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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천 황현 선생
매천 황현 선생 ⓒ 매천 황현 선생 기념사업회

황현(黃玹, 1855~1910)은 전남 광양군에서 태어났다. 호는 매천(梅泉), 매우 조숙하여 11세 때에 시를 지어 이웃을 놀라게 하였다. 장원급제하고도 조정의 부패상에 분개하여 출사를 거부하고 귀향하여 학문에 매진하였다.

그렇다고 민씨 척족의 부패나 타락한 선비들의 행태를 용납하지 않았다. "매천 필하에 무완인"이란 세평대로 정론직설로 타락상을 비판하였다. 나라가 점차 기울어지면서 그의 필봉은 더욱 예리해졌다. 각지에서 의병이 일어났다. 이 같은 사신을 <매천야록>에 상세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지인들과 연통을 통해 이를 지원했다.

마침내 나라 망하는 경술국치 소식이 들렸다. 9월 5일자 배달된 <황성신문>에 국치의 구체적인 내용이 실렸다. 배운 대로 지식인의 운명을 실천하고자 '절명시'를 쓴 뒤 음독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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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도 슬피 울고 강산도 찡그리오
무궁화 이 세계는 망하고 말았구려
등불 아래 책을 덮고 지난 역사 헤아리니
세상에 글 아는 사람되기 어렵기도 합니다.

어지러운 세상에 떠밀려 백두의 나이에 이르도록
목숨 버리려다 그만 둔 것이 몇 번이던고
오늘에야 참으로 어쩔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바람 앞의 촛불 번쩍번쩍 창천에 비추누나.

요기가 하늘을 가려 제성(帝星)이 옮기니
대궐은 침침한데 시각이 더디구나
조칙은 이제부터 다시 내리지 않으리니
임랑(琳琅)의 종이 한 장, 눈물 하염없네.

내 일찍이 큰 집을 지탱함에 서까래 반조각의 공도 없었으니
충(忠)은 아니요 다만 인(仁)을 이루려 함이로다
겨우 윤곡(尹穀, 남송의 열사)을 따르는데 그쳤을 뿐이니
그 당시 진동(陳東, 북송의 지사)의 행동을 밟지 못함이 부끄러워라.

덧붙이는 글 | [붓의 향연]은 매일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붓의#향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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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붓의 향연]

군사독재 정권 시대에 사상계, 씨알의 소리, 민주전선, 평민신문 등에서 반독재 언론투쟁을 해오며 친일문제를 연구하고 대한매일주필로서 언론개혁에 앞장서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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