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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에너지환경부(기후부)가 추진 중인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공론화 과정이 점입가경이다. 정부는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국민적 공론을 통해 최종 결정하겠다고 밝히며, 약 보름이라는 유례없는 단기 일정 속에서 두 차례의 정책토론회와 대국민 여론조사를 연이어 진행하고 있다.

국가 에너지 체계의 근간을 흔드는 중대한 결정을 자동응답(ARS) 여론조사 한 번으로 확정 짓겠다는 발상은 민주적 숙의라기보다, 이미 정해진 답을 정당화하기 위한 절차를 '공론화'라는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가깝다.

에너지 정책은 단기적 선호의 문제가 아니다. 신규 원전 건설과 기존 원전의 수명 연장은 향후 수십 년간 되돌릴 수 없는 경로를 고정시키는 선택이며, 안전·비용·위험을 미래에 전가하는 결정이다. 그럼에도 기후부는 이 중대한 정책 판단을 단기간의 토론회와 여론조사로 처리하려 하고 있다. 이는 민주적 숙의를 확대하려는 시도라기보다, 정치적 책임을 분산시키고 회피하려는 방식에 가깝다.

전문가 토론회가 아닌 2시간짜리 '행사'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이 지난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바람직한 에너지믹스 2차 정책 토론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정부는 지난달 30일과 이달 7일, 두 차례의 정책토론회를 통해 전문가 의견을 수렴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토론회의 형식과 시간은 다뤄진 주제의 무게에 비해 지나치게 빈약했다. 1차 토론회에서는 2050년 에너지 수요 전망, 석탄발전 전환 방향, 해외 에너지믹스 사례가 다뤄졌고, 2차 토론회에서는 전력계통 안정성, 원전의 역할, 재생에너지 간헐성 문제가 논의됐다. 이 주제들은 각각 독립적인 정책 논쟁의 장이 필요하며,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합의가 존재하지 않는 쟁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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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토론회는 깊이 있는 논쟁의 장이 아니라, 발제자의 발표와 제한된 패널 발언으로 빠르게 흘러갔다. 가정과 수치, 모형에 대한 상호 검증이나 반박은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학술 토론이나 정책 검증의 기본 조건인 자료 공개와 재현 가능성, 전제 조건에 대한 질문은 충분히 보장되지 않았다. 특히 이번 토론회의 출발점이었던 '신규 원전 2기 건설'이라는 질문 자체는 토론 과정에서 거의 등장하지 않았다. 논의의 초점은 자연스럽게 '원전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가', '계통을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로 이동했고, 원전 확대를 전제로 한 논의만 남았다.

이는 공론화가 아니라 의제 설정의 문제다. 무엇을 논의할 것인가를 먼저 좁혀 놓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토론은, 결론이 열려 있는 논의가 아니라 이미 설정된 정책 방향을 기술적으로 보완하는 과정에 불과하다. 전문가 내부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은 쟁점을 시민에게 넘기는 방식은 숙의가 아니라 판단 책임의 전가다.

이번 공론화의 핵심은 신규 대형 원전 2기 건설 여부다. 정부와 원전 찬성 진영은 반복적으로 원전의 낮은 균등화발전원가(LCOE)를 근거로 경제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토론회 과정에서 드러난 신규 원전 건설의 문제점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1차 토론회의 한 발제자는 표면적으로는 기존의 단순 발전원가 논의를 넘어 시스템 차원의 비용과 가치를 고려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합리적인 문제의식을 제기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실제 발제 내용을 살펴보면, '시스템 LCOE'라는 개념은 중립적인 분석 도구라기보다 원자력 발전을 정당화하는 방향으로 선택적으로 적용되고 있었다. 재생에너지에 대해선 간헐성 대응 비용, 계통 안정화 비용, 출력 제어 비용 등을 적극적으로 부각했지만, 원전에 대해서는 동일한 기준을 적용하는지 의문스럽다.

원전 역시 출력 조정이 어려운 경직성 전원으로서 계통 운영에 부담을 주고, 재생에너지 확대 과정에서 구조적인 충돌 비용을 발생시킨다. 원전 비중이 높을수록 재생에너지 출력 제어가 증가하는 것은 기술적 문제가 아니라 전원 구성 선택의 결과다. 그러나 이러한 비용과 제약은 체계적으로 산정되지 않았다. 시스템 비용을 말하면서도, 그 부담은 재생에너지 쪽에 집중시키고 원전의 시스템적 비용은 가려버린 셈이다.

노후 원전 수명 연장, 경제성 뒤로 밀린 안전

 탈핵시민행동이 지난 5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에서 기자회견 후 '탈핵희망전국순례'를 시작한 모습.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부산 고리핵발전소를 출발 세종, 청와대까지 16일간 신규 핵발전소 반대 도보 행진을 펼친다.
탈핵시민행동이 지난 5일 부산 기장군 고리원전 앞에서 기자회견 후 '탈핵희망전국순례'를 시작한 모습. 탈핵시민행동은 이날 부산 고리핵발전소를 출발 세종, 청와대까지 16일간 신규 핵발전소 반대 도보 행진을 펼친다. ⓒ 연합뉴스

특히 문제적인 부분은 노후 원전 수명 연장과 관련된 경제성 평가다. 1차 토론회의 발제에서는 원전의 경제성을 논하면서도, 노후 원전을 10년씩 두 차례 연장해 총 20년을 더 가동할 경우 발생하는 막대한 비용은 거의 다뤄지지 않았다. 최신 안전 기준을 충족하기 위한 설비 보강 비용, 장기 가동으로 추가 발생하는 사용후핵연료 관리 비용, 사고 위험 증가에 따른 사회적 비용과 그로 인한 원전 인근 지역 주민 피해, 그리고 수명 연장 이후 불가피하게 커지는 폐로 비용 등은 경제성 평가에서 구조적으로 누락되거나 미래로 미뤄졌다.

