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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23일부터 딸과 15박 16일간 뉴욕 미술관을 여행했습니다. 그곳에서 느낀 따뜻한 온기와 소박한 생각들을 담았습니다. 제 작은 기록이 여러분의 일상에 기분 좋은 위로가 되길 바랍니다.
만약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The MET, 아래 메트)이라는 거대한 미(美)의 성소에 어울리는 주제곡을 단 하나 정한다면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저는 미술관으로 향하는 길 위에서 스스로에게 물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제 안에서 찾은 답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였습니다. 그렇다면 그 곡을 '누가 연주해야 할까'라는 두 번째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단연 '요요마'였습니다.

바흐가 설계한 정교한 선율은 인류가 5000년의 흐름 속에서 일궈낸 미학적 질서를 가장 숭고하게 번역해 줍니다. 그 단단한 뼈대 위로 요요마는 섬세한 숨결을 불어넣어, 거대한 시간의 무게를 부드러운 위로로 바꾸어 놓지요. 첼로의 현이 빚어내는 반복과 순환의 미학은, 역사 앞에서 한없이 겸손해지면서도 동시에 '나'라는 존재가 결코 혼자가 아님을 깨닫게 하는 묘한 힘이 있습니다.

메트에서의 두 번째와 세 번째 방문은 오롯이 저만을 위한 시간이었습니다. 첫 방문이 스무 살 딸의 손을 잡고 부모로서 행복한 전경(Foreground)을 확인하는 축복이었다면, 홀로 다시 찾은 이 성소는 배경(Background)으로만 존재했던 나의 내면을 조용히 응시하는 투명한 거울이었습니다. 요요마의 선율이 미술관의 높은 천장을 타고 흐를 때, 저는 누군가의 보호자가 아닌 시간의 강물 앞에 홀로 선 단독자로 비로소 거장들과 깊은 대화를 시작했습니다.

[렘브란트] 있는 그대로의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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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회화관의 심장부인 갤러리 639에 이르면 한 인간의 일생을 관통하는 거대한 거울 앞에 서게 됩니다. 평생 수많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을 탐구했던 렘브란트입니다.

요요마가 활을 묵직하게 긁어내릴 때 느껴지는 그 진동처럼, 그의 화폭은 공간의 공기를 일순간 차분하게 가라앉힙니다. 파산과 고독 속에 말년을 보내던 노년의 렘브란트가 그곳에 서 있었습니다. 젊은 날의 당당했던 기개는 사라지고, 대신 그 자리를 채운 것은 꾸밈없는 평온함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처진 눈꺼풀과 거친 피부를 숨기지 않고 담담하게 그려냈습니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는 그 맑은 눈빛 앞에서,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 또 가장으로 성실하게 살아보려고 노력한 저의 시간들이 겹쳐 보였습니다. 거창한 성취보다 중요한 것은, 세월이 남긴 주름을 정직하게 마주할 수 있는 용기임을 그는 제게 나지막이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The MET 2층 639 갤러리] 렘브란트 판 레인의 '자화상(Self-Portrait, 1660)'. 꾸밈없는 노년의 얼굴에서 낡고 바랜 시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The MET 2층 639 갤러리] 렘브란트 판 레인의 '자화상(Self-Portrait, 1660)'. 꾸밈없는 노년의 얼굴에서 낡고 바랜 시간의 가치를 발견합니다. ⓒ 문현호

화려한 금색 사슬을 걸친 철학자가 눈먼 시인의 흉상 위에 조심스럽게 손을 얹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명예와 보이지 않는 진리 사이에서 고뇌하는 표정. 렘브란트는 이 작품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쥐기 위해 그토록 애쓰며 사는지 묻습니다.

인생의 중반을 넘긴 제게 그의 질문은 서늘했습니다. 첼로의 활이 현을 떠난 뒤에도 길게 남는 여운처럼, 결국 마지막까지 손끝에 남아야 할 온기가 무엇인지 깊이 성찰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달려온 그 화려한 금색 사슬보다, 보이지 않는 본질을 어루만지는 저 투박한 손길이 진짜 삶에 가까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The MET 2층 639 갤러리] 렘브란트 판 레인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명예와 진리 사이의 고뇌를 통해 삶의 본질을 묻습니다.
[The MET 2층 639 갤러리] 렘브란트 판 레인의 '호메로스의 흉상을 바라보는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 with a Bust of Homer)'. 명예와 진리 사이의 고뇌를 통해 삶의 본질을 묻습니다. ⓒ 문현호

[빈센트 반 고흐] 삶의 이면

렘브란트를 통한 정적인 성찰을 지나 갤러리 822로 향하면 공기의 온도가 일순간 고조됩니다. 그곳엔 생의 의지를 예술로 승화시킨 빈센트 반 고흐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저는 메트가 품은 가장 극적인 '이면'과 마주했습니다. 강렬한 붓질이 만들어내는 생명력은 화가로서 스스로를 세상에 드러내는 빛나는 전면입니다. 하지만 이 그림의 진짜 가치는 캔버스 뒤편에 숨어 있습니다.

