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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 시대에 '정원'은 더 이상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폭염과 집중호우가 일상이 되고, 도시의 열섬과 미세먼지가 생활의 전제가 되면서 정원은 아름다움을 넘어 생존을 돕는 기반 시설로 재해석되고 있다. 그 변화의 한가운데에서 최근 주목받는 범주가 '민간정원'이다. 국가정원과 지방정원이 행정이 설계한 공공의 풍경이라면, 민간정원은 개인과 공동체가 시간으로 빚어낸 녹색 인프라다.

전라남도의 두 민간정원, 구례의 쌍산재와 해남의 산이정원은 같은 '정원'이라는 단어 안에 얼마나 다른 철학과 역할이 공존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한 곳은 200년 고택과 대숲이 전하는 '절제와 배려'의 풍경이고, 다른 한 곳은 간척지 위에 펼쳐진 '연결과 미래'의 무대다. 두 곳을 각각 지난해 11월 21일과 12월 7일 다녀왔다. 이 두 공간을 함께 걸어보면, 민간정원이 단순한 관광 콘텐츠가 아니라 기후와 사회를 동시에 다루는 공공 장치가 될 수 있음을 체감하게 된다.

[쌍산재] 시간의 결을 품은 정원

 전라남도 구례 쌍산재 민간정원
전라남도 구례 쌍산재 민간정원 ⓒ 김주영

먼저 쌍산재는 '정원'이라는 말로 다 담기지 않는 곳이다. 대문을 들어서는 순간,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카메라를 들지만 곧 내려놓게 된다. 풍경이 예뻐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요구하는 태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쌍산재의 첫 인상은 화려함이 아니라 고요다. 낮게 낮춘 대문은 방문객에게 무릎을 굽히게 하고, 그 몸의 각도가 마음의 속도까지 느리게 만든다.

대숲 오솔길은 단지 사진이 잘 나오는 길이 아니라, 바람과 잎의 마찰음이 생각의 소음을 지워주는 통로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에겐 tvN 인기 예능 <윤스테이> 촬영지로 기억되겠지만, 현장에서 마주하는 쌍산재는 방송의 프레임보다 훨씬 깊다. 여기는 한 가문이 무엇을 중요하게 여겼는지, 그 가치관이 어떻게 생활의 규율이 되었는지 공간이 증언하는 곳이다.

 전라남도 구례 민간정원 '쌍산재' 내 연못
전라남도 구례 민간정원 '쌍산재' 내 연못 ⓒ 김주영

 전라남도 제5호 민간정원 '쌍산재'
전라남도 제5호 민간정원 '쌍산재' ⓒ 김주영

그 증언은 디테일에서 선명해진다. 집 안에 있던 샘을 담장을 물려 바깥으로 내어놓았다는 '당몰샘'의 이야기는, 오늘날의 '공유'라는 단어보다 훨씬 오래된 방식으로 공공성을 실천해온 흔적이다. 춘궁기에 곡식을 나누던 뒤주 또한 그렇다. 이렇게 쌍산재의 '정원다움'은 사실 꽃과 나무보다 먼저, 사람을 대하는 방식에서 시작된다. 사친(효)·돈목(화목)·근학(학문 정진)·절용(검소한 삶) 같은 덕목이 마루와 중정 곳곳에 남아 있다는 사실은, 이 공간이 단지 전통 가옥이 아니라 삶의 가치가 보존된 문화유산임을 말해준다. 정원은 그 가치의 배경이 아니라, 가치가 숨 쉬기 위한 환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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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산재의 정원은 과시하지 않는다. 군더더기 없고, 정갈하며, 담백하다. 대나무는 이 집안의 기풍을 닮았고, 돌담과 동백, 작은 연못과 기와 지붕은 자연스럽게 서로를 보완한다. 걷다 보면 사진이 남는 것이 아니라 '문장'이 남는다. "이곳은 풍경보다 사람의 마음이 먼저 보이는 고택이다"라는 감상은 감상적 수사가 아니라, 실제 공간이 방문객에게 건네는 메시지에 가깝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건, 이 정원은 '크게' 만들려고 애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대신 오래 견디도록 만들었다.

기후위기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결코 과거의 미학이 아니다. 관리가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식생과 구조, 계절 변화에 순응하는 풍경, 자연과 인간의 거리를 무리하게 좁히지 않는 운영 방식은 지속가능성의 원리와 맞닿아 있다. 쌍산재가 보여주는 것은 '정원은 욕망의 전시장이 아니라 삶의 윤리를 담는 그릇'이라는 태도다.

[산이정원] 미래를 설계하는 정원

 하늘마루의 유영호 작가 작품 ‘Bridge of Human’
하늘마루의 유영호 작가 작품 ‘Bridge of Human’ ⓒ 김주영

반면 해남의 산이정원은 출발점부터 현대적이다. "산이 곧 정원이 된다(山伊庭園)"는 이름은 비유가 아니라 선언에 가깝다. 이곳은 식물을 '보는' 공간에서 멈추지 않고, 정원이 사람의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지역의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 수 있는지 실험하는 복합문화형 정원이다.

보성그룹 같은 기업의 적극 지원으로 조성된 공간인만큼 규모는 압도적이다. 현재 전라남도 등록 민간정원 가운데 가장 넓다. 그러나 산이정원의 진짜 크기는 면적이 아니라 수용력에서 나온다. 가족 단위 방문객을 위한 동선과 놀이 요소, 웨딩 촬영과 결혼식까지 가능한 풍경 설계, 카페·갤러리 등 편의 시설과 문화적 장치가 한 몸처럼 작동한다.

