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산업 전환이 본격화된 2026년 한국을 앞두고, 기후정책 싱크탱크 녹색전환연구소는 일본 사례를 통해 전환금융과 지역 에너지 전환의 조건을 살폈다.

▲눈 덮인 길가에 모습을 드러낸 여우. 일본 홋카이도 시모카와정으로 향하는 길은 사람의 생활권과 야생의 경계가 맞닿아 있다. ⓒ 녹색전환연구소
기후정책이 지속적인 동력을 얻고 주류화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필요하다. 기후정책이 당장 나의 삶을 실질적으로 개선할 것이라는 확신이다.
그 점에서 최근 전남 신안군의 햇빛연금이나 경기 여주 구양리의 '햇빛소득마을' 사례는 재생에너지 발전 수익을 주민과 나누며 기후대응과 소득 증대를 연결한 시도로 주목받고 있다.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간 사례도 있을까? 녹색전환연구소는 각 지역이 각자의 배경과 상황에 맞는 전환 정책을 펼 수 있도록 이와 같은 경험을 발굴하고 확산하고자 한다. 이에 연구소는 이웃나라 일본을 찾았다. 한국보다 먼저 인구소멸을 겪고 있는 지역들을 보며 시사점을 얻고자 했다.
특히, 일본 답사에서 보고 싶었던 것은 주민들의 삶의 질 개선을 매개로 에너지 전환, 특히 한국이 미진한 열 분야 에너지 전환을 시도한 사례였다.
그래서 연구원들은 일본 최북단 홋카이도의 내륙 작은 마을, 시모카와정(下川町)으로 향했다.
에너지와 복지의 결합… 소멸 위기에서 다시 일어선 시모카와

▲눈으로 덮인 일본 홋카이도의 겨울 숲. 시모카와를 포함한 홋카이도 내륙 지역의 전형적인 산림 풍경이다. ⓒ 녹색전환연구소
시모카와는 홋카이도 최대 도시 삿포로에서 차로 4시간은 들어가야 닿을 수 있는 내륙의 작은 지방자치단체다. 시모카와는 과거 광산과 임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지역으로, 면적의 90%가 숲으로 이뤄졌다. 1960년대에는 인구가 1만 5000여 명에 달했을 정도다. 그러나 목재 수입 자유화, 광산 폐쇄, 철도 노선 폐쇄 등으로 지역경제가 연이어 직격탄을 맞으며 인구가 급격히 줄고 지역 산업이 무너졌다.
일자리가 사라지자 사람도 떠났다. 현재 시모카와의 인구는 2000여 명에 불과하다. 지역소멸이란 위기 앞에서 마을은 오랜 논의 끝에 지역 안에 있는 자원을 활용해 주민들의 실질적인 삶의 질을 높이기를 선택했다. 외부 자본이나 일시적인 경기 부양책에 기대지 않기로 결단한 것이다. 이러한 결단은 지역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과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으리라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주민들은 이를 '시모카와이즘(Shimokawa-ism)'이라 부르고 있었다. 이들은 우선 지역의 가장 풍부한 자원인 숲에 주목했다. 이에 지역은 순환형 산림경영을 도입했다. 축구장 70여 개에 해당하는 규모인 50㏊(헥타르)를 매년 벌채하고, 같은 면적에 다시 나무를 심는 방식으로 지역 내 임업을 재구성한 것이다.
많은 지역이 재조림을 산림 정책의 끝으로 삼는 반면, 시모카와는 그 이후의 가공·부산물 단계까지 에너지 시스템으로 끌어들였다. 적자를 감수한 에너지 전환, 이 방식은 2004년부터 시작됐다. 시모카와는 공공 온천시설인 고미온천의 유류 보일러를 목재칩 바이오매스 보일러로 교체하는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유가로는 연간 60만 엔(약 556만 원)의 비용이 더 드는 비경제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시모카와는 버려지는 부산물을 활용해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는 것이 장기적으로는 이익이라 판단했다. 여기에 지역 일자리 창출에도 도움이 될 것이란 판단 아래 적자를 감수하기로 했다. 여기서 얼마 지나지 않아 반전이 일어났다. 국제 유가가 급등하면서 초기 적자는 순식간에 해소된 것이다.
나아가 몇 년 뒤 연간 300만 엔(약 2785만 원) 이상의 흑자 구조로 돌아선 것이다. 재정적 리스크를 감수한 에너지 전환이 오히려 경제적인 선택이 된 첫 사례였다.
주유소 사장도 에너지 전환 지지할 수 있었던 까닭은?

