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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1.12 08:59최종 업데이트 26.01.12 08:59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한 성소피아 성당

튀르키예 이스탄불 다녀와서

1월 8일 아침, 성소피아 성당으로 출발하려는데 갑작스레 비바람이 몰아친다. 몸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다. 우산도 속수무책이다. 가이드 따라 장미 오일 파는 어느 가게에서 잠시 비를 피한다. 그 틈에 비옷 파는 사람이 어떻게 알았는지 뒤따른다. 한때 실크로드를 주름잡았던 그랜드 바자르(지붕이 있는 시장) 출신 후예답다. 일행 모두 비옷을 사 입고 비바람을 맞으며, 히포드롬 광장(술탄 아흐메트 광장)을 거쳐 성소피아 성당으로 갔다.

광장엔 로마 테오도시우스 1세 대제가 이집트에서 가져왔다는 오벨리스크가 눈에 띈다. 이 오벨리스크는 기원전 16세기경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만든 것으로 '세계의 중심'을 상징한 것이란다. 각 면에 상형문자가 새겨진 이 오벨리스크가 오랜 세월 동안 고향 이집트를 떠나, 히포드롬 광장에 세워져 있다고 생각하니 애처롭기까지 하다.

오벨리스크 옆엔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연합군이 페르시아 패잔병들의 방패를 녹여 만들었다는 세 마리 뱀으로 엉켜있는 기둥 조형물이 심하게 훼손된 채, 말뚝처럼 서 있다. 이 조형물 역시 세계의 중심이 콘스탄티노플임을 알리기 위해 델포이 신전에서 옮겨진 것이란다. 밑을 받치는 부분은 4차 십자군 원정 시 사라졌고, 머리 부분은 오스만제국의 우상 숭배 금지로 잘려 나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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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소피아 성당으로 가는 광장 길목마다 군밤과 옥수수를 굽는 장사들이 비바람을 피해 호객한다. 눈길 한번 주는 사람이 없다. 그들은 장사를 망친 비바람을 원망했을까. 아니면 "인샬라"(Inshallah, 신의 뜻대로)라고 했을까. 날씨가 궂어서인지 성당으로 가는 사람도 많지 않다. 평상시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란다. 일행은 기다림 없이 성당으로 들어선다. 소지품 엑스레이 검사는 필수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그리스어로 '거룩한 지혜'를 뜻하는 성당으로 '하기야 소피아성당'이라고도 부른다. 이 성당은 537년 고대 로마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15층 높이 거대 돔으로 건설한 그리스정교 총본산이다. 이 대제는 하기야 소피아(Hagia Sophia) 성당을 완성한 후 "솔로몬 왕이여! 내가 그대를 이겼노라"라고 외쳤다고 한다. 그는 솔로몬 왕이 예루살렘에 지은 황금 성전을 의식한 듯하다.

성 소피아성당은 아야 소피아 성당 혹은 아야 소피아 모스크라고도 부른다. 현재 본 성당은 성소피아 성당으로 알려있지만 2층만 개방되고, 1층은 이슬람 사원으로 사용되기 때문에 아야 소피아 모스크라고 불려도 무방할 것 같다. 흥미롭게도 성 소피아성당은 1453년 이후 오스만제국 시대 이래 모스크(사원)로 사용되어 기독교와 이슬람 문화가 공존하는 공간이다. 마치 이스탄불이 아시아와 유럽이 공존하듯 말이다.

무엇보다 메흐메트 2세가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정복한 후, 기독교 문화인 성 소피아 성당을 파괴하지 않고 모스크로 사용한 것이 신의 한 수 같다. 그의 위대한 결단 덕분에, 우리는 지금 성 소피아 성당을 보고 있지 않은가. 2층으로 올라가는 통로가 1500년 전, 벽돌로 쌓아 만든 통로라고 믿기지 않는다. 말 앞세우고 전차도 끄떡없이 올라갈 정도이다.

성 소피아 모스크가 동로마 제국 하기야 소피아성당으로 사용될 무렵, 벽면에 붙은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마리아와 유스티아누스 대제의 황금 모자이크는 작은 황금 타일로 만든 비잔틴 미술의 정수를 보여준다.

콘스탄티노플이 오스만제국에 함락되면서 이 황금 모자이크는 회색 칠로 가려지게 된다. 이슬람 문화에서 사람의 그림은 우상 숭배로 보기 때문이다. 성당 벽면에 간간이 튤립과 꽃문양만이 보일 뿐이다. 여기에 첨탑과 미흐라브(Mihrab, 메카의 방향으로 움푹 팬 곳)가 더해져 이슬람 사원으로 탈바꿈된다.

호주머니 속 송곳이 언젠가 삐져나오듯, 역사적 진실은 밝혀질 수밖에 없단 말인가. 1931년 미국 고고학 발굴 조사단에 의해 덧칠된 벽면에 황금 모자이크가 발굴되어, 성 소피아 사원은 비잔틴 시대 그리스정교 대성당이었던 것으로 알려진다. 아쉽게도 겉보기와 다르게 성 소피아 성당은 1층 복판에 철제 빔들이 흉물처럼 천장을 떠받치고 있다. 1500년의 이 풍진 세월을 견디기 힘들었을까.

일행 사이로 비둘기 두 마리가 천장 쪽으로 날아다닌다. 어떻게 들어왔을까. 다소 어수선한 듯 보였지만, 사람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 살아 있는 생물들과 공존하려는 튀르키예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이스탄불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무수한 고양이와 개를 보지 않았던가. 그들에게 밥을 주는 것도 헌금이요, 생명체와 함께 공존하는 것이 이슬람 문화라고 한다.

 성소피아 성당 출구 윗벽면 모자이크.
성소피아 성당 출구 윗벽면 모자이크. ⓒ 김병모

성 소피아 성당 2층을 관람하고 1층 출구로 내려오다가 잠시 멈춰 뒤돌아보라 한다. 벽면에 잘 보존된 모자이크 작품이 보인다. 출구만 보고 급하게 나오다 보면 지나칠 수도 있단다.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마리아 좌우로, 성소피아 성당을 봉헌하려는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와 콘스탄티노플(이스탄불) 도시를 봉헌하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습이 이색적이다. 당시 동로마 제국의 기독교 문화의 현실을 보여준 듯하다.

성 소피아 성당 출구를 통해 나오자 몰아쳤던 비바람은 잦아들고, 관광객들이 삼삼오오 몰려든다. 오후 인천행 비행이 연착이나 되지 않을까 걱정을 숨긴 채, 일행은 서둘러 점심 식당으로 향했다.

#성소피아성당#이스탄불#튀르키예#콘스탄티노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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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모 (mo6503) 내방

본인은 오마이뉴스, 대전일보 등 언론사나 계간 문학지에 여론 광장, 특별 기고, 기고로 교육과 역사 문화, 여행 글을 쓰고 있습니다. 인간관계에서는 따뜻한 시선과 심오한 사고와 과감한 실천이 저의 사회생활 신조입니다. 더불어 전환의 시대에 도전을 마다하지 않고 즐기면서 생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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