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은 200만 농민의 조직이나 실상은 '임직원만의 리그'라는 비판이 높습니다. 농식품부 감사 결과 도덕적 해이가 적나라하게 드러났습니다. <오마이뉴스>는 감사 보고서를 토대로 농협의 민낯을 5회에 걸쳐 꼼꼼히 들여다보고 개혁 방향을 제시합니다.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본부 모습. ⓒ 연합뉴스
농가 자녀 장학금 지원과 농촌 복지 증진을 목적으로 설립된 농협재단이 정작 농민이 아닌 '퇴직 임원'들의 노후를 챙겨주는 통로로 활용되고 있는 현실이 재차 확인됐다. '경쟁 입찰'은 형식에 불과했고, 재단 사업의 대부분은 퇴직자 단체와 그 자회사들이 독식하고 있었다.
최근 농림축산식품부의 감사 자료에 따르면, 농협재단의 계약 체결 방식은 '폐쇄적'이라는 말로도 부족할 지경이다. 2022년 1월부터 2025년 9월 말까지 체결한 물품 구매 및 공사 계약 총 87건(623억 원) 중 86건(622억 원, 금액 대비 99.8%)이 경쟁 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처리됐다. 계약 금액(623억 원) 대부분이 퇴직자들이 포진한 '농협 식구'들에게 흘러간 것으로 의심된다.
기부 물품 지원도 멋대로였다. 회원 조합을 통해 기부 물품을 지원하면서 지원 대상 기준을 명확하게 정하지 않았고, 회원 조합은 기부 물품을 지원 내역 등을 점검하지 않았다. 기부 물품이 농업인에게 목적에 맞게 제대로 전달되고 있는지 파악조차 못 하고 있는 것이다.
사무총장은 증빙서류도 없이 채용
채용 과정에서의 난맥상도 심각하다. 농협재단은 사무총장 등 전문직 신규 채용 절차를 구체적으로 마련하지 않은 채, 이사장이 단독으로 지명해 임명해온 것으로 보인다. 현 사무총장은 채용 당시 졸업증명서 등 기본적인 증빙서류조차 제출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장학관장 채용 시에도 규정된 직급(M·3·4급)이 아닌 전문계약직으로 채용하는 등 원칙 없는 인사를 단행했다.
농협재단에 운영 자금을 주는 농협중앙회도 다르지 않았다. 농협중앙회는 계약 규정에 따라 물품 구매, 용역, 공사 등 계약은 경쟁 입찰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퇴직자 단체가 출자한 특정 용역 업체와 경비·운전 등에 필요한 인력을 관행적으로 수의계약해 온 것으로 드러났다.
농협중앙회는 또 특정 컨설팅 업체와 일반 자문 수준의 상시 경영 자문 계약을 제한 경쟁 입찰을 통해 반복 체결했다. 계약 금액만도 2년간 15억 8000여만 원에 이르는데, 계약 기간이 끝나자 또다시 같은 금액으로 연장 계약했다.
농협의 퇴직자 일감 몰아주기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재단과 자회사들의 방만한 계약 관행은 매번 도마 위에 올랐다.
2014년 국정감사에서는 당시 농해수위 의원들이 농협재단이 퇴직자 단체인 농경회 소유 건물에 입주해 매년 수억 원의 임대료를 내고 각종 용역을 농경회에 몰아주는 방식을 지적하며 '퇴직자 부양 기관'이라고 질타했다. 2021년 국정감사에서도 농협중앙회 계열사들이 전직 임원들이 설립한 업체와 수백억 원대 수의계약을 체결한 사실이 논란이 됐다. 당시에도 "농민의 피땀 어린 돈이 퇴직자들의 노후 자금으로 쓰인다"는 비판이 거셌지만, 농협은 "점진적으로 개선하겠다"는 답변만 되풀이하며 위기를 모면해 왔다.
하지만 이번 감사 결과는 농협의 '개선 약속'이 공염불이었음을 보여준다. 오히려 수의계약 비중은 과거보다 더 견고해졌고, 몰아주기는 '관행'으로 뿌리내렸음을 증명한다.
외부 감시 받지 않는 '농협 패밀리' 조직

▲농협중앙회의 공금 낭비 의혹과 관련, 강호동 농협중앙회장이 13일 오전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고 있다. ⓒ 이정민
왜 농협재단은 '수의계약의 천국'이 됐을까.
조합원들은 감시가 느슨한 점을 원인으로 꼽는다. 농협재단은 중앙회의 출연금으로 운영되지만, 민간 재단법인 형식을 띠고 있어 외부 감시로부터 비교적 자유롭다. 또 재단 이사진 역시 대부분 중앙회장과 가까운 인사들로 채워지다 보니, 퇴직자들을 챙겨주는 관행이 내부 통제 없이 굳어졌다는 지적이다.
현직 임원들이 퇴직자 단체에 일감을 몰아주는 행위는 결국 본인들의 퇴직 후 자리를 보장받기 위한 '보험' 성격이 짙다. 선배의 업체를 챙겨주면 후배인 자신도 퇴직 후 혜택을 받는 이른바 '농협 패밀리'의 카르텔이 형성돼 있는 것이다. 수의계약을 위한 편법도 여전하다. 경쟁 입찰을 피하기 위해 계약 금액을 쪼개거나, 특정 업체만 입찰 가능한 조건을 내거는 방식 등으로 수의계약을 정당화해 온 정황도 이번 감사에서 확인됐다.
농민들의 반응은 차갑다. 충남의 한 지역 조합원은 "농민 자녀들은 장학금 몇 십만 원을 받으려고 온갖 서류를 떼는데 누구는 가만히 앉아서 수백억 원의 일감을 가져간다"며 "농협재단은 농업인과 농민 복지를 위한 재단이 아닌 '퇴직자 복지재단'으로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농식품부는 이번에 적발된 수의계약 건에 대해 엄중 경고하고, 재단 운영 전반에 대한 고강도 인적 쇄신을 요구했다. 하지만 해체 수준의 강도 높은 개혁으로 농협 내부의 끈끈한 '퇴직자 카르텔'을 깨지 않는 한, 농협재단은 언제든 다시 '수의계약의 천국'으로, 또 다른 방식으로 밀어주고 끌어주는 '패밀리 조직'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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