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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입학을 앞둔 둘째 딸의 교복을 사러 갔다. 2013년생인 아이는 올해 중학생이 된다. 늦은 아침을 먹고 부지런히 준비해 도착한 부천의 한 교복 구매처는 이미 학부모와 예비 중학생들로 붐비고 있었다. 교복매장이라는 말이 실감 나는 풍경이었다.
요즘 중·고등학교 신입생 학부모들 사이에서 교복 구매는 정해진 일정에 맞춰 움직이는 일종의 '행사'다. 정부의 교복 가격 안정화 방안에 따라 교육청과 부천시에서 교복비 일부를 지원하기 때문에 지정된 날짜에 지정된 장소를 방문해 절차를 밟아야 한다. 줄을 선 부모들의 손에는 대부분 같은 안내문이 들려 있었다.
줄은 쉽게 줄어들지 않았다. 학교별·반별로 학생 명단을 대조하고, 보호자 연락처를 확인한 뒤 구매 서명을 받아야 했다. 행정 절차가 간단하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교복값에 대한 부담은 분명히 줄어 있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예전보다 훨씬 낫다"는 말이 자연스럽게 오갔다.
이 장면을 보며 문득 내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교복값이 부담스러워 학부모들끼리 공동구매를 하거나, 치수를 재며 가격을 비교하던 기억. 처음 교복을 입고 어색하게 웃던 날, 중학교 입학식 날의 긴장감. 교복은 입학의 상징이면서 동시에 집안 형편을 실감하게 만드는 물건이었다. 지금처럼 공적 지원이 당연하게 전제된 시절은 아니었다.
줄을 서 있는 동안 딸아이의 친구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아직은 초등학생 티가 가시지 않은 얼굴들이었다. 이렇게 작은 어린이들이 곧 중학생이 된다고 생각하니 괜히 마음이 뭉클해졌다. 그 사이에서 나는 아이의 어린 시절을 떠올렸다. 남들보다 확연히 체구가 작았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감기를 달고 살던 아이였다. 잘 먹여도 살이 잘 붙지 않아 마음을 졸이던 시간들. 그런 아이가 이제 중학생이 된다니... 입학이라는 단어가 새삼 무겁게 느껴졌다. 다행히 첫째 아이가 이미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부모에게 같은 학교에 형제가 있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안도감을 준다.
그때 종소리를 내며 열린 문틈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비쳤다. 아이와 가장 친한 친구와 그 아버지였다. 아이는 둘이지만 중학교 진학은 올해가 처음이라서인지, 모든 일들이 생경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보였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는 그분께 말을 걸어보았다.
"왜 그러세요?"
"뭘 얼마나 사야 할지 모르겠네요. 허허"
"교복은 한 벌씩 지원이 되니 추가로 구매할 것만 고민해 보시면 돼요."
"글쎄요... 뭘 더 사야 할지 감이 안 와서요."
"저희 첫째는 체육수업이 거의 매일 있었어요. 교복보다 체육복을 더 많이 입더라고요. 셔츠 한 벌이랑 체육복 한 벌 정도만 더 있으면 될 거예요."
"그렇군요."
"학기 중에도 추가 구매가 가능하니, 필요하면 매장에 문의하시면 돼요."
"감사합니다. 교복값 지원해주는 게 참 좋네요."
그러는 사이, 순서가 되어 아이 이름을 확인하고 서명을 마친 뒤 치수를 쟀다. 가장 작은 사이즈의 교복을 받아 탈의실로 들어간 아이는 예상대로 넉넉한 옷차림으로 나왔다. 가장 작은 사이즈였지만 아직 여유가 있었다. 헤헤 하고 웃는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괜찮아, 더 클 거야."
성장이라는 말을 가장 현실적으로 떠올리게 하는 순간은 이런 옷 앞에 섰을 때인지도 모른다.

▲내 손에서 교복 봉투를 낚아채 본인이 들고 갈 만큼 어느새 많이 자란 둘째 아이의 뒷모습이 뭉클하고 고맙다 ⓒ 유수영
교복 봉투를 들고 매장 밖으로 나오자 아이는 "무겁지?"라는 말을 뱉으며 봉투를 낚아채 앞서 걸어갔다. 아직은 작은 등이었지만 그 뒷모습이 두 눈으로 또렷하게 들어왔다. 이 아이가 내 아이라는 사실이 감사했다.
교복 봉투 안에는 교복만 들어 있는 게 아니었다. 그 안에는 나의 오래된 기억과 이제 막 시작되는 아이의 시간이 함께 담겨 있었다.
그리고 입학을 앞둔 모든 아이들에게 큰 축복이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