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에는 김해에 있는 대성동 고분군을 둘러보았다. 세계유산 가야고분군 가운데 하나인 김해 대성동 고분군은 가야 지배자들의 무덤이 모여 형성된 언덕이다. 고분은 단순한 매장 공간을 넘어 당시 통치자들의 권위를 드러내는 상징물이다. 대성동 고분군의 특이한 점은 고분군의 가장 높은 곳에 청동기 시대에 만들어진 고인돌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곳은 이미 청동기 시절부터 지배자들의 무덤으로 추앙받던 장소였던 것이다.

▲김해 대성동 고분군 ⓒ 여경수
마침 김해국립박물관에서는 <시간의 공존–김해 대성동 고분군>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특별전을 통해 대성동 고분군의 유물들을 보다 자세히 살펴볼 수 있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발굴 조사를 통해 다양한 유물들이 출토되었다.
철기 문화가 발달한 금관가야의 명성에 걸맞게 덩이쇠(대성동 108호 무덤)뿐만 아니라 화살통(대성동 14호 무덤), 방패(대성동 11호 무덤), 비늘갑옷(대성동 8호 무덤)과 같은 무기들도 껴묻거리로 함께 묻혀 있었다.

▲대성동 고분군에 있는 고인돌 ⓒ 여경수
가야는 청동기 문화에서 철기 문화로 전환되던 시기에 철을 통해 강력한 지배 체제를 완비할 수 있었다. 또한 김해에 거주하던 가야인들은 낙동강과 남해안 연안을 오가는 뱃길을 통해 당시 동아시아 해상 교역의 중개자로 성장했다. 이를 증명하는 대표적인 대성동 고분군의 유물로는 바람개비 모양 청동기(대성동 13호 무덤)와 원통 모양 청동기(대성동 1호 무덤)가 있다.
이들 유물은 당시 일본의 청동기 문물로 추정된다. 이 밖에도 서역 유목 문물로 보이는 청동 솥(대성동 29호 무덤), 페르시아 문물로 추정되는 허리띠 꾸미개(대성동 88호 무덤) 등이 출토되었다. 3세기경 고대 동아시아에서 가야는 해상 교역을 통해 단순한 물품 교역을 넘어 가야의 찬란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다.
대성동 고분군에서는 죽은 이들의 내세를 기원하기 위해 다양한 곡물과 과채류, 동물들이 함께 묻혔다. 이를 보여주는 유물로는 복숭아씨가 담긴 항아리(대성동 41호 무덤), 소뼈(대성동 24호 무덤), 꿩뼈가 담긴 항아리(대성동 39호 무덤) 등이 대표적이다.

▲대성동고분전시관에 전시된 대성동 고분군 모형 ⓒ 여경수
고분군 옆에는 대성동고분전시관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어 고분이 만들어지는 방법과 발굴 과정에 관한 정보도 함께 살펴볼 수 있다. 대성동 고분군을 산책한 뒤 김해읍성 북문을 지나 김해동상시장으로 향했다.
동상시장에는 다양한 아시아인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여러 나라의 음식을 파는 식당들뿐만 아니라 외국인이 운영하는 식자재 상점들도 손님들로 분주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비자 업무 등을 대행하는 행정사 사무소,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휴대전화 대리점도 자주 눈에 띄었다.
과거 가야가 자율과 공존을 바탕으로 문화의 융성을 꾀했다면, 오늘날 김해 역시 다양성과 포용성을 대표하는 도시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마친 산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