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인권 365-아동인권의 시선으로 바라보다'는 일상과 사회 속에서 발견한 아동인권의 문제를 기록하는 연재입니다.
나는 연예인 이름도 잘 모르고, 특별한 관심도 없다. 하지만 케이팝(K-POP)이 가진 세계적 영향력은 독일의 작은 도시에서도 체감할 수 있다. 이웃집 아이가 한국어를 배우러 찾아오고, 한국 아이돌 사진은 동네 슈퍼에서도 볼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연예 분야에서 일하다 독일로 유학을 온 A씨와 그 즈음에 터져 나온 아이돌 연예인 계약 분쟁 사건에 대해 의견을 나누고 난 뒤였을까. K-POP에 대한 뿌듯함과 함께 설명하기 어려운 의구심이 동시에 생겼다.
그리고 올 1월 1일, 문화체육관광부의 표준계약서 개정 공시를 보고 나도 모르게 멈칫했다. 이상했다. 정부는 연예인 아동 권익을 보호한다면서 왜 법이 아니라 표준계약서 개정을 선택했을까. 이 글은 이 질문에서 시작한다.
'아동이 무대에 서도 되는가'를 먼저 묻는 사회

▲우리나라 TV 프로그램에서 쉽게 보는 아이돌 공연을 독일 TV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콘서트 장에 가야 만날 수 있다. ⓒ PIxabay
1년 반 전, 한국의 한 톱가수가 독일에서 콘서트를 열었다. 그 가수는 아이들과 함께 무대에 설 기회를 마련했다. 그러나 몇 분도 되지 않는 공연이었음에도 미성년 아이들은 공연 전 여러 절차를 거쳐야 했다. 의사의 건강 확인과 학교 측 확인이 먼저였고, 아이들은 청소년청(Jugendamt) 관계자와 따로 면담을 했다.
이 장면은 독일에서는 특별하지 않지만, 우리에게는 낯설다. 몇몇 아이의 공연에 국가가 이렇게까지 개입하는 모습은 좀처럼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들은 왜 이렇게 하며, 무엇이 이런 차이를 만들까.
우리는 이들을 미성년 아이돌, 청소년 연습생, 연예인 지망생 등으로 부른다. 그러나 UN 아동권리협약, EU, ILO 등 국제적 기준에 따르면, 아동이 연예 활동에 참여할 경우 그것은 '놀이'가 아니라 아동 노동(child labour)의 특수한 형태로 본다.
그래서 국제 기준에서는 아동을 Child performers, Children working in the entertainment industry, Minor performers 등으로 표현한다. 거칠게 번역하자면 '연예산업 종사 아동(미성년자)'이다. 이 정의로 보면, 유럽에서 연예 활동에 참여하는 아동은 지망생 단계인지, 데뷔 이후인지를 따지지 않고 활동에 참여하는 순간부터 법적 지위를 가진 아동 노동자다.
유럽에서 아동 연예 활동은 자유 선택 사항이 아니다.
아동 노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되기에, 문화·예술·체육·광고 활동만이 엄격한 조건 아래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이때도 아동이 가진 재능이나 성공 가능성은 예외 사유가 되지 않는다.
공연에 참여할 수 있는 예외적 상황은 조건이 충족될 경우에만 허용된다. 연령, 노동 시간, 학업 영향, 건강 상태, 보호 조치를 모두 검토한다. 리허설과 대기 시간도 노동 시간이다. 공연 당일 무대에 오르지 않더라도, 그날 현장에 묶여 있는 시간 전체가 검토 대상이 된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출연은 가능하되 리허설 참여는 불가'라는 조건부 허가가 내려지기도 한다.
예외는 국가의 '사전 판단'으로만 가능하다
잉글랜드에서는 16세 미만 아동이 공연이나 촬영에 참여하려면 지방정부의 허가와 보호·감독 체계에 따라야 한다. 프랑스에서도 16세 미만 아동의 공연 분야 참여는 사전 행정 허가 대상이다. 허가 없이 이뤄진 활동은 위법이다.
독일은 청소년 노동 보호법에 따라 이 기준을 더욱 촘촘하게 적용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노동은 원칙적으로 금지된다. 공연·방송·촬영 같은 문화·예술 활동만이 예외로 허용된다. 이때 아동(16세 미만)과 청소년(16~17세)으로 연령을 세분화해, 연령별 노동 시간과 활동 범위를 달리 규정한다.
예외 활동이라도 사전에 특별 허가를 받아야 한다. 신청서에는 단순한 출연 일정이 아니라 리허설과 대기 시간을 포함한 총 부담 시간, 이동 시간, 공연 환경, 보호 조치 계획이 포함된다.
서류가 제출됐다고 해서 허가가 나는 것도 아니다. 아동에게 과도한 부담이 된다고 판단되면 허가는 거부되거나 조건부로 제한된다. 이미 허가가 난 경우에도 상황 변화가 확인되면 참여를 중단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공연의 규모나 흥행 가능성, 계약 조건은 이 판단에서 고려 대상이 아니다. 허가가 내려진 뒤에도 일정과 아동의 출연 분량은 행정 판단에 따라 조정된다. 이 결정에 산업은 개입할 수 없다. 그 판단 몫은 연예 산업이 아니라 행정이기 때문이다.
학교 확인도 형식적 절차가 아니다. 공연 다음 날, 아동이 정상적으로 등교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허가는 나오지 않는다.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하면 된다"는 설명은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아동에게 있어서 교육권은 조정 대상이 아니라 우선 기준이기 때문이다.