 [The MET 2층 822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Straw Hat)'. 강렬한 붓질 뒤에 숨겨진 치열한 삶의 의지를 마주합니다.
[The MET 2층 822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Self-Portrait with a Straw Hat)'. 강렬한 붓질 뒤에 숨겨진 치열한 삶의 의지를 마주합니다. ⓒ 문현호

고흐는 캔버스 살 돈이 부족해 이미 그림이 그려진 천의 뒷면에 자신의 얼굴을 그렸습니다. 그 앞에 남겨진 그림이 바로 '감자 깎는 여인'입니다. 어두운 실내에서 오직 감자를 깎는 행위에만 몰입한 노동자의 굽은 등. 그것은 화려한 예술가의 자화상을 지탱하고 있는 정직한 삶의 이면입니다.

한 조직을 이끄는 책임감, 가장으로서 견뎌온 인내의 시간들이 이 여인의 거친 손등 위에 겹쳐 보였습니다. 삶의 진짜 숭고함은 조명 아래 서는 화려한 순간이 아니라, 묵묵히 제 몫의 정성을 다할 때 비로소 완성된다는 것을 고흐의 낡은 캔버스는 증명하고 있었습니다.

 [The MET 2층 822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깎는 여인(The Potato Peeler)'. 자화상 캔버스 뒷면에 남겨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정직한 노동을 응시합니다.
[The MET 2층 822 갤러리] 빈센트 반 고흐의 '감자 깎는 여인(The Potato Peeler)'. 자화상 캔버스 뒷면에 남겨진,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정직한 노동을 응시합니다. ⓒ 문현호

[요하네스 페르메이르] 일상의 신성함

고흐를 지나 갤러리 632로 들어서면, 고요한 평온이 찾아옵니다. 빛의 마술사,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시간입니다. 창가에서 들어오는 은은한 빛이 여인의 하얀 두건 위로 부드럽게 내려앉습니다. 특별할 것 없는 아침의 일상이지만, 페르메이르의 붓끝을 거친 이 장면은 마치 신성한 의식처럼 보입니다. 감자를 깎던 고흐의 여인이 삶의 고단한 이면을 상징했다면, 페르메이르의 여인은 그 일상이 빛을 만났을 때 도달하는 성스러운 전면을 보여줍니다.

저는 이 그림 앞에서 다시 딸을 떠올렸습니다. 저의 단독 미술관 산책이 저를 다시 세운 것처럼, 이제 타국에서 홀로 삶을 일궈가야 할 딸아이 또한 앞으로 마주할 수많은 아침에서 이 그림 속 여인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운 빛의 세례를 받기를. 부엌의 고단함조차 빛으로 환원되는 삶의 신성함을 아이가 스스로 알아가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습니다.

 [The MET 2층 632 갤러리]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물주전자를 든 여인(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 고단한 일상의 이면이 빛을 만나 신성한 전면으로 거듭나는 찰나입니다.
[The MET 2층 632 갤러리]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물주전자를 든 여인(Young Woman with a Water Pitcher)'. 고단한 일상의 이면이 빛을 만나 신성한 전면으로 거듭나는 찰나입니다. ⓒ 문현호

홀로 방문한 메트는 거장들이 비춰준 거울을 통해 저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여정이었습니다. 5000년의 역사는 거창한 타인의 기록이 아니라, 그 시간을 견뎌온 수많은 '나'들이 쌓아 올린 공감의 기록이었습니다.

미술관 계단을 내려오며 문득 제 어깨가 가벼워졌음을 느꼈습니다. 누군가의 아빠로서, 혹은 회사의 리더로서 늘 '전경'에 서서 중심을 잡아야 했던 긴장감이 이곳의 고요한 '배경'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른 덕분입니다. 나를 정직하게 들여다보고 내 안의 낡은 나이테까지 긍정하는 시간을 가진 뒤에야, 비로소 타인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이곳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미술관 밖 뉴욕의 공기는 여전히 차가웠지만, 거장들과의 독대를 마치고 다시 돌아갈 저의 일상은 이전보다 훨씬 선명하고 또렷해져 있었습니다. 나라는 배경이 단단해질 때, 비로소 내 곁의 사람들도 더 환하게 빛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저는 다시 인파 속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제 안의 첼로 선율은 이제 가장 다정한 주파수로 세상을 향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나의뉴욕미술관답사기#뉴욕여행#렘브란트#베르메르#빈센트반고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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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나의 뉴욕 미술관 답사기

사투리는 여전하고, 마음 한켠엔 늘 바다가 있습니다. 서울 하늘 아래 걷고 있지만, 그리움은 늘 남쪽을 향합니다. 조용한 산책길과 사소한 감탄 속에서 느리게, 그러나 단단하게 살아가는 이야기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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