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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짓수
주짓수 ⓒ 양민영

몇 년 전 한 일간지에서 새해 특집으로 사진 촬영을 제안했다. 주제는 '운동하는 여성들'이었고 그중에서 주짓수하는 모습을 연출해달라고 부탁받았다. 한편으로는 그래도 촬영인데 머리를 다듬는다든지, 최소한의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하면서도 너무 정돈된 모습이 어색할 것 같아서(사실은 별도로 준비하기 귀찮았다) 도복만 챙겨 촬영 장소로 갔다.

그때 찍은 사진을 지금 보면 우선 전날에 뭘 먹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얼굴이, 특히 눈가가 부어 있고 머리는 전혀 손질되지 않았으며 포즈도 너무 단조롭다. 어쩌면 저렇게 무방비인 채로 사진을 찍었을까 싶은데 그럴 수밖에 없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그때 나는 운동하는 여성이 성적으로 대상화되고 상품화되는 걸 반대했고 그에 관한 책을 출간했고 바로 나 자신이 꾸미지 않고도 운동하는 여성의 예시라고 생각했다. 가끔 기사에 책을 소개하며 사진이 실렸는데 그때마다 '페미니스트는 역시 못생겼다', '뚱뚱하다'라는 악플이 수백 개씩 달렸다.

맹렬한 인신공격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나는 근래 사정이 달라졌다. 만족스러운 사진을 찍기 위해 준비, 촬영, 보정까지 혼자 하면서, 그 과정에서 겪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이는 모두 섬네일(thumbnail) 때문이다. 섬네일은 작은 스케치를 일컫는 용어로 미술에서 먼저 쓰였고 지금처럼 대중적으로 쓰인 건 유튜브의 등장 이후다. 엄지손톱만 한 작은 이미지가 나에겐 심판대가 됐다.

섬네일의 중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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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영상을 만들 때만 해도 섬네일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긴 영상에서 하이라이트인 장면을 캡처하고 적당히 재미있는 문구를 달면 충분한 줄 알았다. 그래서 보는 사람은 생각하지 않고 마음대로 섬네일을 만들었다. 어느 날 알고리즘이 섬네일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영상을 추천해 몰랐던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진 말이다.

영상에 등장한 남자는 섬네일을 마지막에 만드는 것부터가 틀렸다고 지적했다. 시청자의 눈에 가장 먼저 들어오고 영상을 클릭할지 말지 결정하게 하는 것이 섬네일이니까 가장 먼저 섬네일부터 만든 다음 그에 맞게 영상을 편집해야 한다는 것이다.

글쓰기와 비교하면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가끔 제목부터 정하고 그에 맞춰 글을 쓸 때도 있지만 그런 일은 흔하지 않다. 보통은 일정 분량의 초고를 자유롭게 쓰고 생각을 정리해서 다듬은 다음, 전체 내용을 아우르는 제목을 짓는다. 불행히도 나는 제목 짓기에 소질이 없는 편이고 습작을 쓸 때마다 제목이 별로라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신기한 건 제목을 그럴듯하게 잘 짓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글도 웬만큼 잘 쓴다. 반대로 제목을 잘 짓는데 글을 못 쓰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렇듯 섬네일 만들기가 생각보다 훨씬 중요한 작업이라고 생각하자 스트레스가 밀려왔다. 그러나 작업 순서를 바꿔보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어설프게나마 영상의 콘셉트가 생기는 것 같았다. 그것도 영상 하나가 아니라 영상과 영상 간에 통일감이 느껴지는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건 분명했다.

웃지 못할 일인극

두 달 전부터 비건 음식과 웰니스를 소재로 새로운 영상을 만들었는데 여기서 문제가 생겼다. 이 영상들의 섬네일은 운동복을 입은 전신 셀카다. 섬네일을 무작정, 마음대로 만들다가 처음으로 다른 인기 계정의 이미지를 참고했다. 브라톱과 레깅스를 입고 포즈를 취하는데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어려웠다. 스판덱스 재질의 운동복은 워낙에 밀착되는 탓에 어떻게 입어도 살이 밀려 올라간다.

