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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온 지 거의 2년이 다 되어서야 지난 3일, 처음으로 아파트 헬스장에 갔다. 시설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입주 안내문에도 나와 있었고 주차할 때마다 우리집 입구 왼쪽의 '커뮤니티 센터'를 봤으니까.
그랬어도 막상 가본 적은 없었다. 수영이랑 요가만 해왔고 헬스는 내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문득 그냥 한번 가볼까 싶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집에서 엘리베이터만 타면 되니까. 그날은 한파주의보가 내린 날이었으니까.
헬스장 문을 열고 들어서니 생각보다 넓었다. 유산소와 무산소 구역이 안내 데스크 중심으로 나뉘어 있었다. 한쪽 벽면을 채운 트레이드 밀과 사이클이 보였고 반대 벽면에는 스트레칭을 위한 두툼한 매트가 있었다. 무산소 구역에는 웨이트 기구와 프리웨이트 바벨이 종류별로 구비되어 있었다. 10년이 넘은 아파트인데 운동 시설은 생각보다 깔끔했다.
한쪽 구석에 무료 인바디 측정기가 있었다. '무료?' 나는 잠깐 망설이다가 신발을 벗고 올라갔다. 몇 달 전 보건소에서 재본 적이 있다. 그 기계랑 똑같아 보였는데도 그때보다 점수가 1점 높게 나왔다. 별것 아닌데도 기분이 좋았다. 1점이라는 숫자가 주는 위로 같은 게 있었다.
바벨존에 가서 4kg짜리 아령 두개를 들고 런지를 했다. 집에서 2kg 아령 두개로 자주 했으니 이 정도는 될 거 같았다. 횟수는 집에서보다 반 밖에 못했지만 무게가 주는 뻐근함이 상쾌했다. 턱걸이를 위한 봉에도 매달렸다. 물론 한 개도 못한다.
몸을 움직이는 것

▲아파트 헬스2년만에 처음 가본 아파트 헬스, 프리웨이트는 역시 무게가 필요했다 ⓒ 최은영
매달리기 자체가 도전이었다. 초보는 봉에 매달리는 것만으로도 운동이 된다더니 정말 그랬다. 데드행(몸을 축 늘어뜨려 척추 스트레칭 하기)과 앞뒤 흔들기를 했다. 최대로 버텨도 30초를 넘지 못했지만 다섯 셋트를 했다. 여기 와서 매일 이것만 해도 남는 장사일 것 같다.
러닝머신에 속도를 천천히 올리며 가볍게 뛰었다. 창문 너머로 아파트 카페와 작은 도서관이 보였다. 둘다 한번도 안 가봤고 근사한 풍경도 아니었지만 낯설지도 않았다. 그냥 익숙한 우리 동네, 우리 집 바로 아래라 그런가 보다. 헬스장에 간다는 게 늘 멀리 나가야 하는 일처럼 느껴졌는데 1층인 우리집에서 계단만 내려오면 되는 거였다.
옆에서 한 중년 남성이 천국의 계단을 오르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표정은 평온했다. 반대편에서는 이어폰을 낀 젊은 여성이 나보다 빨리 달리고 있었다. 모두 각자의 시간을 보내고 있을 뿐인데도 페이스 메이커가 되어 주는 것 같았다. 나도 저 사람이 끝날 때까지는 계속 뛰어야지, 같은 마음이었다.
30분 쯤 뛰고 내려와 스트레칭을 했다. 생각보다 몸이 가벼웠다. 집 밖으로 나갈 때의 그 번거로움, 운동복 가방에 넣고, 사물함 번호 기억하고, 샤워하고 나와서 머리 말리는 일련의 과정이 없으니 마음이 편했다. 그냥 집에서 나와서 운동하고 다시 집으로 올라가면 되는 거였다.
문득 내가 2년 동안 왜 이걸 몰랐을까 싶었다. 아니, 알면서 그냥 가지 않았을 뿐이다. 수영과 요가만 '내 운동'이라고 정해 놓고 헬스는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이라고 선 그어 놓았던 것 같다. 막상 와보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몸을 움직이는 것, 그 자체가 좋았다.
한겨울이 왔고, 집 밖으로는 나가기 싫지만 건물 계단 하나 내려가는 것 정도는 할 수 있는 그런 시절이 왔다. 거창한 결심도 큰 변화도 아니었다. 추웠던 어느 날에 집에 있던 시설 하나를 발견한 것 뿐이다. 하지만 삶이 이렇게 작은 발견 하나로도 조금씩 달라진다. 머신 위에서 뛰며 창밖의 카페를 바라보던 그 시간들을, 인바디 점수 1점에 웃었던 그 순간을, 아마 한참 뒤에도 기억할 거 같다.
살아 있다는 건 늘 있었지만 몰랐던 것들을 하나씩 발견해가는 것일지 모른다. 2년이 지나서야 주차장이 아닌 지하 1층을 찾아간 나처럼 우리의 삶에는 아직 가보지 않은 층들이 많이 남아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