안전 문제 역시 경제성 논의의 뒤편으로 밀려났다. 노후 원전의 경우 원자로 압력용기의 중성자 취화, 주요 기기와 배관의 재료 열화는 시간이 지날수록 되돌릴 수 없이 누적된다. 이러한 노후화는 단순히 선형적으로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 시점을 넘어서면 비선형적으로 위험이 급증할 수 있다는 점이 여러 차례 지적돼 왔다. 특히 2차 수명 연장 국면에서는 예측하기 어려운 결함이나 사고 확률 증가를 배제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이러한 누적 안전 리스크가 에너지 수급 안정성 분석이나 장기 시나리오에 어떻게 반영됐는지는 토론회에서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다. 수치상 탄소 감축 목표를 맞추기 위해 시민의 안전을 전제로 한 위험한 도박을 벌이고 있는 셈이다.

신규 원전 건설 논의에서 빠질 수 없는 또 하나의 문제는 송전망과 지역 수용성이다. 대규모 원전은 이를 수요지로 보내기 위한 초고압 송전망 확충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동서울변환소 사례에서 보듯, 송전망 건설은 지역 주민의 반대와 갈등으로 수년, 때로는 십 년 이상 지연돼 왔다.

발전소 부지를 확보한다고 해서 문제가 끝나는 것이 아니다. 송전망이 확보되지 않는 한, 생산된 전기는 수요지로 전달될 수 없다. 이 경우 신규 원전은 전기를 생산해도 보내지 못하는 '유령 발전소'가 될 위험을 안게 된다. 그럼에도 송전망 건설의 현실적 제약과 사회적 갈등 비용은 원전 경제성 논의에서 부차적인 문제로 취급된다.

최근 신규 원전 건설의 근거로 자주 제시되는 것이 AI와 데이터센터 확산에 따른 전력 수요 폭증 전망이다. 원전 수십 기 분량의 전력이 필요하다는 보도가 반복되지만, 그 상당수는 검증되지 않은 업계 추정치를 정부가 그대로 인용한 자료에 기반한다. 전력 수요 전망의 불확실성과 가정에 대한 충분한 설명 없이, 과다 추정된 수요가 원전 건설의 불가피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다.

전력은 무한정 끌어다 쓸 수 있는 자원이 아니다. 수요 전망이 과장될수록 공급 확대 논리는 강화되지만, 그 부담은 결국 사회 전체가 떠안게 된다. 장밋빛 기술 낙관에 기댄 수요 전망을 정책 판단의 전제로 삼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2차 토론회에서는 재생에너지 확대에 따른 출력 제어 문제가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계통 모의 결과에 따르면, 2030년 경부하 시간대에는 태양광 출력 제어가 급증할 가능성이 제시됐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재생에너지의 간헐성이 아니라, 출력 조정이 어려운 원전이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는 구조적 조건이다.

원전 비중을 유지하거나 확대한 상태에서 재생에너지를 늘리면 출력 제어가 증가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이는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전원 구성 선택의 결과다. 그럼에도 정부는 원전의 '경직성 완화' 기술을 해법으로 제시한다. 아직 실증되지 않은 기술을 전제로 현재의 정책 결정을 정당화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접근이다. 기술이 실패하거나 지연될 경우의 대안, 기술 이전에 가능한 정책적 조정은 충분히 논의되지 않았다.

'깜깜이' 여론조사와 민주주의의 후퇴

 정부세종청사 6층에 위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모습.
정부세종청사 6층에 위치한 기후에너지환경부의 모습. ⓒ 환경부

가장 심각한 문제는 이번 주 시행되는 ARS 여론조사다. 기후부는 질문 문항조차 공개하지 않은 채 국민 3천 명의 응답으로 신규 원전 건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한다. "AI 시대를 위해 원전을 건설하는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과 "우리 지역에 원전을 건설하는 데 동의하는가"라는 질문은 전혀 다른 답변을 낳는다. 질문의 방식과 맥락에 따라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음에도, 조사 설계의 투명성은 확보되지 않았다. 이는 과거 신고리 5·6호기 공론화가 가졌던 최소한의 숙의 기간과 정보 제공 절차조차 무시한 졸속 행정이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비판이 제기되면 '공론화 결과'를 방패로 삼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책임 있는 정책 결정이라기보다 정치적 책임 회피에 가깝다.

에너지 정책은 여론조사의 문제가 아니다. 위험과 비용, 책임을 어떻게 사회적으로 배분할 것인가에 대한 정치적 결정이다. 공론화는 그 결정을 보완하는 수단이지, 대신하는 수단이 아니다. 현실의 에너지 정책은 유한한 자원, 제한된 공간, 갈등이 내재된 사회적 조건 위에서 이루어진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답정너'식 공론화를 중단하고, 전문가들 사이의 공개적이고 반복적인 검증을 통해 쟁점과 불확실성을 정직하게 드러내야 한다. 시민은 가치 판단의 영역에서 의견을 제시하고, 최종 결정과 책임은 정부가 져야 한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많은 숫자가 아니라,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와 책임 있는 정치다. 그렇지 않다면 '공론화'라는 말은 민주주의의 이름을 빌린 또 하나의 요식 행위로 남을 것이다.

#신규원전건설#노후원전수명연장#기후부#여론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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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경숙 (incorona) 내방

환경운동연합 에너지기후팀에서 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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