자세하게 묘사하면 브라톱에 조여 내려온 상체의 살과 레깅스에 밀려 올라간 하체의 살이 정확히 허리에서 만난다. 브라톱의 기장이 끝났고 레깅스는 아직 시작되지 않아 맨살이 그대로 노출되는 허리는 원래 잘록하게 들어가야 하는 부위다. 얼마나 운동을 열심히 했는지, 얼마나 음식 섭취를 엄격하게 조절하는지 가늠하는 척도랄까.

처음엔 결과물이 형편없는 게 장비의 도움 없이, 너무 정직하게 찍은 탓인 줄 알았다. 그래서 창고에 있던 조명을 꺼냈다. 빛을 이용해 인위적으로 명암 효과를 주고 싶은데 조명을 거의 써본 적이 없어서 어느 각도에서 어떤 강도로 빛을 쏴야 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었다.

대충 조명을 켠 채로 테스트 삼아 몇 장을 찍었는데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빛이 피사체에 직접적으로 닿아서 피부의 요철, 주름, 군살이 더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새삼 우리가 쓰는 모바일폰의 카메라가 솜씨 없는 사람이 찍어도 최상의 결과물이 나올 수 있게 만들어졌음을 실감했다.

쓸 만한 사진은 한 장도 건지지 못했는데 서너 시간이 훌쩍 지났다. 무엇보다 배가 고팠다. 새해 특집호 때와 다르게 전날부터 염도 높은 음식을 피했고 음료조차 마음껏 마시지 못했다. 이러한 노력에도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믿을 거라곤 보정 애플리케이션뿐이었다. 이 웃지 못할 일인극을 나 말고는 보는 사람이 없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어느 정도냐면 태어나 처음 셀카가 좋아졌다. 셀카는 나르시스트들이 좋아하는 놀이로 쉽게 폄하되곤 하지만 실상은 굉장한 것이었다. 그 많은 시도, 실패, 거짓을 뒤로 하고 아무 일도 없다는 듯 결과물만 내놓을 수 있다니, 너무나 매력적이다. 단순하게 보면 내가 직접 나를 찍는 사진이지만 자신에 대한 이해, 미감, 표현력, 연출력 등 수많은 능력이 요구된다.

강력하고 촘촘한 자기 검열

절망적인 심정으로 새해 첫 촬영을 끝냈다. 보정을 거친 결과물은 나쁘지 않았지만 기운 없고 무표정한 얼굴이 마음에 걸렸다. 몸도 마음도 불편한 상태로 찍었으니 당연하다. 특히 나는 사진을 찍는 내내 지나치게 여성스러움을 강조하는 나이 든 여성을 향한 사람들의 반감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당장 떠오르는 조롱만 해도 '나이와 어울리지 않는다', '젊은 줄 착각한다' 등이 있었다.

무엇보다 영상 만들기는 내가 쓴 글을 토대로 콘텐츠를 확장하기 위한 시도인데 이를 거듭할수록 원래의 메시지가 흐려지다 못해 그것을 부정하는 기분이었다. 쉽게 말해서 페미니즘적이지 못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내 모습을 노출하면서 글만 쓸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촘촘한 자기 검열에 시달린 것이다.

예를 들면 쇼트커트를 몇 년째 유지하다가 오랜만에 머리를 길렀지만 단발머리쯤 됐을 때 다시 잘랐다(편의를 위한 선택이기도 했다). 이 정도면 페미니즘적인가? 또 다른 예로 몸무게를 많이 줄였지만 감량을 위해 굶지는 않는다. 그리고 여전히 화장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전신 셀카를 찍은 것에 대한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알고 보니 모두 통념에 반하는 주장을 가장 통념에 충실한 영상 문법으로 수행하려는, 무리한 시도에서 비롯된 부작용이었다. 그리고 이 스트레스는 아마도 섬네일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다. 차라리 수면에 비친 자기 얼굴에만 몰두하느라 검열 따위는 안중에 없는 나르키소스가 부러웠다. 또 한편으론 내가 이 딜레마를 어떻게 헤쳐나갈지 남의 일을 구경하듯 바라본다. 실패는 성공의 반대 개념이고 또 발에 채듯 흔하다. 하지만 때로는 성공보다 더 유의미해서 도저히 싫어할 수만은 없다.

#유튜브#유튜버#섬네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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