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통합 인센티브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합치면 5조 원을 줍니다. 인구 350만 명의 메가시티가 됩니다."
예상했던(?) 그대로의 '당근책'이 나왔다. 지난 16일, 김민석 국무총리가 발표한 '대전·충남 행정통합 지원 방안'의 핵심은 '돈(4년간 총 20조 원)을 줄 테니, 살림을 합쳐라'다.
그동안 시큰둥하거나 반대하던 정치인들은 갑자기 금광이라도 발견한 듯 '통합만이 살길'이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30여 년 전, 충남과 대전을 분리하는 게 살길이라며 이불을 걷어차던 이들이 이제는 갑자기 한 이불을 덮으란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거대한 합병 소식에 정작 그 집에 사는 '주민'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주민들의 반대와 우려는 아예 들을 생각조차 없어 보인다.
지난 10년간 대전시와 충남도의 예산 장부를 들여다보자. 2017년 합계 약 10조 원이었던 두 지자체의 예산은 2026년 현재 20조 원에 육박한다. 매년 평균 1조 원 가까운 예산이 꾸준히 늘어난 셈이다.
하지만 "살림살이가 그만큼 나아졌습니까?"에 대한 대답은 냉소적이다. 매년 1조 원이라는 거액이 추가로 투입됐음에도 대전의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아 여전히 짐을 싸 수도권 또는 대도시로 떠나고, 충남의 농촌 마을엔 빈집만 늘어간다. 예산은 두 배 가까이 늘어났지만 주민 소득이 두 배로 늘지 않았고, 줄어드는 인구 추이도 멈추지 않았다. 통합을 하고, 매년 '5조 원'을 더 쓰면 나아질까?
지방자치는 왜 하는가?

▲충남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아래 연대회의)는 지난 14일 오전 9시 20분 서산축산물종합센터 입구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하고 , 올해 지방선거 전 통합 완료를 목표로 추진되는 현 상황을 ‘주민참여와 숙의가 거세된 졸속 행정’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하고 있다. ⓒ 신문웅
지방자치는 왜 하는가? 내 삶의 터전에서 일어나는 일을 내가 결정하겠다는 선언이다. 하지만 지금의 논의는 '정치적 셈법'으로 시작해 '돈'으로 끝난다.
중앙정부가 돈줄을 쥐고 "통합하면 돈 줄게"라고 줄 세우기를 하는 순간, 그것은 '지방분권'이 아니라 '중앙집권의 강화'다. 주민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설명하기도 전에 조건부터 발표하는 모습은, 80년대 권위주의 시절의 관치행정을 떠올리게 한다. '돈 더 줄 테니 합쳐라'는 식의 논리에 지방자치의 자존심은 설 자리가 없다.
가장 우려되는 대목은 민주적 절차의 실종이다. 해방 이후 한 번도 광역 행정구역을 통합한 사례가 없다. 그런데도 정부와 정치권에서는 "주민투표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든다"며 시·도의회 의결로 갈음하려는 움직임이 뚜렷하다. 효율성을 위해 주권을 생략하겠다는 발상이다. 주민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중대 사안을 투표 한 번 없이 결정하는 것이 과연 2026년 한국의 민주주의 수준인가.
10년 전 '통합 청주시(청주시+청원군)' 선례를 보자. 오창·오송 신도시로만 자원이 쏠리는 동안 외곽 농촌 마을은 더 빠르게 소외됐다. '땅과 세금은 우리가 대고, 혜택은 시내 사람들이 본다'는 농민들의 탄식은 대전·충남 통합 이후 충남의 소외된 시·군들이 겪게 될 예고편으로 보인다.
30년 전 '이리시'와 '익산군'이 하나가 돼 만들어진 익산시는 통합 당시 33만 명에 육박하며 100만 도시를 꿈꿨다. 지금은 인구 26만 명 선조차 위태로운 처지다. 통합하면 체급이 커져 시너지도 커질 것이라 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제, 브레이크를 걸어야 할 때

▲김민석 국무총리가 16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행정통합 인센티브와 관련해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도로(CTX,충청권 광역급행철도 등)가 뚫리면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정치권의 설명은 반만 맞다. 도로는 일자리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지역의 인재를 서울로, 대도시로 실어 나르는 '빨대'가 되기도 한다.
매년 대전과 충남이 20조 원씩 예산을 쓰고도 인구 감소를 막지 못한 이유는 행정 통합을 안 해서가 아니다. 규모를 키우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내부의 균형'이고 '내재적 발전'이다.
지방자치는 '규모'가 아니라 말 그대로 '자치'에서 온다. 시한을 정해놓고, 돈봉투를 흔들며 경쟁을 부추기는 '상향식 통합'이 아닌, 시간이 걸리더라도 지역의 문제를 스스로 결정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지금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2026년 7월이라는 출범 기한이 아니다. '이 통합이 정말 우리 마을을,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실한 답변, 그리고 그 답변을 듣고 스스로 선택할 주민의 투표권이다. 주민 없는 통합의 질주에 브레이크를 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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