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출근을 서두르는 엄마가 있다.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손놀림이 분주하다. 밥상을 차려놓고 정작 본인은 한 술도 뜨지 않는다. "000아! 밥 차려놨으니까 꼭 먹어. 엄마 다녀올게." 아들은 묵묵부답이다. 3년째 매일 반복되는 일상. 20대 아들은 3년 전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근 이후 한 번도 얼굴을 보여주지 않는다. 유튜브 영상으로 본 은둔 청년 관련 다큐멘터리의 일부이다. 굳게 잠긴 아들의 방문 앞에서 엄마는 애끓는 속울음을 삼킨다.
보건복지부의 '고립 은둔 청년 실태조사'(2023년)에 따르면 한국의 고립 은둔 청년은 약 54만 명으로 전체 청년 인구의 5.2%이다. 이는 2022년(2.4%)에 비해 2배 이상 급증한 수치이다. 청년 20명 중의 1명이 사회와 단절된 상태로 파악된다. 이들 중 75.4%가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했는데 이는 일반 청년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은 수치이다. 상황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청년은 왜 사회로부터 달아나 스스로를 방안에 가두었을까. 청년을 끝없는 무력감의 수렁에 빠지게 한 건 무엇일까. 경제력이 곧 신분이 되는 무한경쟁의 시대에 외모, 학벌, 돈으로 가치를 평가받아야 하는 처지에 놓인 사람들은 사회로부터 상처받고 배제되고 고립된다. 냉혹하고 극단적인 이기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존감은 자신을 방어하는 심리적 무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동시에 세상으로부터 고립을 유발하는 원인이자 고립을 지속시키는 결과로도 작용한다.
인간의 거의 모든 심리적 문제와 연관이 있는 자존감은 '삶의 질'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왜곡되고 비틀어진 자존감이 얼마나 큰 사회병리학적 문제를 낳을 수 있는지 분석하고, 진짜 자존감 확립을 위한 해법에 관해 역설한 책이 있다. 사회심리학자 김태형의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2018)이다.
병든 사회와 가짜 자존감
인간 심리의 본질을 탐구하는 학문 분야인 '심리학'은 논쟁적인 학문이다. 인간의 심리를 다루는 만큼, 사람에 대한 견해가 심리학 이론의 내용과 과학성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책의 저자인 김태형은 인간을 '사회적 존재'가 아닌 '생물학적 존재'에만 초점을 맞추어 심리를 분석하려는 주류 심리학에 대해 비판적인 학자이다. 인간 심리는 사회계급적 처지와 시대적 특성을 반영하고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사회적 존재인 인간의 심리를 사회와 분리해 놓고 분석하려는 시도는 본질을 왜곡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과학적이다.
김태형은 2025년에 펴낸 <김태형의 교양 심리학>에서 미국 주류 심리학계의 영향을 받은 한국 심리학계의 학문적 태도에 대해 "불량품을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무작정 수입 판매하는 수입상 혹은 중계상에 머무르고 있다"고 강하게 질타하기도 했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는 사회역사적 관점에서 자존감에 대한 왜곡된 인식과 진짜 자존감 결핍이 만들어 낸 사회병리학적 현상을 들여다본다. 청년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그가 보기에 병든 것은 청년이 아니라 이 사회이다.

▲<가짜 자존감 권하는 사회> 표지우리 모두의 진짜 자존감을 찾는 심리학 공부 ⓒ 갈매나무
"병든 사회는 가정, 학교, 직장 등에서의 대인 관계를 비틀어 구성원의 자존감을 어려서부터 심각하게 손상시킨다. 자존감이 손상된 사람이 늘어날수록 사람들 사이의 상호 존중은 더 어려워지고 병든 사회를 개혁하기 위한 사회적 노력 역시 감퇴한다. 그 결과 사회는 한층 더 병들고 그에 따른 자존감 손상은 더더욱 심각해진다. 청년들, 나아가 한국인들은 이러한 악순환 속에 꼼짝없이 갇혀 신음하고 있다."(42쪽)
저자는 모든 문제를 개인적인 것으로 치부하고 '내가 자존감이 낮아서 그래'라는 식의 자책으로 빠져들면 계속 상처 입고 고립될 뿐이라고 지적한다. 한국 사회에서 '자존감 대유행'의 원인이 무엇이든지 간에, 자존감에 마지막 희망을 거는 행위가 절망으로 귀결되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자존감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필요하다"(13쪽)고 충고한다.