▲일본 홋카이도 시모카와정 이치노하시 바이오빌리지 관계자와 간담회 모습. 녹색전환연구소의 지역 에너지 전환과 주거·복지 결합 전략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녹색전환연구소
이 성공에 자신감을 얻은 시모카와는 지역 중심가에 지역난방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목재칩 바이오매스 에너지를 개별 활용 수준에서 벗어나 지역 전체를 잇는 열 공급 체계로 발전시키고자 한 것이다.
해당 지역난방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관계자는 연구소에 "현재 목재칩 바이오매스 보일러 10기가 공공시설과 민간 공장 등 30여 곳에 열을 공급한다"며 "연간 4000만 엔(약 3억 7130만 원) 규모의 난방비를 절감한다"고 말했다. 동시에 지역의 열 자립률 역시 56%까지 끌어올렸다고 덧붙였다.
주목할 점은 지역 주유소 사장도 에너지 전환을 지지한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에너지 전환은 기존 화석연료 유통업자의 반발을 불러온다. 실제로 일본에서는 보통 에너지 전환 과정에서 기존 화석연료 사업자들의 반발이 재생에너지 도입의 걸림돌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시모카와에서는 오히려 지역난방 중심의 열 전환이 주민들의 폭넓은 동의를 얻었다. 그 이유는 단순했다. 시모카와는 이들을 배제하지 않고 포용을 택했기 때문이다. 시모카와는 주유소 등 기존 화석연료 유통업자들이 연료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도왔고, 이 협동조합에게 목재칩 바이오매스 원료 공급과 보일러 운영을 맡겼다.
이 협동조합은 연간 순수익만 2000만 엔(약 1억 8560만 원) 정도다. 협동조합은 이 중 절반을 지역에 환원해 학생들의 무상교육, 급식비, 보육료 지원 등에 쓰이도록 한다.
에너지 전환의 과실이 업자의 생계 유지와 주민 복지, 시설의 지속적인 관리로 골고루 배분되는 구조인 것이다. 덕분에 기존 화석연료 유통업자들은 이제 지역 에너지 전환 정책의 가장 강력한 옹호자가 됐다. 주민들 삶의 질도 크게 좋아졌다.
에너지를 바꾸자, 활기를 되찾은 마을