 전라남도 제30호 민간정원 '산이정원'
전라남도 제30호 민간정원 '산이정원' ⓒ 김주영

산이정원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간척지'라는 배경에 있다. 예전에는 바다였던 땅이 메워져 농지가 되었고, 다시 정원이 되었다. 기후위기 시대에 땅의 쓰임은 늘 논쟁적이다. 개발과 보전의 이분법으로는 답을 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산이정원은 그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이 땅을 어떻게 다시 자연으로 돌려줄 것인가?"

그리고 그 답을 '정원'이라는 방식으로 제시한다. 물이정원, 약속의정원, 서약정원처럼 이름부터 감정과 경험을 호출하는 공간들이 이어지며, 방문객은 감상자가 아니라 참여자가 된다. 바람에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이 달린 '소리의 정원'은 기후의 요소(바람)를 감각적으로 받아들이게 하고, 아이들을 위한 짚라인과 놀이터는 "정원은 어른만의 사치"라는 편견을 무너뜨린다. 하늘마루의 유영호 작가 작품 'Bridge of Human'은 단지 포토존 이상의 상징이다. 자연·사람·미래를 잇겠다는 이 공간의 기획 의도가 형태로 고정되어 있다.

산이정원에서 주목할 대목은 '정원주' 이병철 대표다. 30여 년간 가평 아침고요수목원을 일군 그는 국립세종수목원, 국립백두대간수목원(경북 봉화), 국립생태원(충남 서천), 화담숲(경기 광주), 휴애리자연생활공원(서귀포) 등 국립·공공 수목원부터 민간 정원에 이르기까지 전국 곳곳의 조성 현장에서 경험을 축적해온 인물이다. 기자와의 만남에서 그는 "미래 세대를 위한 '신환경'을 꿈꾸고 있다"고 말하며 약 6년 전 해남에 첫 둥지를 튼 뒤 가장 먼저 손을 댄 작업이 솔라시도 태양광발전소 부지에 조성한 '태양의 정원'이었다는 점을 강조했다.

기후 위기 시대에 정원이 확장되어야 하는 이유도 여기서 분명해진다. 정원은 단지 나무를 심고 꽃을 배치하는 조경의 영역을 넘어, 물과 토양의 흐름, 동식물의 서식처, 사람의 이동과 체류 방식까지 아우르는 '미시적 생태계'를 설계하고, 동시에 분산형 재생에너지 생산을 통해 탄소 저감에 기여하는 에너지 생산형 경관으로 역할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산이정원이 다채로운 주제 정원에 더해 카페·갤러리 등 편의시설을 갖춘 복합 문화 공간으로 구성된 것은, 정원이 생태적 기능과 사회적 기능을 동시에 수행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에 대한 하나의 응답으로 읽힌다.

기후위기 시대의 민간정원

쌍산재와 산이정원은 서로 다른 방향에서 민간정원의 공공성을 증명한다. 쌍산재가 축적된 시간으로 사람의 내면을 정돈시키는 곳이라면, 산이정원은 설계된 공간으로 공동체의 일상을 재구성하는 곳이다. 한 곳은 '절제'와 '배려'라는 윤리적 유산이 풍경이 되었고, 다른 한 곳은 연결과 확장이라는 미래 비전이 풍경이 되었다.

정원과 수목원·식물원은 더 이상 꽃을 보여주는 장소에 머물 수 없다. 사람들의 체류가 길어지는 만큼, 그 공간 자체가 건강하고 지속가능해야 한다. 민간정원 역시 이 흐름에서 예외가 아니다. 오히려 민간정원은 공공의 예산과 행정 절차가 따라가기 어려운 속도를 현장 단위에서 실험하고 확산시킬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기후위기 시대에 민간정원이 확대되어야 한다. 민간정원은 도시와 농촌 곳곳에 흩어져 있는 '작은 녹색 거점'이 될 수 있다. 더구나 정원은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인프라다. 기후위기가 '정보 부족'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이유는, 결국 생활 방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쌍산재가 전하는 절제와 배려의 감각, 산이정원이 제안하는 자연과 일상의 결합은 그 변화를 감각적으로 학습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다고 본다.

기후위기의 해법은 언제나 거대한 정책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오히려 중요한 변화는, 사람들이 실제로 걷고 머무는 장소에서 시작된다. 전남의 민간정원들이 지금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메시지는 이것이다. 정원은 자연을 꾸미는 일이 아니라, 사회가 자연과 맺는 관계를 다시 설계하는 일이라고. 그리고 그 설계는 이제, 더 넓게 확장되어야 한다.

 산이정원 '약속의 숲' 구역
산이정원 '약속의 숲' 구역 ⓒ 김주영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네이버 : 지구별시골쥐)에도 실립니다. 김주영 프리랜서 기자 jootime@naver.com


#산이정원#민간정원#쌍산재#전남가볼만한곳#기후환경에너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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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주영 (jootime) 내방

現) 프리랜서 기자/에세이스트 前) 농식품부 2030자문단 / 유엔 FAO 조지아사무소 / 농촌진흥청 KOPIA 볼리비아 / 환경재단 /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 유엔 사막화방지협약 태국 / (졸)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 (졸)경상국립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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