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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인공지능 도구를 활용해 제작한 이미지 ⓒ 오마이뉴스

인류가 원시 시대부터 생존할 수 있었던 비결은 '지구력'이라고 한다. 맹수가 쫓아와도 지칠 때까지 도망치고, 사냥감을 끝까지 추격하는 끈기.

이 '추격 DNA'가 여전히 우리 몸속에 흐르고 있는 걸까? 한동안 도심을 질주하던 '러닝크루'의 열풍이 지나간 자리에 이제는 서로를 쫓고 쫓는 '경찰과 도둑(경도)' 게임이 공원을 점령하기 시작했다. 적게는 10명, 많게는 30명씩 모여 술래잡기를 한다.

다 큰 어른들의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초등학생 때나 하던 놀이가 지역 커뮤니티 앱 '당근'을 통해 부활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들뜬다. 그러나 나는 직감적으로 알아차린다. 이번에도 난 그저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결코 저 무리에 섞이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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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닝크루나 '경도' 같은 역동적인 소모임을 주저하는 가장 큰 이유는 '타인에게 민폐를 끼칠까봐' 우려돼서다. 솔직히 말해 이들을 바라보는 시민들의 시선은 그리 곱지 않다. 공공장소에서 무리 지어 발생하는 무질서와 소음이 필연적으로 따랐기 때문이다.

보행로를 독점한 채 단체로 구령을 외치거나, 게임에 열중한 나머지 지나가는 행인을 참여자로 오인해 뿅망치를 들고 쫓아가는 사례도 있었다. 나 역시 여럿이 어울리는 데 흥미가 있었지만, 누군가에게 눈살 찌푸려지는 존재가 될까봐 결국 혼자만의 시간을 택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은 무조건 '개인의 의식 부족' 때문만 일까? 문득 생각해보면 그것만은 아닌 듯하다. 우리 도시 구조의 한계도 분명해 보인다. MZ 세대가 어릴 적 뛰어놀던 흙먼지 날리는 공터는 상가와 아스팔트 도로로 메워졌고, 학교 운동장은 코로나19 이후 보안과 위생을 이유로 굳게 닫혔다. 요즘 아이들은 나의 어릴 적과 다르게 놀이터 대신 학원이나 체육관으로 향한다. 급격히 발전한 한국 사회는 '남는 공간'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다. 과거의 공터들은 무엇이던 이름을 정한 구역으로 바뀌었고, 지금 와서는 누구나 자유롭게 놀만한 공간이 없다.

러닝크루와 경도 열풍이 식더라도, 또 다른 형태의 소모임은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1인 가구는 계속 늘어나고 있으며, 깊은 관계보다는 목적 중심의 '효율적 연대'를 선호하는 경향이 짙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무조건적인 금지보다는 현대 사회의 밀도에 걸맞은 새로운 놀이 규칙을 정할 때가 아닐까. 난 그 대안으로 세 가지를 생각해보았다.

뛰어 놀 공간을 허용하라

 당근 앱에 올라온 '경찰과 도둑' 참여자 모집 글
당근 앱에 올라온 '경찰과 도둑' 참여자 모집 글 ⓒ 오마이뉴스

첫째는 광장의 조성을 늘리는 것이다. 우리 어릴 적에는 넓은 공터나 공설 운동장이 흔했다. 하지만 오늘날 신도시의 공사 추세는 이보다는 호수 공원과 산책로에 치중돼 있는 듯하다. 빽빽하게 들어선 조형물과 산책로, 좁은 산책로는 사람들이 뛰어놀기에는 적합하지 않다. 되레 산책하는 이들과 뛰어노는 아이들이 뒤섞여 충돌할 위험이 크다. 야경이 아름다운 공원도 좋지만, 넓게 트여서 사람들에게 자유로운 활동을 제공하는 광장도 그 역할이 매우 크다.

둘째는 학교 운동장 개방을 위한 '유연한 관리 모델' 도입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주민들도 학교 운동장에서 산책하거나 뛰어노는 일이 흔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안전과 위생 문제로 대부분의 학교가 문을 굳게 닫았다. 이들이 외부인의 출입을 꺼리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가 된다. 인명사고나 시설이 부서졌을 때 책임이 모두 학교장에게 돌아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정말 방법은 아예 없을까.

2024년 8월, 서울시는 새로운 방안으로 '지역사회 공유학교 모델(Two-Block School)'을 발표했다. 쉽게 말하자면 학교 공간을 두 구역으로 나눠서, 한쪽은 학교장이 한쪽은 자치단체장이 운영하는 것이다. 학교장이 담당하는 교실과 관리실은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고 동선을 분리한다. 체육관, 주차장, 수영장 등은 자치단체장이 운영의 책임을 진다.

학교 또한 대규모 행사 및 체험 시 외부 근린 공원 운동장을 활용할 수 있다. 학생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고, 수업이 끝난 이후는 자치단체장의 책임 및 관리 하에 일부 시설을 주민들에게 개방하는 식이다. 밀도가 높은 도시는 점점 남는 공간이 없어진다. 역할을 나누고 공간을 유연하게 활용하면 새로운 질서가 생겨날지도 모른다.

셋째는, 참여자와 플랫폼의 '자율 규범' 강화다. 모임 주최자는 일반 행인과 게임 참여자를 구분할 수 있는 형광 완장이나 팔찌를 필수로 지참하고, 활동 구역을 명확히 제한해야 한다. 또한 '당근'과 같은 플랫폼은 모임 개설 시 보행자 안전, 소음 방지, 포교 금지 등의 가이드라인을 필수 고지하도록 시스템을 보완해야 한다. 플랫폼은 커뮤니티의 활성화로 이득을 얻는 만큼, 그 안에서 발생하는 갈등을 관리할 책임도 분명히 있다.

중학생 때 쯤일까. 누군가 전봇대에 고무줄을 걸어 놓은 것을 봤다. 함께 걷던 엄마가 반가워하며 고무줄에 발을 걸기 시작했다. "너도 고무줄 놀이 할 줄 아니?" 평소 점잖던 엄마가 아이처럼 까르르 발을 구른다. 5분도 안 되어 "에구, 이제 몸이 예전같지가 않아"라며 숨을 고르며 웃던 엄마. 이제는 '경도'를 시작하자마자 5분 만에 항복 선언을 하는 우리 모습에서 그때의 엄마가 보인다.

내가 바라는 점은 딱 하나다. 이 추억의 놀이 '경도'가 안전하면서도 공동체에 해가 되지 않는 하나의 새로운 놀이 문화로 자리 잡아줬으면 좋겠다. 그때가 되면 어릴 적처럼 '경도' 할 생각에 들뜬 채 회사 업무를 하는 내 모습을 보게 될지도 모르겠다.

#경찰과도둑#러닝크루#러닝#경도#당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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