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25부(재판장 지귀연 부장판사)는 7일 윤석열씨 등의 내란사건 재판에서 내란특검의 공소장 변경 신청을 허가하고, 증거조사를 진행했다. ⓒ 서울중앙지방법원
7일 열린 윤석열 피고인의 내란 수괴 혐의 공판에서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의 업무 수첩 원본이 처음으로 공개됐다.
이날 내란사건 특별검사팀(특검)은 계엄 준비 및 이행 과정, 계엄 후 정국 운영 방안, 수거 대상 등이 상세히 적시된 해당 수첩의 내용을 반영해 공소장 변경을 신청했다. 이에 윤 피고인 측 변호인단이 수첩 원본 제출을 요구했고, 사본을 증거로 제출했던 특검이 이를 수용하며 원본이 법정에 등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재판부의 진행을 두고 이례적인 상황이 벌어졌다. 재판장인 지귀연 부장판사가 밀봉된 증거물을 직접 개봉해 변호인단에 넘긴 뒤, 즉석에서 휴대전화 촬영까지 허용했기 때문이다.
특검 "절차가 있는데 맞지 않는 방식" 항의
지 부장판사는 특검으로부터 수첩 원본을 건네받으며 "지금 밀봉되어 있는데 제가 개봉하겠다"고 말한 뒤, "쉬는 시간 때 보고 절대 훼손하면 안 된다. 변호사님들 믿고 하는 거니깐 절대 훼손하면 안 된다. 그건 크게 문제가 될 수 있다. 미리 말씀드린다"며 휴정 시간 내 원본 열람을 허가했다.
변호인단이 "상태 확인을 위해 사진을 찍겠다"고 요청하자 지 부장판사는 "그 부분은 뭐 열람하는 거니까 상관없을 것 같다"며 사진 촬영까지 허락했다. 특검 측이 즉각 이의를 제기했으나, 지 부장판사는 "아니 그런데 직접 찍으시라고 하는 게 나을 것 같다. 요즘은 뭐 핸드폰 있으면 다 찍을 수 있지 않나"며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특검 측이 "재판장님 수첩을 변호인들이 보시는 거 외에 변호인들이 직접 사진 촬영도 허용하신다는 말씀이신가"라고 묻자 지 부장판사는 "예. 어차피 열람 등사 뭐 하지 않나"고 답했다. 이에 특검 측이 "해당 (수첩 속) 사진들은 기록에 이미 첨부되어 있다. 육안으로 보게 하는 것은 괜찮지만"이라고 말하자 이하상 변호사는 "이미 지휘하셨으니 따르자", "검증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사진 찍는 게 왜 안 되나"라며 맞섰다.
특검 측은 다시 한 번 "그래도 열람·등사 절차가 있는데 사진을 찍도록 하는 건 좀 맞지 않는 방식인 것 같다"고 하자 이하상 변호사 또한 "절차가 왜요. 사진 찍는 게 왜 안 되나. 검증한다고 생각하면 되지 않나"라고 재차 반박했다.
지귀연, '갈등 해소 차원' 운운하며 결국 촬영 허용
이에 "잠깐만요"라며 이 변호사의 발언을 막은 지 부장판사는 특검 측의 절차상 문제가 있다는 항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검사님 말씀이 다 맞다. 다 맞는데 지금은 이것(노상원 수첩) 때문에 엄청나게 서로 막, 지금 막, 자꾸 갈등이 생기니까 제가 보기엔 그 갈등을 그냥 해소하는 차원에서 '찍으실 거면 찍어라' 오히려 그게 낫다. 그러니까 뭐 절차(적으로)는 분명히 검사님 말씀이 맞는데 재판장이 보기에는 지금 이렇게 원본까지 제시된 상황이라서 혹시 문제가 생기면 그건 뭐 변호사님들이 책임져야 될 문제죠."
즉, 지 부장판사는 '절차적으로는 문제가 있다'는 특검 측의 항의에 동의한다면서도 특검과 변호인단의 갈등을 해소한다는 이유로 절차를 지키는 대신 수첩 촬영을 허용했다고 설명한 셈이다. 절차적 정당성보다 법정 내 '갈등 봉합'을 우선시하겠다는 논리였다.
휴정 시간이 지난 후 변호인단이 수첩을 법정에 반납하자 지 부장판사는 "쌍방 모두 협조해주셔서 되게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린다"며 특검 측에 "(변호인단에서) 추가로 수첩에 관해 정식으로 열람·등사 필요한 부분 있으면 그 부분은 협조해 주실 수 있는 거죠"라고 물었다. 특검 측이 협조하겠다고 답하자 지 부장판사는 "그러면 수첩은 그렇게 정리하겠다. 내일까지도 일단 열람·등사 원하시면 열람·등사해 드리는 걸로 그렇게 그거는 정리하겠다"고 말했다.
증거에 대한 열람·등사 절차, 형사소송법에 엄연히 규정되어 있어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과 제266조의4에 따르면 검사는 국가안보나 증거인멸 우려 등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피고인측의 열람등사 요청을 거부할 수 있고, 거부 시 법원이 중재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 국가법령정보센터
형사소송법 제266조의3에 따르면 검사가 공소제기 후 증거로 신청한 서류 등에 대해선 먼저 피고인 측이 열람·등사를 신청하면 검사가 국가안보, 증인보호의 필요성, 증거인멸의 염려, 관련 사건의 수사에 장애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구체적인 사유 등 열람·등사를 허용하지 아니할 상당한 이유가 인정되는 때에는 열람·등사를 거부할 수 있다.
형사소송법 제266조의4에서는 검사가 열람·등사를 거부한 경우 피고인 측은 법원에 열람·등사를 허용해달라고 신청할 수 있다고도 규정돼 있다. 해당 신청이 접수되면 법원은 검사에게 열람·등사를 거부한 이유에 대한 의견 제시 기회를 부여한 뒤 쌍방의 입장을 고려해 열람·등사 여부를 결정한다.

▲대검찰청 누리집에 따르면 특검 측이 언급한 열람·등사의 절차는 ① 신청서 작성 ② 담당자 접수 ③ 사건조회 ④ 열람등사 범위 지정 ⑤ 담당검사 가·부 결정 ⑥ 허가 시 허가부분 등본 교부, 불허가시 통지서 교부 등 총 여섯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 ⓒ 대검찰청 누리집 갈무리
대검찰청 누리집은 이러한 형사소송법에 따른 열람·등사의 절차에 대해 ① 신청서 작성 ② 담당자 접수 ③ 사건조회 ④ 열람등사 범위 지정 ⑤ 담당검사 가·부 결정 ⑥ 허가 시 허가부분 등본 교부, 불허가시 통지서 교부 등 총 여섯 단계를 거쳐 진행된다고 설명하고 있다.
엄연한 법적 절차가 존재함에도 지 부장판사는 '갈등 해소'라는 납득하기 어려운 편의적 이유를 들어 증거물 촬영을 허용했다. 내란이라는 헌정사적 중대 범죄를 다루는 법정에서, 재판장이 스스로 원칙을 허물고 절차를 무력화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원칙과 절차를 누구보다 엄중히 지켜야 할 사법부가 편의주의에 갇혀 법정의 권위를 스스로 떨어뜨린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