의료진 확인도 마찬가지다. 아동이 최근 충분히 잠을 잤는지, 이동 일정이 반복되지 않았는지, 이미 피로가 누적돼 있는지 등을 검토한다. 아이가 "괜찮다"고 말해도 판단은 전문가의 몫이다. 이 과정에서 청소년청 관계자가 아동을 직접 만난다. 부모가 동석하지 않은 채 질문이 이뤄진다.
학교생활은 어떤지, 최근 많이 피곤하지 않은지, 공연 참여가 부담으로 느껴지지는 않는지 등을 묻는다. 아이에게 관리 가능한 부담 수준인지를, 아이나 부모에게 맡기지 않고 시스템에서 점검하는 셈이다.
보호자는 권리 주체가 아니며, 국가는 뒷짐진 채 물러날 수 없다
아동권의 관점에서 보호자는 권리의 대리자이지 권리의 주체가 아니다. 보호자가 언제나 아동의 최선의 이익에 따라 판단한다고 전제할 수 없다. 특히 연예 산업에서는 보호자 역시 수익과 명예, 장기적 기대를 갖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아이의 이익을 차선으로 둘 수 있다.
앞선 사례처럼 아이들은 부모 권유 없이 자발적인 참여인지에 대답해야 했고, 모든 절차가 끝나기 전까지 공연 참여는 확정되지 않았다. 독일에서 면담 과정이 부모와 분리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유는 명확하다. 보호자의 의사와 아동의 상태를 분리해 확인하기 위해서다.
반면 한국에서는 보호자 동의만으로 계약 체결이 이뤄진다. 그 이후 개입할 수 있는 공적 주체는 거의 없다. 문제가 발생한 뒤에야 사후 조사나 분쟁 절차가 시작된다. 법이 아니라 계약으로 문제를 관리해 온 한국 사회의 방식이 아이돌 연예인이라는 이름으로 미성년자에게까지 확장된 셈이다.
이번 1월의 표준계약서 개정의 핵심은 '금지'다. 학습권 침해를 금지하고, 폭언·강요·성희롱·성폭력을 금지하며, 보건·안전상 위험이 있는 상황에서 촬영과 공연을 강요하지 못하도록 했다. 또한 기획사에 청소년 보호 책임자 지정 의무를 부과했다. 그러나 이는 모두 사후 분쟁을 전제로 한 계약 조항일 뿐, 아동이 무대에 서도 되는지에 대한 국가의 사전 판단이나 개입을 제도화한 것은 아니다.
더 근본적으로 권리는 금지 문구만으로 성립하지 않는다. 권리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침해에 해당하는지가 정의돼야 하고, 아동이 무엇을 요구할 수 있는지도 명시돼야 한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즉시 활동을 멈출 수 있는 중단 장치, 외부 개입과 구제 경로, 신고 이후 불이익을 막는 보호 장치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이 중 하나라도 빠지면 권리는 그럴듯한 문장에 머문다. 독일에서는 이미 허가가 난 공연이라도, 아동의 상태 변화가 확인되면 참여를 중단시킬 수 있다. 투어 중이라도 예외는 없다. 공연이 취소되거나 아동만 무대에서 빠지는 경우도 있다. 이 결정은 계약 해지와는 별개다. 손해배상의 문제가 아니라 아동 보호 판단이 우선한다.
한국 아이돌 연예인, 아동도 노동자도 아닌 존재
한국의 아이돌 연예인은 미성년자이지만, 아동이라 불리지 않는다. 장시간 훈련과 공연을 소화하지만, 법적 노동자로도 명확히 규정되지 않는다. 이 때문에 다른 아동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사건이 발생한 뒤에야 권리 침해가 드러난다.
한국에는 '아동·청소년 연예인 보호법'이라는 이름의 단일 법률이 없다. 대신 관련 규정은 '대중문화예술산업발전법'에 흩어져 있다. 이 법은 만 19세 미만의 청소년을 대중문화예술인에 포함하고, 학습권·휴식권·건강권 보호와 사업자의 보호 책임을 담고 있다.
2025년에 개정·시행된 지 불과 몇 달 뒤인 올해 1월 1일, 정부는 다시 표준계약서 2종 개정을 선택했다. 문제는 아동 권익 보호라는 국가가 져야 할 공적 책임을 다시 한 번 개인 간의 '계약 문제'로 다뤘다는 점이다.
어쩌면 더 근본적인 질문은 따로 있을지도 모른다. 다른 나라들은 '이 아동을 이 연예 활동에 투입해도 되는가'를 먼저 묻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무엇을 계약서에 쓸 것인가'를 묻는다. 이 차이를 가르는 근본적인 원인이다. 아동을 보호할 것인가를 묻지 않고, 계약을 어떻게 쓸 것인지만 묻고 있다는 사실 말이다.
이번 1월의 표준계약서 개정은 아동 보호를 향한 한 걸음일 수 있다. 그러나 보호를 계약 조항에만 남겨두는 한, 아동권은 제대로 굴러가지 않는다. 아동권과 관련된 어떤 결정은 애초에 계약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이 대목을 짚지 않는 한, 국가는 아동을 보호한다고 말하면서도 여전히 법이 아니라 계약서를 선택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앞으로도.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단법인 3P아동인권연구소 홈페이지와 개인 SNS에도 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