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구멍 많은 집
- 김창균
김장용으로 심은 배추에 구멍이 숭숭
잎잎이 누군가 다녀가셨다
세상의 구멍이란 구멍은 무엇인가 다녀간 흔적
발꿈치 뚫린 양말 구멍이 무심코 나에게 들켰을 때
발이 다녀온 오지의 저녁을 끌어당긴다
발뒤꿈치를 오래 들여다보면 마침내 보이는 것들
마치 밖에서 걸어 잠근 방 안에 앉아 있을 때처럼
나는 바깥을 볼 수 있으나
바깥은 나를 볼 수 없어
눈물 너머까지 가서 보는 구멍 저편
어떤 틈들은 이유가 있고
어떤 틈들은 바닥난 변명처럼 궁색하기도 해
몇 번 이별을 경험한 눈을 마주하고 앉은 나는
마치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누군가의 눈물
뒤편을 촘촘하게 깁는다
출처_시집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 걷는 사람, 2024
시인_김창균 : 1996년 <심상>으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녹슨 지붕에 앉아 빗소리 듣는다> <먼 북쪽> <마당에 징검돌을 놓다> <슬픈 노래를 거둬 갔으면>이 있다.

▲누군가 다녀간 구멍으로만, 바깥을 본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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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숭 잎잎이 난 구멍부터 세상의 모든 구멍이란 구멍에 눈을 맞춥니다. 아니, 구멍이야말로 눈이고, 내가 그 응시를 이제야 알아차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 시선을 빌려봅니다. 구멍으로 세상을 본다 해서, 구멍의 비밀스러운 안쪽을 속속이 알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구멍을 지니고서야 마침내 이해할 수 있는 이유와 변명, 그리고 세상이 있습니다. 몇 번의 이별이 당신과 내게 구멍을 선물해 주었어요. 구멍이 많아 드나들 곳도, 흐를 곳도, 맞이할 곳도 많은 장소로서의 삶. 당신의 그 구멍에 맺힌 눈물은, 내가 한 땀씩 기워드릴게요. (배수연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