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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 365 ― 아동권으로 동화 읽다〉 매달 한 편의 동화를 읽으며, 아동권의 언어로 다시 묻고 정리하는 연재입니다.
<플랜더스의 개>는 가치를 다루는 교육, 이를테면 도덕, 인성교육은 물론 민주시민교육·인권교육에서도 선택한다.​ 교과서에 수록된 작품은 아니지만, 아이들에게 '감동을 주는 가치교육 텍스트'로 활용되어 왔다.

이 작품은 인성, 나눔, 연민, 성실, 감동이 주요 키워드다. 좀 더 들여다 보면 ​가난, 빈부격차, 편견, 죽음, 예술 등 교사나 부모가 아이들의 질문에 선뜻 답하기 어려워서, 때로는 피하는 문제들이 있다.

이 동화는 권장 연령이 초등학생이다. 하지만 유아부터 중학생까지 읽는다. 물론 성인 독서모임에서도 선택하는데, 토론할 만한 주제들이 여럿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교실 수업에서 생략된 여러 주제 중 '보호'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플랜더스의 개>는 보호가 어떻게 요청되고, 거절되며, 끝내 실패하는지를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보호는 언제, 어떤 조건에서 작동했어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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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 주인공 네로는 할아버지, 파트라셰와 산다. 여러 어려움과 주위의 편견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네로의 모습은 그저 슬픈 이야기로 보인다. 평화로운데 비극은 이어지고, 그런데 그게 이상하지 않고 자연스러워 이상스러운 동화다.

보호는 개인이 가진 동정이나 선의가 아니다. 아이가 감당할 수 없는 조건에 놓였을 때, 어른과 공동체가 개입해 그 조건을 완화하거나 중단시키는 책임이다.

개입하지 않은 보호

이야기 초반, 우리는 네로의 어려운 삶을 충분히 알 수 있다. 엄마는 어릴 때 죽었고, 할아버지 건강은 점점 악화된다. 네로가 우유 배달을 매일 하지만 형편은 나아지지 않고 더 어려워진다. 가난한 조손가정의 아이이고, 비보호 아동이자 소년 노동자다. 이 상황을 마을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알고 있다. 어른들 중 집주인을 제외하고 누구도 네로를 노골적으로 괴롭히거나 폭력을 휘두르지 않고 내쫓지도 않는다. 어른들은 악인이 아니다. 그렇다고 책임지는 사람도 없다.

거절당한 보호

이야기가 흐르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다. 혼자 남은 네로 상황은 더 어려워진다. 네로는 마을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달라고 도움을 요청한다. 그는 완전히 고립되어 있지 않았고 이웃 대부분은 그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외면한다. 이야기에서는 네로 상황이 나아질만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집주인 한스는 네로를 내쫓고,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가 이어진다. 네로를 향한 거절과 냉대는 이야기 속에서 하나의 사건으로 처리될 뿐 보호 실패의 문제로 확장되지 않는다.

마을 이웃이 네로를 왜 외면하고 나서지 않는지, 어째서 거절하는지는 이야기에서 찾을 수 없다. 읽고 있는 우리 역시 질문하지 않는다. 보호를 요청했음에도 보호받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나친다. 우리가 하는 익숙한 질문은 개인의 불행이나 성격 문제로 초점이 모아진다. 이야기가 끝날 때까지 우리는 네로를 보호하는 것이 누구의, 어떤 책임 속에 있어야 하는지 묻지 않는다.

죽음 이후에야 나타나는 보호

이야기 끝은 네로 죽음을 향한다. 친구 아로아의 아버지는 네로를 받아들이겠다고 다짐한다. 그의 그림을 알아보는 어른도 등장한다. 하지만 네로는 죽었다.

<플란더스의 개>는 어른의 실패를 보여준다. 처음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이후에는 요청을 거절했으며, 마지막에는 후회와 자책만 남았다. 어른들의 애도는 네로를 보호했어야 할 공동체 책임이 아니라 개인 감정으로 남는다. 자책이 섞인 애도는 보호 실패를 되돌리지 못하면서도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어른 사회의 면죄부처럼 보인다.

보호 실패를 읽고 이야기하는 어른

어른이 돼서 다시 보니, 이 지점이 가장 의문이다. 네로에게 보호가 필요함을 알면서도, 긴급한 문제로 다루지 않는 어른들 말이다. 선의나 인식은 있지만 구체적인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른들은 어디서도, 누구도 개입하지 않았다. 작품에서는 아이가 감당하는 현실과 처한 상황이 오히려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작품을 다시 읽으며 질문한다. 우리는 어째서 이 상황이 불편하지 않고 문제로 보이지 않는가. 이러한 보호는 언제 작동했어야 했는가, 왜 작동하지 않았는가. 우리가 이 동화를 읽으며 보호 실패보다 네로 개인 불행에 주목토록 한 것은 어째서인가. 교사와 부모, 학교는 그 질문을 피하지 않을 준비가 되어 있는가.

이 작품을 우리는 안전하게 읽고 익숙한 질문을 한다. 보호 실패로 질문하지 않는다. 이 모든 실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플랜더스의 개>를 지금까지 오래도록 읽거나 추천한 것도, 이 실패를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 아닐까 싶다.

이에 대해 반론도 있다. 복지시스템이 없던 그 시대를 감안해야 한다거나 문학작품에 아동권 해석이 너무 과한게 아닌가하고. 굳이 아이들에게 이러한 현실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교육장면에서 사용키 위해 작품을 선택하는 순간 이미 가치전달은 이뤄지며 아이들은 우리가 가르치지 않는 사이, 네로가 겪은 현실 속에 있을 수 있다.

기존 인성교육에서는 (아이)개인에게 촛점을 맞춘다. 이런 작품에서 보호 실패를 묻는 순간, 질문은 교사·부모·제도로 향한다. 책임있는 답을 마련하지 못한 어른은 이런 질문에 마음이 불편해 진다. 차라리 (아무것도 바꾸지 못하는) 후회와 자책을 선택한다. 이때 보호는 공동체 책임이 아니라 개인 감정으로 고정된다.

우리가 아동권의 언어로 이 작품을 읽을 때, 먼저 답해야 하는 쪽은 아이가 아니라 어른이다. 보호는 아이의 태도나 노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AI로 재구성한 이미지 입니다.
AI로 재구성한 이미지 입니다. ⓒ 서정은

덧붙이는 글 |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홈페이지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 정인이 추모 5주기를 기억하며 썼습니다.


#플랜더스의개#아동권#동화읽기#보호#비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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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인권 365-아동권으로 동화읽다>

서정은 (argon24) 내방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대표, 숭실사이버대학교 아동심리치료학과 출강. 아동인권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독일 등 해외 체류 경험을 아동권과 연결하였다. 아동권리 교육, 연수와 강연, 정책 토론 61348bh@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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