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한 존재가 가장 아름다울 수 있다. 연약한 아기가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뺏듯. 약한 존재는 보호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어떤 나라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때부터 소수자, 약한 자들의 권리를 끊임없이 교육한다. 그들도 똑같은 소중한 사람이고 생명이라는 사실을. 책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2025년 12월 출간)에서 3가지 약함이 나온다. 하나는 이민자로서의 약함, 하나는 아버지 없이 어머니의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했다는 약함, 마지막은 성소수자로서의 약함이다.
오션 브엉은 시인으로 먼저 데뷔한 작가다. 그의 첫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역시 오션 브엉의 첫 시집에 실려 있던 제목에서 가져왔다. 성소수자의 이야기도 소설 속에 있지만, 시작부터 끝까지 전개되는 아름다운 문장과 가족의 본질을 보여주는 연이은 사건들은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첫사랑과 가족, 주변부의 삶을 넘나들며 결말에 이르는 어머니를 향한 대장정의 편지글에 마침표를 찍고 새로운 내일로 이어가는 주인공의 미래를 응원하게 만드는 책. 소설 속 주인공은 독자의 심장에 노크하며 읽는 이의 삶 역시 의미가 있다고 따뜻한 말들을 건넨다.

▲소설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출간일 2025년 12월 30일, 6년전의 책이 재출간되었다. 그때보다 더 사회와 부합하며 공명한다. ⓒ 노태헌
오션 브엉의 소설은 질문을 던질 수 밖에 없는 시대를 살아가는 한 개인의 내면에서 출발한다. 아름답고도 칼날 같은 감성을 지닌 화자가 어머니를 향해 건네는 독백을 따라가다 보면, 지구에 살아가는 사람의 수 만큼의 각자의 우주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각자의 별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빛, 곧 사랑과 소중함이 여기저기에 깃들어 있음을 알게 된다.
영어를 읽지 못하는 이민 1세대 어머니에게, 이민 2세대 아들이 영어로 쓰는 편지로 책은 시작된다. 존 버거의 <A가 X에게>를 떠올리게 하는 섬세하고 절제된 문장들 속에서, 언어는 사랑의 도구이자 동시에 어머니에게는 넘을 수 없는 장벽이 된다. 말하기란 연결되기 위함이지만, 그 연결은 언제나 단절의 위험을 함께 품는다. 자식은 어머니에게 닿으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는 끝내 닿을 수 없다. 오션 브엉은 그 불가능성을 억지로 극복하려 들지 않는다. 설명 하려 하지 않고, 감정을 과도하게 밀어 넣지도 않는다. 대신 하나의 문장, 하나의 사건 속에 기억과 사랑, 상처와 두려움을 조심스럽게 놓아둔다.
삶에서 상처는 흔히 극복해야 할 대상으로 여겨지곤 한다. 그러나 이 소설에서 상처는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감각이 열리는 통로다. 전쟁과 이주, 제3세계에서 온 시민이라는 거대한 서사는 개인의 몸과 기억 속으로 스며들고, 화자는 사건을 언제나 그 사람, 어머니와 할머니 혹은 연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사랑 역시 회복이나 구원의 이름으로서만 호출되지 않는다. 여기서 사랑은 사람을 강하게 만드는 힘이 아니라, 약해질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다. 가치를 부여하는 일이 아니라, 가치 없음의 가능성을 받아들이는 일이다. 그래서 사랑은 흔들리고 위태롭다. 때로는 다정함조차 상처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주인공인 '나'는 연약하고 부드럽지만, 동시에 가족과 연인을 원망하고 미워한다. 베트남전과 이주, 가족의 선택이 남긴 잔여물로 구성된 존재로서 그는 언제나 완전히 이 세계에 속하지 못한다고 느낀다. 파멸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는 고백에 이르기까지, 시간과 사건 그리고 사랑과 아픔이 겹겹이 쌓인다. 주인공은 종국에서 영원하지 않고 완전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잠시나마 매혹적일 수 있다고 담담한 고백을 가한다.
동시에 여러 일을 해내는 능력이 유능함으로 간주되는 시대다. 소설을 읽고 나면 오히려 한 번에 하나의 감각에만 머무는 삶, 삶의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추는 선택이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멀티태스킹이 늘어날수록 삶의 색채는 옅어지고 기억의 윤곽은 흐려지기 마련이다. 건강이나 사랑하는 사람처럼 이미 곁에 와 있는 소중한 것들을, 정작 소중하게 대하지 못하고 있다는 자강도 뒤따른다.
책을 읽는 행위는 물질의 선택과 속도에서 한 발 물러나는 선택이 될 수 있다. 책 속의 문장은 시간을 붙잡고, 과거와 현재,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오가게 한다. 단 하나의 문장이 정신과 심장에 깊이 박혀, 평생 지워지지 않는 기억의 문신이 되기도 한다. 연인이나 아이와 같은 공간에 있으면서도 시선은 스마트폰 화면에 머물러 있는 장면이 낯설지 않은 시대다. 짧은 영상과 SNS는 이동시간과 잠에 빠지는 시간까지 우리를 그 속에 머무르게 만든다. 세계 최고의 두뇌들이 설계한 디지털 환경은 도파민을 더 자주, 더 강하게 자극한다.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집중과 온기, 한 사람에게 온전히 머무는 시간을 조금씩 잃어가고 있다.
모두가 소비와 속도를 향해 달려가는 세계에서, 문장 앞에 잠시 멈춰 서는 일. 칼날 같은 세상을 다시 바라보고, 우리가 항해해야 할 길을 멀리서 되돌아보는 일. 그 항로의 끝에서 자신에게 다다르는 경험. 그리고 함께하는 사람들을 조금 더 행복하게 하거나, 잠시 웃게 만드는 헌신과 용기.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브런ㅊ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