▲(왼) 홋카이도 시모카와정 이치노하시(一ノ橋)의 목재칩 바이오매스 열공급 시설의 모습, (오) 지역 산림에서 나온 목재칩을 연료로 활용해 주택과 공공시설에 열을 공급한다. ⓒ 녹색전환연구소
시모카와의 철학을 구체적인 공간으로 구현한 곳이 바로 '이치노하시(一ノ橋) 바이오빌리지'다. 과거 임업 중심지로 한때 2000여 명이 살았으나, 쇠퇴를 거듭하며 인구가 30여 명까지 줄어든 곳이다. 이에 지방정부와 주민들은 머리를 맞대고 마을을 없앨 것인지, 유지할 것인지 논의했다. 결론은 언제나 하나로 도출됐다. 주민들은 마을에서 여생을 보내기를 원했다.
이에 지방정부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가장 우선적인 목표로 삼아 마을을 재구성하기로 결정했다. 마을 관계자는 연구원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단순히 탄소중립을 목표로 재생에너지 전환한 것이 아니라, 주민들은 더 따뜻하게, 마을은 더 풍성하게 만드는 전략으로 접근했어요."
먼저 마을 중심에 목재칩 바이오매스 보일러 2대를 설치하고 300m 길이의 열배관망을 깔았다. 이를 기반으로 난방비 걱정 없는 고효율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해 주민들의 이주를 유도했다. 월 임대료는 소득에 따라 적게는 한화 10만 원에서 많게는 60만 원 정도다. 난방비는 가장 넓은 평형에서도 최대 한화 10만 원 정도에 불과하다.
주택 단지는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위해 모든 건물을 지붕과 벽이 있는 통로(회랑)로 연결했다. 덕분에 눈이 사람 키만큼 쌓이는 홋카이도의 매서운 겨울에도 어르신들이 슬리퍼를 신고 이웃집에 마실을 가고 산책을 할 수 있었다.
주거 환경이 좋아지고 난방비 부담이 줄자 변화가 시작됐다. 기존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도시에서 이주해 온 청년들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예술 활동을 하는 청년들이 입주했고, 목재칩 바이오매스 보일러의 폐열을 활용해 버섯과 딸기를 재배하는 농장이 들어섰다.
그 결과, 이치노하시의 인구보다 많은 수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에너지를 매개로 주거와 복지, 산업을 결합하자 소멸해가던 마을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지역에 같은 답은 없다"… 가장 지역적인 전략이 곧 해법

▲일본 이치노하시 바이오빌리지의 버섯 가공·선별 작업 현장에서 직원들이 수확한 버섯을 선별·포장하고 있다. 이 마을은 바이오매스 열공급 시설의 폐열을 활용해 농업 생산과 일자리를 결합했다. ⓒ 녹색전환연구소
현재 시모카와는 이치노하시의 사례를 중심가에도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지자체 곳곳에 공공주택을 짓고 열 공급망을 확충해 인구 감소에 따른 지역 구조 개편에 대응한다는 것.
시모카와의 사례가 주목받는 이유는, 가장 전환이 어렵고 가장 체감이 큰 '열' 분야에서 해법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열 분야 탄소중립은 단순한 기술 전환이 아니다. 난방비·주거·복지를 함께 다루는 생활 정책의 문제다.
그러나 열 분야는 여전히 화석연료 의존도가 매우 높다. 보일러·배관 등 에너지 공급망 전체가 얽혀있기 때문이다. 덕분에 온실가스 배출량도 많다. 기후에너지환경부에 따르면, 열에너지 소비로 발생하는 온실가스 배출은 전체 에너지 부문 배출량의 29.2%를 차지한다. 달리 말하면, 열 분야는 제대로 설계만 하면 배출량 감축과 삶의 질 개선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영역이다.
물론 시모카와의 사례가 완벽한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겠다. 시모카와의 모델은 2017년 일본 '지속가능개발목표(SDGs) 어워드'에서 총리상을 수상할 만큼 모범 사례로 소개됐으나, 다른 지역까지 확산되지 못했다. 시모카와가 아니면 적용하기 애매한, 너무 '지역적'인 모델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것은 단순히 목재칩 바이오매스 보일러를 마을에 도입한 과정이 아니라, 바로 그 지역의 자원과 생활양식에 맞는 가장 '지역적'인 전략이 있어야 기후대응과 지역 강화라는 과제를 효과적으로 풀 수 있다는 점에 있다.
나아가서는 마을의 자원을 수출용 상품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체온을 지키고 아이들을 교육하며 어르신을 돌보는 '사회적 자본'으로 재해석했다는 점에 있다.
한국의 수많은 지방정부도 고령화, 인구소멸, 지역경제 활성화, 기후대응이라는 공통된 숙제를 안고 있다. 우리 지역들 역시 각 지역에 맞는 가장 좋은 해법, 그리고 가장 주민 친화적인 해법을 발견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인구 2000여 명의 작은 마을도 같은 방식으로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음을 증명한 것처럼 말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김민석 기후시민팀 연구원이 작성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