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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새해 인사를 대부분 메시지로 나눈다. 알림은 빠르고, 답장은 짧다. 읽지 않아도 미안하지 않고, 늦게 답해도 큰일이 되지 않는다. 새해가 시작됐다는 사실은 이제 달력보다 스마트폰이 먼저 알려준다.
나는 디지털에 익숙한 사람이다. 글은 키보드로 쓰고, 사진은 파일로 정리하여 클라우드에 저장한다. 기록은 온라인에 남기고, 기억은 필요할 때 다시 꺼내본다. 그렇게 사는 것이 자연스럽고 효율적이라고 믿어왔다. 휴대폰 속 캘린더 앱에 하루를 맡기고, 알림에 따라 움직이는 삶이 익숙해졌다.
시간을 타고 도착한 연하장

▲요즘 나에게 도착하는 유일한 손 편지.아날로그 봉투 안에 한 사람의 일 년이 조용히 담겨 있다. ⓒ 이현숙
그래서일까. 요즘은 손 편지 형식의 연하장을 보내는 지인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진다. 해마다, 오직 그 사람에게서만 연하장이 도착한다. 그 연하장은 늘 조금 늦게 온다. 새해 첫날도 아니고, 연휴가 끝나자마자도 아니다. 일상이 다시 굴러가기 시작한 어느 평일 오후, 우편함을 열다 보면 그 봉투가 있다.
다른 우편물과는 분명히 다르다. 손으로 쓴 주소, 우표, 봉투의 질감. 이 편지는 와이파이를 타지 않고, 배터리도 쓰지 않는다. 대신 시간을 써서 온다. 나는 이 봉투를 바로 뜯지 않는다. 집으로 들고 와 테이블 위에 올려둔다. 커피를 한 잔 따르고, 잠깐 숨을 고른 뒤에야 연다. 이 연하장은 숭고한 예식이 시작 된 듯 마음을 가다듬게 만든다. 급하게 열 수가 없다.
엽서에는 꾹꾹 눌러 쓴 글씨가 있다. 반듯하지도, 꾸며져 있지도 않다. 다만 분명한 것은, 키보드 타자가 아닌 손끝을 거쳐 나온 글씨다. 마치 감정의 향기가 글씨 사이에 배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편지에는 지난 한 해의 안부가 적혀 있다. 특별한 사건을 나열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문장들이 가볍지 않다. 이 글씨들은 시간을 건너왔기 때문일까.
봉투 안에는 늘 작지만 깊은 것들이 함께 들어 있다. 여행지에서 발견한 달콤한 캔디, 시간을 내어 만든 소품, 직접 찍은 사진으로 인쇄한 엽서, 그리고 편지 한쪽에 새겨진 QR 코드. QR 코드를 찍으면 영상과 사진이 나온다. 지난 한 해 동안의 장면들이다. 여행지, 일상의 순간들, 그때의 온기를 그대로 품은 표정들을 확인할 수 있다. 디지털 화면 속 이야기다.
아날로그 봉투 안에 디지털 기록이 들어 있다. 느린 손 글씨와 빠른 영상이 같은 이야기를 다른 속도로 전한다. 이 연하장은 해마다 같은 형식으로 오지만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다. 매년 단 하나 뿐이라는 설렘 덕분일 것이다.
나에게 도착한 아날로그 노트

▲디지털로 기사를 쓰는 나에게 도착한 아날로그.휴대폰 알림 대신 종이의 질감으로 하루를 시작, 마무리하게 만드는 아날로그의 힘. ⓒ 이현숙
지인의 연하장과 함께 우체통에는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에서 보낸 다이어리 노트가 도착했다. 휴대폰 속 캘린더 앱의 노예처럼 살고 있던 나에게, 손으로 적고 페이지를 넘겨야 하는 다이어리는 늘 짐처럼 느껴졌다.
기사는 온라인에 실리고, 독자들은 화면으로 읽는다. 글은 빠르게 공유되고, 반응은 즉각적으로 돌아오는 지금. 펜으로 꾹꾹 눌러 쓰는 다이어리에 글을 쓴다고...? 그런데 연하장과 노트를 나란히 두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다. 글씨에 감정을 담아 건네는 연하장과, 내가 나에게 전하는 말을 손끝으로 적어 내려가는 다이어리 노트. 두 개의 아날로그가 조용히 같은 자리에 놓였다.
미니멀 라이프로 공간은 분명 넓어졌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은 종종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여유가 생겼는데도, 공허함은 남아 있었다. 연하장과 노트를 받아보고 나서야 알게 됐다. 비워진 공간이 아니라, 뻥 뚫린 마음을 채우고 있었던 건 아날로그의 감각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손으로 만지고, 넘기고, 쓰는 행위가 마음을 천천히 채우고 있었다.
올해도 나는 키보드로 글을 쓸 것이다. 동시에 이 노트에는 손으로 나에게 말을 걸 것이다. 우편함에 연하장이 도착하는 날에는 하루를 조금 천천히 시작할 것이다. 디지털에 파묻혀 살면서도, 가끔은 이렇게 아날로그를 꺼내본다. 효율은 줄어들지 모르지만, 마음의 온도는 분명 올라간다. 그 아날로그의 감동이 내 일상 한가운데로 조용히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