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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시위 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대가 거리에서 불을 피운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확산했다
이란 시위지난 9일(현지시간)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 시위대가 거리에서 불을 피운 장면이 소셜미디어에 확산했다 ⓒ AP 연합뉴스

이란 전역에서 이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가 열닷새째로 접어든 11일(현지시간), 노르웨이에 기반을 둔 인권단체 이란인권(IHR)은 이번 시위로 인한 사망자가 최소 192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IHR이 지난 9일 발표한 사망자 51명에서 불과 이틀 만에 약 4배 가까이 증가한 수치다.

IHR은 이란 당국이 전국적으로 60시간 이상 인터넷과 통신을 차단해 정확한 피해 상황을 파악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확인되지 않은 일부 보고에 따르면 사망자가 2천 명 이상일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고 전했다.

IHR에 따르면 사망자는 지난 9일과 10일 이틀 동안 집중적으로 발생했다. 테헤란의 한 영안실에서는 시위에 참여했던 희생자들의 시신 수백 구가 발견됐다는 전언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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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은 테헤란의 한 의사를 인용해 수도 내 6개 병원에서 최소 217명의 사망자가 확인됐으며, 이들 대부분이 실탄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미국에 본부를 둔 인권단체 인권운동가통신(HRANA)도 시민과 보안요원을 포함해 100명 이상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했다. 인권단체별 통계가 엇갈리는 것은 통신 차단과 정부의 정보 통제로 피해 규모를 정확히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으로 보인다.

<로이터> 통신은 권위 있는 인권단체들의 집계를 인용해 시위 사망자와 구금자 수가 계속 증가하고 있으며, 정부 발표와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IHR 이사인 마무드 아미리모가담은 "지난 3일간, 특히 전국적으로 인터넷이 차단된 이후 시위대에 대한 폭력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광범위할 수 있다"며 "국제사회는 이를 막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란 검찰이 시위 참가자들을 이슬람을 부정하는 죄를 뜻하는 '모하레베(알라의 적)'로 규정한 것에 대해 "사형을 경고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우려했다.

한편 이란 군과 혁명수비대(IRGC)는 강경 대응 방침을 분명히 했다. 혁명수비대는 치안 유지가 "절대 넘을 수 없는 레드라인"이라며 현 상황을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고, 이란군도 공공재산과 전략 인프라 보호를 강조하는 성명을 냈다.

영국 <가디언>은 영상과 목격담을 토대로 보안군과 경찰의 강경 진압이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시위대는 "자유", "하메네이에게 죽음을" 등의 구호를 외치며 거리로 나서고 있으며, 시위는 이란 전역 30여 개 주로 확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시위는 물가 급등에 항의하며 시작됐지만, 점차 성직자 통치 종식과 최고지도자 알리 하메네이 퇴진을 요구하는 정치적 시위로 성격이 바뀌었다. AP와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테헤란을 비롯한 주요 도시의 상점과 전통시장 바자르가 문을 닫으며 집단 항의에 동참했고, 일부 지역에서는 도시 기능이 사실상 마비됐다.

중앙은행의 우대 환율 제도 폐지 이후 생필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고물가와 통화 가치 폭락에 대한 불만이 폭발했고, 시위는 현재 100개가 넘는 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볼커 튀르크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이란 전역에서 발생한 사망과 폭력에 깊은 우려를 표한다"며 평화적 시위의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AP 통신은 정부의 전국적 인터넷 차단이 진상 은폐 논란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혈 진압 속에서 레자 팔라비가 상징으로 떠오른 이유

이처럼 정권의 강경 진압이 이어지는 가운데, 이란 거리에서는 뜻밖의 이름이 다시 울려 퍼지고 있다. 바로 이란 마지막 샤의 아들, 레자 팔라비다.

1979년 이란 혁명이 아버지의 40년 통치를 무너뜨렸을 당시, 레자 팔라비는 겨우 16세였다. 샤 모하마드 레자 팔라비의 장남인 그는 석유 부국이자 천 년 역사를 지닌 이란 제국의 공식 후계자였다.

그로부터 거의 반세기. 이제 65세가 된 레자 팔라비가 다시 이란 정치의 중심으로 불려 나오고 있다.

"이것이 마지막 전투다. 팔라비는 돌아올 것이다."

망명 중인 전 왕세자가 시위를 촉구하자, 일부 시위대는 "자비드 샤(왕이여 영원하라)", "레자 샤여, 당신의 영혼에 신의 축복을"을 외치며 호응했다. 미국에 거주 중인 팔라비는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사실상의 지도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란에서 왕정 지지는 여전히 금기이자 범죄다. 1979년 혁명은 바로 샤의 독재를 무너뜨린 대중 봉기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다시 왕의 이름이 거리에 등장했다는 사실은, 현 체제에 대한 불만이 그만큼 극단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분석가들은 이를 왕정 복원에 대한 열망이라기보다 억압적인 신정 체제에 대한 피로감으로 해석한다. 이란 정치 전문가 아라시 아지지는 "레자 팔라비는 분명 이란 야권의 선두 주자로 떠올랐지만, 통합보다는 분열을 낳는 인물"이라고 평가했다.

이슬람 공화국은 수십 년간 반대 세력을 철저히 탄압해 왔다. 전직 대통령들조차 투옥됐고,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는 선출 권력 위에 군림하며 체제 유지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왔다. 그 결과 국내 정치 세력은 무력화됐고, 해외 디아스포라 중심의 반체제 인사들이 상대적으로 주목받게 됐다.

팔라비 역시 2020년 이란이 테헤란에서 출발한 우크라이나행 민항기를 오폭한 사건 이후 국제적 인지도를 얻었다. 한때 해외 야권은 협의체를 구성했지만 내부 갈등으로 오래가지 못했고, 팔라비는 가장 상징적인 인물로 남았다.

그를 공개 지지한 이스라엘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의 존재는 오히려 이란 사회의 반감을 키웠고, 최근 일부 시위대가 미국의 강경 개입에 기대를 거는 모습 역시 논란을 낳고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이 팔라비를 전면적으로 지지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그는 학구적이고 신중한 인물이지만, 미국 정치가 선호하는 강한 카리스마형 지도자와는 거리가 있다는 평가다.

팔라비 본인 역시 권력 장악에 대해선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정권이 무너질 경우 과도 지도자 역할을 맡을 수 있다고 말하지만, 구체적인 정치 구상이나 권력 이행 방식은 제시하지 않고 있다.

존스홉킨스대의 이란 전문가 발리 나스르는 "과도 정부에 누가 참여하는지, 누가 선거에 나서는지 아무것도 명확하지 않다"며 "군중의 열기와 실제 권력 이행은 전혀 다른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럼에도 레자 팔라비 현상은 하나의 사실을 분명히 보여준다. 이란 이슬람 공화국이 더 이상 미래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과거의 왕을 다시 부르는 이유는, 그가 해답이어서가 아니라 현재의 체제가 더 이상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한국 사회가 강력한 지도자를 향한 향수와 민주주의의 불완전함 사이에서 반복해 온 논쟁과도 닮아 있다. 절망이 깊어질수록, 사람들은 미래보다 과거에서 답을 찾으려 한다.

레자 팔라비는 최근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젊은 이란인들이 나를 '아버지'라고 부른다. 그것이 내가 얻은 가장 큰 보상이다."

이 말은 그가 다시 왕이 될 수 있을지를 보여주기보다는, 오늘날 이란 사회가 얼마나 방향을 잃었는지를 보여주는 징후일지도 모른다.

#이란시위#반정부시위#인권탄압#인터넷차단#중동정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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