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마트폰의 보안을 믿었는데... ⓒ jonasleupe on Unsplash
보안을 믿고 수십 년간 애플 아이폰을 사용해 왔다. 여기에 2TB 용량의 아이클라우드까지 유료로 구독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드로이드폰보다 불편한 점도 적지 않지만, 내 정보와 추억을 지켜주는 '성벽'에 비용을 지불한다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지난 새벽, 그 견고하다고 믿었던 성벽이 무너졌다. 내 스마트폰이 해킹을 당한 것이다. 누군가 내가 자고 있던 사이 내 애플 계정으로 접속해 모바일 게임 관련 결제를 하려고 시도하다 막혔다(관련 기사 :
이른 새벽 울린 결제 문자, 이중 인증도 해놨는데 이런 일이).
혹시 모를 추가 피해를 막고, 아직 결제 대기 상태(통신사 소액결제 한도를 낮게 설정해 실제 결제는 이뤄지지 않았고, 대기 상태로 멈춰져 있었다)로 남아 있던 앱스토어 결제창을 정리하기 위해 가장 먼저 통신사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최근 논란이 된 타 통신사의 개인정보 유출 사례와 유사한 상황은 아닌지 물었다.
그러나 상담사의 답변은 단호했다.
"저희 통신사는 개인정보 유출이 없었습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가 제시한 대책은 '소액결제 차단'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 안방까지 털린 사람에게 대문 걸쇠 하나 더 채우면 되지 않겠느냐는 말처럼 들렸다. 불친절한 응대는 아니었다. 오히려 과도할 만큼 친절했다. 하지만 내 불안함을 잠재우고, 추가 피해를 막기 위한 선명한 해법처럼 여겨지진 않았다.
결국 애플 앱스토어 고객센터로 전화를 돌렸다. 통화 시간은 약 25분. 그중 절반 이상은 음악을 들으며 대기해야 했다. 일반 상담사가 선임 상담사에게 내용을 전달하는 동안 이어진 긴 침묵 속에서, 불안과 답답함만 커져 갔다.
연결된 상담사는 모바일 게임 결제 대기 상태는 우려하지 않아도 되며, 취소 처리가 될테니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한, 계정에 관련 기록이 이미 남아 있으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내 사생활과 데이터가 이미 유출됐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시스템에 '기록'이 남아 있다는 말이 어떻게 위로가 될 수 있을까. 그 말을 듣는 순간, 허탈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이 브랜드의 충성 고객으로, 두 달 전 최신 기종으로 스마트폰을 교체했고 클라우드 서비스도 꾸준히 이용하고 있다. "앞으로도 계속 사용해야 하는데,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이나 업데이트 계획은 없느냐"고 물었다. '현재로서는 계획이 없으며, 사례를 본사에 전달하면 추후 업데이트에 반영될 수는 있다'는 원론적인 대답이 들어왔다.
국가 시스템이라면 무언가 다를 것이라 기대했다. 일단 사이버수사대 사이트를 살펴보다가, 관련 유관기관으로 소개된 한국모바일결제산업협회 휴대폰결제 중재센터에 문의를 하게 됐다. 돌아온 답변은 더 냉정했다.
"미수에 그친 사건이기 때문에 실제 금전 피해가 발생해야 수사가 가능합니다."
직업 특성상 스마트폰에는 인터뷰 자료, 고객 연락처, 사진과 영상, 개인적인 기록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그런데, 이중 인증까지 해 놓은 스마트폰 계정에 내가 모르는 사람이 접속한 일이 벌어졌다. 중요한 자료들이 외부인에게 노출되거나, 유출됐을지도 모른다는 불안은 '물적 피해'라는 행정적 기준 앞에서 아무 의미가 없었다.
결론적으로 해킹 피해 이후, 내가 실질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런 일이 나에게만 일어난 게 아니라는 점이다. 실제 언론에 유사 사례가 이미 보도된 바 있다. SBS는 지난 2025년 9월, 5년 넘게 사용되지 않던 한 애플 계정을 누군가 복구한 후 게임머니 99만여 원을 결제한 사례를 취재했다(SBS, 2025년 9월 11일 보도, <[단독] 광명·금천 오고간 KT 가입자, '애플 계정' 털렸다> 참고).
SBS에 따르면, 피해자 측은 사건 직후 통신사에 피해 사실을 알렸지만 '애플에 문의하라'는 답변만 들었다고 전했다. 또, 애플 측은 두 차례의 환불 요청을 거절하면서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피해 사례 보도 이후 애플 측은 무단 결제된 내역을 취소해 주긴 했으나, 역시나 대응에 문제가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고객의 일상을 지켜주지 못하는 보안 체계, 피해를 '데이터'로만 다루는 서비스, 피해자가 직접 입증해야만 움직이는 국가 시스템. IT 강국이라는 이 나라에서, 정작 피해를 입은 '사람'은 어디로 가야 할까.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