'가짜 자존감'이 혐오를 키운다
자존감은 주관적인 영역이 아니다. 거울을 보고 '나는 잘났어, 나는 뛰어나'라고 주문을 외운다고 자신의 가치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자존감은 객관적인 근거와 경험에서 비롯된 '자기 개념'과 객관적인 기준에 따른 '자기 평가'에 의해 결정된다. 무분별하고 부적절한 주관적 칭찬은 비난만큼이나 자존감에 해롭다. 저자는 "가짜 자존감이란 실제로는 자신의 사회적 가치가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높게 평가하는 것에서 비롯되는 일시적이고 불안정한 쾌감"(102쪽)이라고 설명한다.
가짜 자존감은 실체가 없는 자기 존중의 환영 같은 것이다. 인기, 재산, 성적 편력처럼 부적절하고 효과없는 수단으로 자존감을 추구하면 과시와 우월, 혐오로 빠질 수 있다. 낮은 자존감을 보완하고 자신의 높은 가치를 확인하려는 욕구는 힘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나며, 그것이 약자를 향할 경우 힘을 과시하는 경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 저자는 사회적 문제로 대두된 약자 혐오와 공격 현상이 자존감 손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본다. 자기 자신에 대한 무력감은 타인에 대한 혐오와 동전의 양면이다.
진짜 자존감이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평가에 기초하여 스스로를 존중하는 마음'이라고 한다. 여기서 핵심은 '무엇을 기준으로 가치 평가를 할 것인가'이다. 사람의 쓸모와 가치는 공동체와 사회를 기준으로 따질 수 있다. 사회적 평가만큼 자존감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없다. 저자가 보기에 많은 한국인들이 자존감 문제를 겪는 이유는 "오늘날의 한국사회가 사람의 가치를 사회적 쓸모가 아닌 비정상적인 혹은 잘못된 기준으로 평가하고 있기 때문"(25쪽)이다.
당신은 어디에 속해 있나요?
가짜 자존감 문제를 파고들수록 진짜 자존감이 제 모습을 드러낸다. 손상된 자존감을 회복하는 것 못지 않게 처음부터 자존감을 잘 확립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자존감 확립해가기 위해서는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에 대한 해답을 찾으려는 목적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건강한 세계관, 인생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사회 이데올로기에 대해서도 사색하고 탐구해야 한다. 사회를 알아야 올바른 가치 기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세울 수 있다.
다시, 청년 이야기로 돌아와서, 저자는 "네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살아라"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것은 무책임하다. 대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부터 치열하게 탐구하라. 그 다음에 네가 원하는 일을 하라"(210쪽)고 충고한다.
이 책의 결론은 이렇다. 사회와의 관계 속에서 자신이 사회적 가치가 있는 존재임을 확신할 수 있어야 한다. 자존감을 키우려면 반드시 타인이 필요하다. 공동체는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내 모습을 깨지거나 일그러진 거울에 비추어서는 안된다. 저자는 "불량거울은 자존감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일갈한다. 자존감 확립을 위해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나를 인간적으로 존중해주며 건강한 신념과 가치관을 공유하고 나를 객관적으로 평가해 줄 수 있는 동료와 조직"(221쪽)이라고 강조하는 것이다.
"자존감을 논하면서 연대의 중요성을 말하면 일부 심리학자들은 거부감을 드러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를 있는 그대로 수용해주고 존중해주는 소속 집단의 존재는 잘못된 사회가 강요하는 스트레스를 치유하고 올바른 신념과 가치관을 유지하도록 돕는다. 선한 이웃과의 연대와 건강한 소속집단은 자존감의 수호자이자 중요한 원천이다."(182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