일이 저지른 죄를 대신 사죄했다. 사람들은 그걸 두고 "무릎 한 번으로 이뤄낸 외교"라고 불렀다. 정치가 인간의 언어로 회복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사과는 단지 '잘못을 인정하는 말'이 아니라,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하는 정치 행위다. 그러나 한국 정치에서 사과는 그 본래의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많은 정치인이 "잘못은 없지만, 사과는 하겠다"는 식의 '비겁한' 언어적 균형을 택한다. '진심이 없는 사과'는 오히려 불신의 기름을 붓는다.
모두가 사과했지만, 누군가의 사과는 달랐다
최근 여러 정치인의 사과가 있었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대표,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 김동연 경기도지사, 그리고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윤석열 전 대통령까지. 모두가 사과했지만, 누군가의 사과는 나머지와 결이 전혀 달랐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14일 국회 소통관에서 당 윤리위원회가 본인을 제명 결정한 것과 관련해 입장을 밝힌 뒤 차량에 오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한동훈 전 대표의 '당원게시판 사과'는 "해야 하니까 하는" 사과였다. 단 한 번의 "송구하다"는 말을 꺼내기 위해 "정치 보복"이라는 단어를 수차례 앞뒤로 배치했다. 무엇에 대한, 누구를 향한 사과인지는 보이지 않고, 잘못을 인정하지 않으면서 형식만 취했다.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사과하지 않는 정치인'다웠다.
장동혁 대표는 12.3 내란 사태에 대해 "수단이 잘못됐다"고 했다. 그럼, 목적은 맞았다는 것인가? 모호한 표현으로 책임의 본질을 희석했다. 이 사과의 클라이맥스는 따로 있다. "과거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말하더니, 바로 다음 행보는 극우 패널, 강경 지지층과의 밀착 이벤트였다. 사과 버튼을 누르고, 반성 대신 팬덤 정치 모드로 재부팅한 셈이다.
윤석열 전 대통령의 사과는 이미 전설이다. '개사과' 사진 한 장으로 한국 정치 풍자의 절반을 먹여 살렸다. 기자가 "무엇을 사과했느냐"고 묻자, 아무 대답도 없었다. 사과했는데 그 사과가 뭐 때문인지는 모르는, 말하자면 '초현실주의 사과'다. 결국 세 사람의 사과는 모두 '변명형'이거나 '조건부'였다. 사과가 아니라 오히려 불신을 키운 '나쁜 사과'였다.

▲국민의힘 대권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전두환 옹호 발언'에 대해 사과한 가운데 윤 후보의 SNS 계정에 사과를 희화화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진이 연달아 올라왔다. ⓒ 윤석열 인스타그램
반면 더불어민주당 당원들을 향한 김동연 지사의 사과는 '진심의 무게'가 달라 보였다. 자신을 "정치 초짜였다", "오만했다"고 평가한 말은 '정치적 자아 성찰'에 가까웠다. 과거 유시민 작가로부터 "배은망덕하다"는 직설적인 비판을 들었던 일까지 되짚으며 자신의 부족함을 주저 없이 드러냈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다'거나 '오해가 있었다'는 식의 흔한 변명 대신, 잘못을 온전히 자신에게 돌렸다. 바로 그 점이 김 지사의 사과가 유권자들에게 낯설 만큼 '진정성 있게' 다가온 이유다.
'좋은 사과'와 '나쁜 사과'의 갈림길
'좋은 사과'에는 세 가지 요건이 있다.
첫째, 변명 없는 인정. 이유나 맥락을 늘어놓는 순간 사과의 무게는 줄어든다. 둘째, 조건 없는 책임. "만약 ~했다면 사과하겠다"는 식의 조건부 사과는 결국 회피에 가깝다. 셋째, 다짐과 실천. 사과는 그 자체로 끝이 아니라, 이후 행동으로 이어져야 비로소 신뢰를 얻는다.
이 기준에서 볼 때, 김동연 지사의 사과는 '좋은 사과'의 요건에 꽤 근접해 있다. 그는 잘못을 축소하지 않았고, 사과의 이유를 분명히 했다. 나아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해 자신이 역할을 다하겠다는 다짐까지 내비쳤다. 말뿐인 반성이 아니라,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통해 그것을 증명하겠다는 의지였다.

▲이재명 대통령(왼쪽)과 김동연 경기도지사(오른쪽). ⓒ 김동연 페이스북.
'나쁜 사과'는 정치적 계산에서 비롯되지만, '좋은 사과'는 인간적 성찰에서 나온다. 그래서 김동연 지사의 이번 사과는 정치인이기 이전에 한 인간이 자신에게 던지는 성찰의 언어였다.
정치인의 사과는 늘 '결말을 가진 서사'다. 어떤 사과는 변명으로 끝나고, 어떤 사과는 새로운 시작이 된다. 김동연 지사의 사과는 적어도 후자에 가깝다. 브란트 총리의 '무릎 꿇은 사과'가 아직도 회자하는 이유는 언어가 아니라 동작, 말이 아니라 책임이었기 때문이다. '좋은 사과'의 내용은 결국 이후의 정치 행보로 증명될 일이다. 그는 이제, 자신이 뿌린 말의 진심을 정치로 증명해야 한다.
정치에서 사과는 쉽지 않다. 잘못을 인정하는 순간, 책임의 무게와 비난의 화살이 따라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진심으로 머리를 숙일 때, 정치는 비로소 시민과 다시 연결된다. 그래서 지금 우리 정치에 필요한 건 새로운 인물이나 슬로건이 아니라, 진짜 사과할 줄 아는 정치인이다. 그리고 그날, 정치가 다시 인간의 언어로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