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해 2월 서울의 한 식당가에 대출 광고가 붙어 있다. ⓒ 연합뉴스
우리 사회에서 빚은 더 이상 개인의 부주의로만 치부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되었다. 고물가와 저성장이 고착화된 현실에서 생계를 위해 잡은 대출이라는 밧줄이, 누군가에게는 시간이 흐를수록 목을 죄는 올가미가 되고 있다. 현재 법정 최고금리 연 20% 체제 아래서는 소액의 생계비를 빌리더라도 기간이 길어지거나 연체가 발생하면 이자가 원금을 넘어서는 역전 현상이 빈번하게 발생한다. 성실히 이자를 냈음에도 빚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현대판 자모정액법'이라 할 수 있는 '대출 이자총량제'의 도입이다.
우리 선조들은 일찍이 고리대의 위험성을 간파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통제해왔다.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민생 보호의 핵심 원칙이었던 자모정액법(子母定額法)이 그 증거다. '이자(子)는 원금(母)을 넘지 못한다'는 이 명료한 원칙은 국가가 시장의 탐욕을 통제하고 백성의 경제적 파멸을 막았던 지혜의 산물이었다. 아무리 오랜 기간 돈을 빌려 썼더라도 누적 이자가 원금과 같아지면 더 이상의 이자 수취를 엄격히 금지함으로써, 채무자가 평생 빚의 노예로 전락하는 것을 방지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통찰은 현대 선진 금융국에서도 실현되고 있다. 영국의 금융감독청(FCA)은 2015년부터 고금리 단기대출 시장에 '총비용 상한제(Total Cost Cap)'를 전격 도입했다. 이자뿐만 아니라 수수료를 포함한 총비용이 원금의 10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제한 이 제도는 자본주의의 본산조차 약탈적 금융으로부터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이자의 물리적 한계를 설정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실제 도입 이후 영국의 고금리 대출 시장은 대출 건수가 감소하고 상환 능력이 있는 차입자 중심으로 재편되는 등 긍정적인 변화를 겪은 바 있다.
반면 한국의 현실은 여전히 정보 비대칭과 불합리한 상환 구조 속에 방치되어 있다. 금융기관들은 낮은 월 상환액만을 강조하며 장기 대출을 유도하지만, 정작 만기 시까지 지불해야 할 '총금융비용'에 대한 정보 제공은 미흡하다. 특히 원리금 균등상환 방식은 초기 납입금 대부분이 이자로 구성되어 있어, 중도에 상환 능력을 상실할 경우 차입자는 원금은 거의 갚지 못한 채 이자만 납부한 상태로 시장에서 퇴출당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현대판 자모정액법'인 대출 이자총량제를 법제화하여 금융의 공공성을 회복해야 한다. 개별 대출 계약에서 차입자가 지불하는 약정 이자, 연체 이자, 수수료 등 모든 명목의 비용 합계가 원금을 초과할 수 없도록 법제화해야 한다. 금융기관 전산망에 '누적 이자 카운터'를 설정하여 이자 수취가 원금에 도달하는 순간 자동으로 이자 부과를 중단하고, 이후 납입금은 전액 원금 상환에 충당하도록 시스템을 개편해야 한다. 또한 대출 시 '총 이자 상한액' 고지를 의무화하여 소비자가 자신의 부채 상황을 실시간으로 관리할 수 있도록 알권리를 강화해야 한다.
이 제도는 고금리 대부업과 저축은행부터 시작해 정책금융 상품을 거쳐 일반 가계대출로 점진적으로 확대 적용함으로써 시장의 수용성을 높일 수 있다. 대출 이자총량제는 단순히 빚을 탕감해주자는 포퓰리즘이 아니다. 금융기관이 차입자의 상환 능력을 보다 면밀히 살피게 함으로써 금융권의 질적 성장을 유도하고, 서민 가계의 경제적 자생력을 회복시키는 실용적인 대책이다. 벼랑 끝에 선 이들에게 다시 일어설 기회를 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사회가 지향해야 할 상생, 포용 금융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금융과 미래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