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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궁동산 기슭의 호젓한 골목 안에는 기와지붕을 얹은 작은 정자가 하나 서 있다. 그곳은 굳게 닫힌 뚜껑에 '장희빈 우물'이라는 현판이 붙은 샘터이다.
이 우물터는 숙종의 여인이자 비극의 주인공이었던 희빈 장씨의 사연이 깃든 곳이다. 그녀가 사가로 쫓겨나 마셨다고 전해지는 이 우물은 이제 차가운 빗장 뒤로 몸을 숨기고 있다. 한 시대 풍운을 담았던 물줄기는 정자 아래 잠든 채 더 이상 말이 없다.
조선왕조실록은 인물 평가에 있어 매우 엄격하고 인색했다. 특히 여성의 외모에 대해서는 언급을 극히 삼가는 편인데, 유독 그녀에 대해서만은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는 이례적인 기록을 남겼다. 그 인색한 기록 한 줄이 수백 년간 우리 머릿속에 경국지색의 이미지를 각인시켰고, 이 우물물 또한 그녀의 미모를 빚어낸 영험한 샘물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달빛을 시샘한 우물, 마르지 않는 전설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장희빈 우물터. 옛이야기를 간직한 채 무거운 적막만이 흐른다. ⓒ 전갑남
희빈 장씨가 이곳에 머물며 물을 길어 올렸을 그 옛날, 우물은 분명 거울처럼 투명하고 달콤했을 것이다. 궁동산의 정기를 머금고 솟아오른 맑고 깨끗한 물줄기는 그녀의 타들어 가는 갈증과 서러운 마음을 달래주었을 법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세월이 흘러 지금은 식수로 부적합하다는 판정과 함께 두꺼운 덮개 속에 갇혀버리고 말았다.
본래 우물이란 마을의 안부를 묻고 소식을 나누던 가장 활기찬 소통의 마당이었을 것이다. 물을 긷기 위해 모여든 사람들로 북적이고, 쉼 없이 흐르는 물가에선 빨래 방망이 소리와 웃음꽃이 끊이지 않았을 테지만, 이제 이곳은 오직 무거운 적막 속에 잠겨 있다.
사실 희빈 장씨는 단순히 요부로만 치부되기엔 너무나 파란만장한 생을 살았다. 그녀는 숙종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경종(景宗)을 낳은 어머니이기도 하다.
정자 아래 잠긴 진실을 향한 갈증

▲장희빈 우물터 현판. 켜켜이 쌓인 세월의 먼지 속에서도 지워지지 않은 한 여인의 흔적이 남아있다. ⓒ 전갑남
오늘날 이 우물이 자물통 속에 갇혀 있는 현실적 이유가 있겠지만, 그 견고한 빗장을 보고 있노라면 마치 우리가 그녀에게 씌운 요부와 악녀라는 프레임까지 함께 가둬둔 것 같아 묘한 감정이 든다.
문득 저 굳게 닫힌 정자 아래 덮개를 들여다보고 싶다는 충동이 일렁인다. 그 옛날 실록이 찬탄했던 그녀의 화려한 외모가 저 깊은 우물물에 비쳐 지금도 아른거리고 있을 것만 같아서다.
[시] 우물에 갇힌 달 - 자작시
궁동산 그림자 길게 드리운 골목 안
정자 아래 가둔 것은 한 서린 물그림자인가
사약에 막혀 끝내 뱉지 못한 붉은 울음인가
세상은 나를 자못 아름답다 말했으나
투명한 우물물에 비친 이 낯선 얼굴은
욕망에 데어 일그러진 가련한 꽃잎이었네
하아얀 달빛으로 살지 못한 죄였을까
세자 소맷자락 붙잡던 어미의 마른 손길마저
야속한 세월은 그저 전설 속에 가두었네
정자 아래 굳게 잠긴 자물쇠를 보라
마르지 않은 나의 맺힌 슬픔이
맑은 샘으로 솟아나 그대 곁에 머물고 싶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