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작가회의 시분과위원회에서 기획한 '시로 읽는 오늘'을 연재합니다. 시로 아침을 시작한다면, 수많은 갈등과 전쟁도 줄어들 것입니다. 독자들은 힘 있는 언어를 익혀 튼튼한 내면을 가꿀 수 있고, 다양한 시를 통해 새로운 시민의 감수성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입니다. 세계의 첨예한 문제를 시인의 예민한 감각으로 길어 올린 한국시를 매주 두 편씩 선정하여, 추천 글과 함께 독자 여러분께 소개합니다.
숙희
- 여성민
이별한 후에는 뭘 할까 두부를 먹을까 숙희가 말했다
내 방에서 잤고 우리는 많이 사랑했다 신비로움에 대해 말해봐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에 대해 숙희는 말했다
눈이 내렸을까 모르겠다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른다 두부 속에 눈이 멈춘 풍경이 있다고 두부 한 모에 예배당이 하나라고
사랑하면 두부 속에 있는 느낌이야 집에 두부가 없는 아침에 우리는 이별했다
숙희도 두부를 먹었을까 나는 두부를 먹었다
몸 깊은 곳으로 소복소복 무너지는
이별은 다 두부 같은 이별이었다 예배당 종소리 들으려고
멈춘 풍경이 많았던
사람이 죽을 때
눈이 몰려가느라 몸이 하얗다면
죽어서도 두부 속을 걷는 사랑이라면
눈이 가득한 사람아 눈이 멈춘 눈사람 예배당 종소리 퍼지는 지극히 아름다운 눈사람아 그러나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모르고
두부는 생으로 썰어 볶은 김치와 먹어도 좋고
된장 조금 풀어서
끓여내는 이별
출처_시집<이별의 수비수들>, 문학동네, 2024
시인_여성민: 2010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단편소설)과 2012년 <서울신문> 신춘문예(시)로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에로틱한 찰리> <이별의 수비수들>이 있다.

▲신비로워 만질 수 없는 것만 남은 아침, 두부가 없었다 ⓒ 박유하 시인(디지털 포엠 아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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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돌아올 때 스며든 한기에 재채기했던가. "신비로워서 만질 수 없는 것을" 나는 알 수 없고 떨어지는 눈보다 빨리 지면에 무릎이 닿은 밤이었다. 나는 눈 속을 걸어가는 사람의 뒷모습을 긴 시간 바라보았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세계로 걸어가는 존재는 결국 기억 속의 형상으로 남는다.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걸어가던 사람처럼, 나 또한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두부를 된장국에 넣어 한소끔 끓이는 동안 불러도 소용없는 떠난 사람의 이름을 불러보았다. 하얀 김과 함께 조용히 흩어지는 얼굴이 있었다. (정미주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